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나의 뉴욕 수업

글 입력 2023.04.2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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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의 도시에서 나를 발견하다


삶을, 예술을 바라보는 시야, 그 성장의 바탕에는

'호퍼의 도시'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이 있었다.

 

 

스스로를 벼리고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는 데서 삶을 지탱하는 힘을 얻는다고 말하는 곽아람은 호모아카데미쿠스의 전형이다. 그런 그에게 직장생활 14년 차에 해외연수 기회가 주어졌다. 이전까지 그 흔하다는 어학연수 한 번 다녀온 적 없고, 해외여행 외에 외국에서 생활해본 적 없던 그에게 직장을 벗어나 모든 것이 낯선 이국의 도시에서 마주하게 될 루틴 없는 생활은 분명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것이었으리라. 익숙함을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다시금 홀로서기에 나서야 했던 곽아람은 세계의 서울, 뉴욕에서 어떤 방식으로 삶을 꾸려갈지 깊게 고민한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에 이른다. 바로 스스로를 '교육'하겠다는 결심이다.

 

단기 이민에 가까웠던 뉴욕에서의 시간 동안 지은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접하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 예술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지나치게 빠르게 몰아치는 도시의 파도에 떠밀리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그림들, 미술관과 거리에서 마주치는 예술작품들이 제 품을 내어주며 위로해주었다. "괴테처럼 살겠다 결심하고 뉴욕으로 떠나 호퍼처럼 산 이야기"라고 자신의 책을 정의하는 지은이는 [나의 뉴욕 수업]에서 뉴욕에 머물며 들었던 미술 수업, 생생한 아트 비즈니스의 세계, 그리고 스스로도 몰랐던 '프로 놀러'의 기질까지, 다양한 경험과 사유를 에드워드 호퍼, 로버트 인디애나, 알렉스 카츠, 조지아 오키프 등 대도시의 흔적을 담아낸 작품들과 함께 풀어낸다.

 

[나의 뉴욕 수업]은 2018년에 처음 선을 보인 [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의 개정판으로, 세월이 흐를수록 지은이의 뉴욕 생활에 드리웠던 에드워드 호퍼의 영향이 더욱 뚜렷해졌기 때문에 그의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추가해 다듬어 새로이 펴낸 것이다.

 

 


새로운 것들과 부딪히며 온몸으로 체득한 생경한 감각, 그 수련의 여정


 

지은이가 뉴욕으로 떠날 때 마음속에 품은 이미지는 독일 화가 티슈바인이 그린 [창가의 괴테]였다. "여러 대상을 접촉하면서 본연의 나 자신을 깨닫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난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로마에 막 도착했을 때, 창밖을 바라보며 미지의 세계에 순수하게 몰입한 모습을 티슈바인이 화폭으로 옮긴 그림이다. 지은이 역시 자기 자신을 교육하겠다는 의지로 떠나온 해외연수에서 괴테를 롤모델 삼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몰두해 낯선 환경에 적응해간다. 그 모습은 분명 [창가의 괴테]와 닮아 있었으리라.

 

그렇지만 괴테처럼 되겠다고 결심하고 머무른 뉴욕에서 정작 만난 건 괴테보다는 호퍼였다고 지은이는 훗날 고백한다. 매일 써내려간 일기 속 자신의 모습이 점점 호퍼의 그림을 닮아갔노라고, 그것은 마치 뉴욕 특유의 풍경 속을 거닐고 정지하는 그림 속 얼굴들 사이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과 같았다고 말한다. 대도시의 고독, 어쩔 수 없는 이방인으로서의 감각이 자주 어깨를 움츠러들게 할 때도 있었지만, 결국 매일 온몸으로 마주하는 그러한 생경함이 글을 쓰도록 추동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재료 삼아 써내려간 뉴욕 일기는 자신을 위한 훈련이자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되었다.

