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고 달고 씁쓸한" 공포 - 구소현, 시트론 호러 [도서/문학]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은, 시고 달고 씁쓸한 맛
글 입력 2023.06.02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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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공선도 10년 차 유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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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은 10년 차 유령이다. 영화나 드라마 속 유령과 달리 공선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칠 수 없고 “응시밖에 할 수 없”다. 그런 공선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독서다. “그녀는 책과 본인 사이에 어떤 긴밀함을 느꼈다. 모든 글자가 온전히 본인에게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녀는 책과 일대일로 사후세계의 대화를 나누었다.” 공선은 책을 만질 수 없으므로 사람들이 책을 읽을 때 같이 책을 읽어야 한다.

 

그녀는 “본인의 취향에 맞는 글을 대신해서 꾸준히 읽어줄 사람이 필요”했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빈 부분 없이 다 읽는 사람을 원했다.” 어느 날, 그렇게 까다롭게 고른 독서 메이트 효주가 사라진다. 공선은 효주가 부재한 합평 모임에 참석한다.

 

 


호러?



‘호러’는 피해자를 부각하는 말로, 라틴어 “호레오”(horreo)에서 유래한다. 이는 소름 돋는 신체감각을 의미한다. 호러라는 말에는 얼어붙었다는 느낌이 연관되어 있다. 호러에는 공포의 요소가 있지만, 공포보다 더한 강한 혐오감을 동반한다. 다시 말해 생명 파괴를 넘어 신체를 훼손하는 폭력 행위에 유기체가 보이는 반발작용인 혐오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동규(2018), 「호러리즘, 폭력의 새 이름」, 『오늘의 문예비평』 2018 가을호 통권 110호, p.117)


단지 유령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제목이 ‘호러’인 것은 아니다. 유령인 공선은 해를 끼치지도, 공포스럽지도 않다. “그녀는 유령이었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았다.” 이 작품에서 ‘호러’스러운 것은 공선에게 있지 않다. 피해자가 부각되어야 할 호러이지만, 이 작품에서 진짜 호러인 것은 비가시화된 자들을 향해 거부감을 드러내는 살아있는 자들의 모습이다.


“호수 밑에 가라앉아 있는 시체도 더 훼손되기 전에 서둘러 끌어 올려 주고 싶었고, 잔디밭에 한가로이 누워있는 저기 저 사람이 범인이라고도 말하고 싶었다.” 작품 속에서 사람을 죽여 호수 밑에 유기한 범인은 잔디밭에 누워있다. 


또한 효주의 교수는 국가 지원 프로젝트에 학생 이름을 허위로 올려 매년 거액의 지원금을 부당하게 챙기고 있었다. 이력서에 경험을 더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는 학과의 관행처럼 묵과되어 왔다. 

 

 

“언니 소설 보면서 항상 느꼈던 건데, 가난한 환경이나 가난으로부터 비롯된 사건에 대해 묘사할 때 과하게 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중략)

“난 그냥 사람들이 너무 보기 싫어하는 부분들은 덜어냈으면 좋겠어.”

 


지민과 태오는 공선의 소설이 자전적인 이야기임을 안다. 소설 속에서 공선의 가난한 삶은 “사람들이 너무 보기 싫어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가난한 환경에 대한 (과한 것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는) 묘사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주인공이 병원 화장실 바닥에 떨어진 지렁이 젤리를 먹는 장면”에 대해 불쾌감과 몰이해의 감정을 드러낸다.

 

굶어 죽기 전 마트에서 손가락에 묻은 파인애플 과즙을 빨아 먹은 공선만이 그 행동을 이해한다. 이성만으로 움직이지 않는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충동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그 행동을 하는 주체가 가난한 자일 때, 행동은 과한 것이 되며 “이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게 설득”되어야 한다. 작품은 비가시화된 자가 드러날 때 그에게 들이밀어지는 엄격한 잣대에 대해 보여준다.


 

 

결말에 대하여



구소현의 작품은 소설 작법서에서 흔히 등장하는 우연성에 대한 금기를 뛰어넘는다. 지민과 태오의 엉터리 강령술은 느닷없이 성공한다. 지민과 공선은 이마를 맞부딪치게 된다. 강령술의 성공으로 이야기가 다른 국면을 맞으려고 할 때, 소설은 끝이 난다.

 

이와 유사하게도, “준영이 집에 가는 도중에 귀신과 얘기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고백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효주의 소설 결말도 작품 속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구소현의 「시트론 호러」 결말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공선과 지민이 대화하게 되는 사건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작가는 다른 길을 선택함으로써 씁쓸한 현실을 보여준다. 공선과 지민의 이마는 분명 맞부딪치지만, 여전히 지민과 태오에게 공선은 인지되지 않는다. 단지 충돌, 그뿐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보이지 않는 이들, 효주와 공선은 사회에서 배제되고 비가시화된 약자다. 공선은 굶어 죽었고, 효주는 가난하다. 태오와 지민은 소설을 쓰고 읽으면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끊임없이 배회하며 마치 두 이마가 부딪쳤듯 비가시화된 이들과 충돌하지만, 그들을 인지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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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이마가 닿자, 공선의 존재가 잠시 드러나고, 호수에 시체가 떠오른다. 사회에서 소외된 자가 발견될 때는 이미 사회적 안전망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상태다. 사회 구조는 사회적 약자를 비가시화하고 배제한다. 그들은 사회적 안전망의 결함으로 인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채로 사물처럼 ‘발견’된다. “모두가 공평하게 시고 달고 씁쓸한 맛을 느”끼지만, 이 ‘모두’에서 효주와 공선은 배제되어 있다. 공평하다고 여겨지는 일상을 그들은 누릴 수 없다. 그들은 “존재하고 있지만 살아있지는 않”은 유령과 같은 존재임을 작품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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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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