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카뮈와 자존감 [문화 전반]

반항하는 이방인으로서
글 입력 2023.05.29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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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

 

– 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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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이라는 단어의 인기는 한때 열풍처럼 있었다.

 

물론 자신을 존중하며 아껴주는 마음은 중요한 주제이지만, 자존감이 낮은 상태를 지나치게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돌리는 것도 약간의 무리가 있다.

 

특히 ‘나’의 존재적 의미를 사회 및 타인의 인정과 즉결하여 바라보는 시야에 기인한다면 자존감은 때때로 너무나 쉽게 낮아질 수 있다. 그렇다고 사회적인 배경을 완전히 제외하고 보기엔 쉽지 않다는 것을 한 20대로서,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자존감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내가 나를 보는 시각에서 나와, ‘사회’로 잠시 시선을 돌려보자.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 개념을 장착하고 말이다. 카뮈의 시각에서 부조리는 쳇바퀴처럼 노력해도 노력의 대가가 돌아오지 않는, 억울한 사례들로 이해될 수 있다.

 

한편 어떤 사람의 성공이 그 사람의 전적 노력으로 이뤄진 것도 있겠지만, 많은 우연과 도움 등이 함께 작용한 것처럼, 사실 성공이나 실패같이 보이는 기준은 부조리한 세계 속 인간의 편향적 질서 및 복잡한 우연성에 전제한다.


그렇다고 ‘아 부조리하구나.’라고 맥 빠지게 이 세계를 살아가자는 건 또 아니다. 단지 부조리한 사회 내 작용하는 여러 성공 기준을 자신의 가치와 바로 연결 짓지 말자는 것이다. 사회에서 나의 가치를 다소 단정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자신의 변화 가능성을 크게 배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의미를 언제까지 찾아야지, 혹은 딱 결정해야지.’라고 서둘러 규정지으려고 본인을 괴롭히지 않아도 될 듯하다. 중요한 건 부조리한 세계를 인지하며, 나 자체를 다각도에서, 긴 시간을 두고 보는 것이다. 마치 그의 책 제목인 『이방인』처럼 말이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어떤 도덕적 의무감을 느끼지 않는 청년으로 등장하며, 자신의 사형 선고에 대해 일반 사람들과는 다르게 대하는 면모를 보인다.

 

책을 읽으면 뫼르소의 도덕성부터 사형 선고에 관한 질문을 하게 되는데, 그의 소설 전반에서 중요하게 배울 점은 부조리한 사회와 삶에 무의식적으로 순응하기보다는 인지하는 것. 그리고 그 사회를 다른 시각으로 보는 ‘이방인’이 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라는 카뮈의 말처럼, 아무리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더라도 매일 가득 채워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동전의 양면처럼 절망과 사랑의 시간은 반복되며 자존감도 아울러 작용할 뿐이라 생각된다.

 

그 시기의 절망이 인생 전체의 절망이 되는 것이 아니듯이, 가끔 이치에 맞지 않은 현실에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모두 내맡기고서 판단하지 말자고, 이방인이 되어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주는 규정적 속성에서 벗어나자고,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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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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