 

난생처음 해외에서 살며 모든 계급장을 떼고 뉴욕이라는 거친 도시와, 그리고 스스로와 한판 붙으며 겪은 좌충우돌의 견문록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그리운 친구를 만나러 가듯 미술관을 거닐며

그림 속 얼굴들을 만나다



소련의 한 미학자가 말했다. "아는 그림을 보러 미술관에 가는 건 그리운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과 같다"고. 책에는 미술사를 공부하고 일간지에서 미술 담당 기자를 맡기도 한 지은이의 이력답게 일상 속에 침투한 미술의 흔적을 더듬어보는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특히 뉴욕에서 생활하면서 특별해진 호퍼의 그림 이야기와 호퍼의 자취를 따라가는 시간의 기록은 매일 보는 풍경, 매일 다니는 길을 다르게 보이게 했다. 가끔은 호퍼의 그림이 보고 싶어 아침 일찍부터 미술관으로 달려갔다고 말하는 지은이는 소리 없는 위로를 전해주는 호퍼의 그림 속 얼굴들, 풍경들, 순간들을 마주하면서 일상으로 스며든 호퍼의 자취를 더욱 또렷하게 각인한다.

 

현대미술의 중심지라 일컬어지는 뉴욕의 미술 세계를 경험하고 기록한 내용 또한 흥미롭다. 뉴욕대학교 인스티튜트 오브 파인 아츠에서 방문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작품을 보며 연구하고, 세계 굴지의 미술 경매회사인 크리스티 산하 교육기관 '크리스티 에듀케이션 뉴욕'에서 아트 비즈니스 서티피컷 과정을 수강하면서 체험한 아트 비즈니스의 현장 이야기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을 들게 한다.

 

이밖에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모건라이브러리, 뉴욕현대미술관, 브루클린미술관 등 도시 곳곳에 자리한 미술관들을 다니며 작품을 감상하고 체화한 이야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뉴욕을 그림처럼 그려보게 한다.

 

 


내가 되기를 공부한 시간,

더욱 선명해진 '나'를 만나고 돌아오다


 

낯선 세계를 경험한다는 건 내 안의 또다른 문을 여는 열쇠를 손에 쥐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문을 열면 익숙한 일상을 살아가면서 잠시 잊고 있던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문 너머 웅크리고 있던 '나'와 직면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곳을 찾아 자꾸 떠남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더욱 선명해질 나 자신과 조우하기 위해.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뉴욕에서 혼자 외롭지 않았느냐고. 그렇지 않았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1년간 죽 나와 함께 있었다. 내가 짊어지고 있는 내가 너무나 크고 무거워서 종종 버겁기도 했지만, 그 덕에 나는 나를 좀더 잘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데리고 다닌 1년 이었다."(9쪽)

 

곽아람은 뉴욕으로 떠나기 전에는 타인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아등바등하며 살았고, 항상 남의 시선, 타인의 눈뿐 아니라 자신 안에 스스로를 감시하는 존재를 두고 살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뉴욕에서 돌아온 후에는 더이상 그러지 않는다. 내가 되기를 공부한 이후에는 그저 나답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내 안의 강한 나를 탐색하고 기록한 [나의 뉴욕 수업]은, 그리하여 호퍼의 작품처럼 어디에나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이자, 혼자만의 이야기이지만 독자와 함께하면 더 좋을 이야기가 되었다.

 

 

 

곽아람


 

주중에는 기사를, 주말에는 책을 쓴다. 책 속 세계에 매료되고, 그림 속 풍경에 고요히 나를 맡길 때 평온하다.


2003년 기자 생활을 시작해 현재 [조선일보] 문화부 출판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에서 미술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미술경영협동과정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뉴욕대학교 IFA(The Institute of Fine Arts) 방문 연구원으로 있었다. 뉴욕에 있는 동안 크리스티 에듀케이션 뉴욕의 아트 비즈니스 서티피컷 과정을 마쳤다.

 

지은 책으로 [쓰는 직업] [공부의 위로] [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 [바람과 함께, 스칼렛] [미술 출장] [어릴 적 그 책]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그림이 그녀에게]가 있다.

 

 

[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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