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부유하는 마음을 붙잡는 가사들 [음악]

내 마음의 먼지떨이가 되어준 가사를 소개합니다
글 입력 2023.06.0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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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방영되면서 한동안 자우림의 노래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곳곳에서 많이 울려 펴졌던 것을 기억한다. 드라마도 보지 않고, 노래도 잘 몰랐던 나는 여기저기서 자주 들은 덕에 멜로디 정도만 익숙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 이맘때쯤 축제에 함께 갔던 일행 중 한 명이 이 노래를 들으며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최근에 헤어진 연인 생각이 나서 그랬다는 것이다. 아직 이별의 경험이 없는 나에게는 조금 당황스러운 장면이었지만, 집에 돌아오니 이게 바로 가사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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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희망적인 내용이든, 우울한 이야기든 나를 모르는 누군가가 쓴 문장들이 내 얘기가 되어 세상에 울려 퍼질 때 이상하게 위로받는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항상 남들보다 마음이 조금 더 복잡하고 조급했던 나는 주위의 누군가에게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품에 가득 안고 살다가 음악을 들으며 간간이 털어내곤 했다. 여전히 음악의 치유하는 힘에 기대어 사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지금껏 나의 먼지떨이가 되어준 가사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offonoff – Overthinking


  

 

 

내 삶에서 고등학교 3년은 독립된 자아가 내 안에 자리 잡은 이래로 가장 순수했기에 가장 처절했던 시절이지 않았나 싶다. 그때 나는 세상이 정해놓은 규칙에 자유를 박탈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의무를 떠안고 있다고 생각했다. 벽을 뚫고 나아가고 싶은데 튕겨 나가지 못하도록 날 제자리에 잡아두는 세상이 미운 동시에 결국에는 누군가에게 끌려다니는 삶을 선택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 노래는 ‘삶이란 무엇인가?’, ‘내게 이 삶이 주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이렇게 사는 것이 맞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에 빠져 매일을 살았던 고등학생의 나에게 이 노래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수심에 빠진 나를 건져내기보다는, 나와 함께 밤이 새도록 깊은 우물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그런 친구 말이다.

 

이제는 조금 삶의 안정기를 찾은 나에게 이 노래는 지나간 세월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불러도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머릿속으로 내 일기 같은 가사를 끊임없이 되새겼던 무수한 새벽들의 어둠을, 그리고 푹 덮은 이불 바깥으로 들어오던 차가운 공기의 냄새를.

 

 

매번 답을 찾는 것이 어려워

답을 내리기엔 너무 버거워

주어진 하루의 시간을 쓰는 건

익숙한 듯 보여도 아직 어설퍼

 

안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데

그래서 난 더 강해져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그러던 중에 날은 다시 밝았어

 

 

 

cott - STUN


  

 

 

고등학교 2학년 때 인스타그램 피드에 뜬 광고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된 노래. 평소엔 광고를 습관처럼 지나쳤는데, 앨범 커버에 마음이 끌려서 클릭했다가 생각보다 좋다고 느꼈던 기억이 있다.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둔 것은 이때지만, 이 노래의 가사가 내 이야기처럼 들리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 나만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 적이 많았다. 남들은 아르바이트며, 자격증 공부며 뭐든 하면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서 있는 듯한 내 모습이 싫었다.

 

대학은 고등학교의 연장선이 아니었다. 분명 나이 한 살 더 먹었을 뿐인데 나의 삶은 180도 달라져야만 했고, 그 누구도 나의 삶을 책임져 주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는 별로 드러나지 않았던 내 안의 두려움은 이 시기에 폭발했고, 나는 나를 앞서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주저앉았다.

 

가야 하는 걸 알면서도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노래는 많다. 하지만 이 노래의 가사는 무조건적인 응원을 주기보다는 멈춰 있는 사람의 복잡한 마음을 진실하게 그리고 있다.

 

이게 바로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다. 앞서간 누군가가 내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도 물론 도움이 되지만, 정말 힘이 들 땐 누군가가 나와 함께 그 자리에 서 있어주는 것이 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잠깐 멈춰있어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네

남들은 계속 가고 있는데

먼발치에 혼자 고개를 떨구네

 

(중략)

 

내가 나를 가둔 거야

누굴 탓할 필요는 없고

그럴 자격 있나 싶네

앞만 보고 살면 되는 건가

그냥 그렇게

 

가야 하는 걸 알지만

맘처럼 발이 떨어지질 않네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잠깐 스턴 걸려서

한동안 이대로 떠 있겠네

 

   

 

멜로디도 중요하지만


 

음악의 멜로디는 우리를 특별한 분위기에 풍덩 빠지게 하지만, 음악의 가사는 마음속을 하염없이 떠도는 우리의 감정과 기억들을 붙잡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그래서 그 찰나의 순간에 자기 자신도 잘 몰랐던 마음을 마주하게 한다.

 

잘 알던 노래의 가사가 갑자기 마음을 깊이 파고드는 날이 찾아온다면, 그 순간을 놓치지 마라. 그냥 스쳐 지나갈 뻔한 가사가 부유하는 당신의 마음을 붙잡았다는 것은 그 노래 속에 당신의 사연이 담겼고, 그래서 당신이 그 노래를 평생 잊지 못하게 될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윤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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