[PRESS] 제, 자리를 찾습니다

프랑스 아동문학의 거장 막스 뒤코스의 신작 그림책, 제자리를 찾습니다
글 입력 2023.06.1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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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초록빛 풀밭 위 둥글넓적한 원 하나가 펼쳐져 있다. 우물이나 연못을 닮은 도형의 모양새와 도형의 흰 배경이 조각 하나가 빈 퍼즐을 연상시키는 점으로 보나 테두리 오른쪽 상단에 드리워진 그림자로 보나, 중앙의 도형이 풀밭 아래로 푹 꺼져있는 듯 입체감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그리고 이는 기다랗게 말린 무언가를 어깨에 둘러메고 걷고 있는 표지 한가운데의 노인으로 시선을 집중시키기도 한다. 삐죽하게 튀어나온 풀과 벌레가 주위를 에워싸고 물이 뚝뚝 떨어지기까지 하는 수상한 돗자리는 무엇이며 노인은 어디로 걸어가고 있는 걸까.


 

 

연못을 데려가라고요? 못할 것도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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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어떤 할아버지가 연못가에 살고 있었어요.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연못을 정성껏 가꾸고 돌보았어요.

할아버지에게는 연못이 소중한 친구였거든요.

 


연못가에 사는 한 할아버지는 어느 날 땅주인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연못가를 허물고 주차장을 지을 것이니 당장 내일 떠나라는 통보가 그 이야기의 내용으로, 할아버지는 오래 정을 나누고 돌보았던 연못을 잃고 살던 곳에서도 밀려날 위기에 처한다. 그때 연못에 대해 땅주인이 농담이랍시고 “아이고, 그렇게 마음이 쓰이면 가져가세요!”라고 말하는데, 할아버지는 못할 것도 없겠다, 연못을 돌돌 말아 걸머진다.

 

할아버지가 카펫이나 돗자리 따위의 물건을 챙기듯 연못을 말아드는 마법 같은 순간을 마주하게 되면서 독자는 현실 세계와 판타지 사이의 문턱을 훌쩍 뛰어넘어 책 세계 안으로 성큼 발을 내딛게 된다. 이 장면에서는 기발한 상상력이 느껴질 뿐 아니라 마음이 뭉클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하는데, 노인과 연못 두 존재가 공유하는 공통의 맥락이 함께 읽히기 때문이다.

 

콘크리트에 아무렇게나 대체되어도 이상하지 않게 여겨질 연못과 사회 속 낮은 지위의 노인은 무척이나 비슷하게 보인다. 노인이 연못과 함께 살 곳을 찾기를 끝내 포기하지 않은 것 또한 연못에게 일종의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무튼 이 두 존재가 밀려나기를 당하기로 체념하는 대신 선택한 것이 공존, 그리고 재치 있는 상상이라는 점이 따뜻하고도 매력적이다.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주로 써왔던 프랑스 아동문학계의 거장 막스 뒤코스는 이번 책을 통해 처음으로 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썼다. 실제로 이 책이 노인이 겪는 문제를 꼬집고 있다는 사실은 책 속 여러 대목에서 드러난다. 노인은 연못과 함께 머물 곳을 찾는 과정에서 수차례 거절을 당한다. 학교에서는 벌레가 꼬인다는 이유로, 쇼핑센터에는 물건을 구경하기 바쁜 사람들에게 거치적거린다는 이유로, 병원에는 개구리 우는소리가 모두에게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말이다.

 

시청에 연못을 둘 자리를 묻고 연못을 쓰레기통에 버리라는 답변을 듣기도 한다. 받아주는 곳이 없는 탓에 크게 속이 상한 할아버지의 마음이 옮은 탓인지 연못도 본래의 제 크기를 잃고 한 손에 감기는 지도만큼이나 쪼그라든다.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지만 많은 노인이 건강 악화, 일자리 감소 등의 이유로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설 곳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을 이처럼 막스 뒤코스는 선명하게 그러나 맑은 수채화로 투명히 스며들듯 비춰 보인다.

 

 

 

제자리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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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프랑스어 원제는 ‘Le Vieil Homme et la Mare’, 직역하면 ‘노인과 작은 늪’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이는 한국어판으로 번역을 거치는 과정에서 ‘제자리를 찾습니다’라는 완전히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연못의 지난하고 모진 여정을, 그들에게 어울리는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의미를 부여하고 이름을 붙인 셈이다.

 

할아버지가 돌보는 연못은 하나의 세계다. 바다나 강만큼 크지는 않지만 모든 물의 세계가 그러하듯 수면만으로는 미처 다 볼 수 없는 무수한 생태계를 품고 있고, 정원처럼 작고 좁은 만큼 가꾸는 사람의 고유한 특징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가장 나다운 그릇이 되기도 한다.

 

사전에 따르면 ‘제자리’라는 단어에는 세 가지 정의가 있다. ‘본래 있던 자리’, ‘위치의 변화가 없는 같은 자리’, 그리고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 특히 ‘제자리로 돌아가다’라는 표현으로 이 단어를 익숙하게 접하고 쓴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왠지 제자리는 아주 멀리 갈 수는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연못의 제자리는 긴 여정의 끝, 기차를 타고 간 맨 끝 동네의 맨 끝 골목, 그 골목의 맨 끝 건물 어딘가에 있었다. 제자리는 움직이지 않는 것만도 아니고, 꼭 빠르게 찾아내야 할 것도 아닌가 보다. 혹여 웅덩이에 불과할지라도 내게 꼭맞춤해 만든 세계, 나답게 존재할 수 있는 세계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부단한 매 걸음의 발자국들이 이미 난 길을 뚫고 새로운 제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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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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