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첫 입사, 첫 퇴사

뜨겁고 눈부셨지만 가장 아팠던 시간
글 입력 2023.05.1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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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를 했다.

 

첫 직장에서 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두번째 봄까지 맞이했다. 지난 1년이 몹시 지치고 힘들었음에도 그곳에서의 다음 1년을 꿈꾸던 때도 있었는데. 나는 나의 선택으로 익숙한 일, 친숙한 공간, 경제적 안정을 뒤로 하고 다시 ‘취준생’의 타이틀을 달았다.

 

평생 직장이 옛말이 된 대퇴사의 시대. 내 주변에서도 많은 사람이 퇴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 퇴사라는 게 진짜 내 얘기가 되고 나서 보니 너무나 무겁고 어려운 일이었다.

 

결정의 가장 큰 이유는, 성장에 대한 갈망이었다.

 

우리 회사에서 나의 직무는 사수나 동료 없이 오롯이 나 한 사람이 맡았었다. 나는 해당 직무에 대한 베이스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정말 맨 땅에 헤딩하는 매일이었다. 자꾸 머리를 박다 보니 아프기도 아팠지만 재미도 있었다. 무엇보다 0에서 이것저것 흡수하는 시간은 성장의 속도가 빨랐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이 일을 정말 전문성있게 하고 있는 게 맞을까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바쁘게 돌아가는 프로젝트에 맞춰 기계처럼 일을 ‘쳐내고’ 있는 나의 모습이 반복되던 시점이었다. 원래 회사 업무는 이론부터 제대로 다지고 활용으로 넘어가는, 교과서 같은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실전에서 실무를 하고 있음에도 코앞에 자꾸 나무들을 갖다주니, 멀리 있는 숲을 볼 시간이 없었다.

 

우리가 학창시절, 문제를 푸는 이유는 당장 100점을 맞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쓴 답이 정답이라면 그대로 나아가고, 오답이라면 왜 틀렸는지 확인하고 이해하며 더 발전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나는 회사에서 매일 정답지가 없는 문제집을 풀고 있는 기분이었다. 답을 모른 채 문제집만 백번 풀고 있으니 성장이 더뎌졌다. 6개월차나 1년차나 생각하는 과정이 비슷했다.

 

사내에서 스스로 여러 노력을 거듭해봤지만, 결국 다른 곳에서 발돋움을 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지금은 평일 낮, 집에서 무직의 신분으로 글을 작성하고 있다.

 

조금은 쉬어가야지, 바로 조급하게 준비하지 말아야지 싶었는데. 막상 퇴사를 하고 나니 조바심이 난다. 취업난이라는데 나를 데려가줄 곳이 있을까. 1년의 경력을 살릴 수 있는걸까.

 

얼마 전부터 그렇게 바라던 퇴사였는데, 나는 또 다른 네모네모난 건물 안에 속하려 한다.

 

고등학교를 다닐 땐 대학교를 가지 못해 안달이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공부도 일도 하지 않는 백수가 되고파 안달이었고,

졸업 후 그토록 원하던 백수의 신분이 도래했을 때는 회사에 들어가지 못할까봐 전전긍긍이었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그 과정 속에 ‘종착점’ 같은 건 없었는데 왜 그리 초조해했는지 모르겠다. 지금이 아닌 다음 스텝만 넘어가면 ‘해피 엔딩’이라는 생각에 매 순간에 내 힘듦은 무시도 했었다. 학교를 못 간다고 죽는 것도, 좋은 회사를 못 간다고 죽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직 오지 않을 미래만을 꿈꾸며 학생이던 나, 직장인이던 나의 행복과 재미는 챙기지 않았던 게 참 아쉽다.

 

이렇게 말은 했어도, 내 마음 한 구석엔 여전히 취업에 대한 불안과 초조가 자리를 잡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 생각하려 한다. 내가 정말 퇴사를 한 이유를, 그래서 나의 자아실현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멋진 기회를 천천히 마련해보자고.

 

잘 쉬고, 잘 웃으며, 현재 무직인 나에게서 행복을 찾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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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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