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의 끝자락을 펼치기 - 사랑하는 당신에게

글 입력 2023.05.24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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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뉴스를 보다 '육각형 인재'라는 단어를 접한 적이 있다.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무엇이든 잘 해내는 사람을 뜻하는데, 넓고 모나지 않은 반듯한 육각형이 그려질수록 요즘 사회가 선호하는 인재상이라고 한다.

 

또 다른 언젠가는 인생을 '끝 없는 길'에 비유한 글귀를 읽은 적도 있다. 이 갈래 저 갈래로 헤매가면서도 결국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올바른 삶의 방향이라고 쓰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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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마따나 한 사람의 인생을 길에 비유한다면, '사랑하는 당신에게'의 주인공 '제르맹'은 생의 막바지에 도달해가는 노인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하고, 스스로의 건강도 썩 좋지 못한 채 텅 빈 집에 홀로 남겨졌다. 자식들의 눈에 비친 제르맹의 모습은 곧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얇고 위태롭기만 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노년의 제르맹이 삶의 끝자락을 갑작스레 육각형으로 펼쳐나가는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사랑하는 당신에게'는 모나고 부족한 채로도 삶을 원하는 각도로 그려나갈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영화이다.

 

 

 

삶의 지도를 새롭게 그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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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갑작스레 아내를 떠나보낸 제르맹의 상황에서 출발한다.

 

아내가 생전 꼭 서고 싶어했던 현대 무용 공연에 대신 서기로 결심한 제르맹은 단조롭던 일상의 영역을 꾸역꾸역 넓혀나가기 시작한다.

 

아내가 살아있을 적에도 가본 적 없는 듯 한 공연장에 발을 들이고, 생판 모르는 무용수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눈다. 팔자에도 없던 민망한 레깅스 차림으로 뜻모를 춤동작을 배우며 서툴게 팔다리를 뻗어보기도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제르맹 주변의 젊고 노련한 무용수들에 비하면 턱없이 느리고 어색한 춤사위였다. 그러나 동료와 가족들은 그런 제르맹의 서툰 몸짓에 외려 감동받는다. 처음엔 웃음을 터뜨리며 제르맹의 춤을 바라보던 관객들도 어느 순간부터는 백발 노인의 서툰 시도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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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맹은 아내가 떠난 뒤 슬픔 속에 홀로 고여있는 대신, 아내가 못다 춘 춤을 춤으로써 아내의 죽음을 그리워하기를 택했다.

 

죽은 아내가 못다 마친 삶을 자신의 것으로 더 넓게 끌어안는 것이 제르맹의 방식이었다. 제르맹은 생의 끝자락에 서서 전에 없던 각도로 삶의 지도를 넓혀가기 위한 용기를 냈다.

 

팔다리는 여전히 느리게 움직이고, 현대 무용이 어렵고 난해하기는 마찬가지다. 노인 제르맹은 앞으로 아무리 더 노력하더라도 육각형 인재가 되긴 힘들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르맹은 이제 기꺼이 춤을 춘다. 모자라고 부족한 모습으로도 얼마든지 삶의 지도를 새로이 그려나갈 수 있음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생을 선이 아니라 면으로, 길을 걷는게 아니라 지도 그리기에 빗대어 보면 어떨까. 줄 맞춰서 순서대로 살아가기보다는, 매일매일 다른 모양으로 삶의 지도를 그려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삶의 지형을 넓혀가다보면 그 끝이 반듯한 육각형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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