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 16일 양일에 걸쳐 한강 난지공원 젊음의 광장에서 ‘페스티벌, 지금’이 펼쳐졌다. 봄기운이 살랑거리는 4월의 한가운데, 입학식을 컨셉으로 한 국내 최초! 타임슬립 페스티벌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현장 곳곳에서 학창 시절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져 나왔다.

월드컵경기장역에서 탑승한 셔틀버스에서 내려 페스티벌 현장으로 향하는데, 벽에 걸린 포스터들부터 ‘페스티벌, 지금’이 얼마나 컨셉에 진심인지를 느끼게 했다. 오글거리는 멘트에 웃음이 나면서도 쉽게 잊고 살던 그 시절의 감성이 떠올라 괜히 아련한 기분이었다.
티켓으로 팔찌를 교환받고 입구로 향하기 전에 가방 검사를 했다. 첫날에는 사전에 미처 접수하지 못한 정보라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500ml 이하의 생수병과 일회용품이 아닌 밀폐용기에 담긴 음식들만이 반입 가능했다. 이번 페스티벌이 ‘노플라스틱 캠페인‘과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종이팩으로 만들어진 생수가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제공되었다.

장소의 특성과도 꽤 잘 어울리는 취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지 한강공원은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쓰레기 매립장으로 사용되었던 난지도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몇 년 전 핑크 뮬리를 보러 ‘하늘공원’에 방문했는데, 아름답기만 그곳이 쓰레기로 이루어진 언덕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꽤나 놀란 적이 있다.
축제 분위기에 마냥 신나하며 종이팩에 담긴 생수로 갈증 난 목을 축이는데 문득 두 발을 딛고 있는 장소의 아픈 과거가 떠올랐다. 청명한 하늘과 탁 트인 한강변, 생명력을 발산하는 푸릇한 풀숲 아래, 누군가의 이기심과 자연에 대한 무심한 태도가 악취 나는 쓰레기와 함께 뒤섞여 묻혀있다는 불편한 진실이었다.
모두가 기피하던 난지도가 공원이 되어 지금처럼 사랑받기 위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수모들이 아닌가.

교문을 연상시키는 입장 게이트를 지나 본격적으로 ’지금‘ 세계관에 입성했다.
교복을 입은 사람들과 교실 컨셉의 포토존, 추억의 간식을 파는 문구점 컨셉의 가판대, 펌프와 농구게임 등의 오락실 기계까지. 이 페스티벌 현장에서만큼은 미래를 향한 걱정에 뒤척이는 20대 중반의 취준생이 아니라 급식 메뉴와 시험 성적에 울고 웃던 사춘기 소녀가 될 수 있었다.

무대 앞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키오스크로 주문한 간식과 함께 공연을 관람했다.
떡볶이와 닭강정 등 분식 메뉴로 구성된 F&B마저 ‘지금‘ 세계관에 충실한 기획이었다. 야외 페스티벌에 빠질 수 없는 ‘무알코올 맥주’가 성인인 본래 신분을 각성시키는 유일한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수업 시간처럼 매 게스트의 공연마다 학생 주임을 자처하는 MC ‘데프콘‘이 등장해 시작과 종료를 알렸다.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을 알리는 학교 종소리가 공원 가득 울려퍼질 때 새로운 공연에 설레다가 끝이 났음에 아쉬워지고, 종국엔 추억이 돼 버린 그 소리 자체가 무척 그리워졌다.

발라드, 댄스, 힙합, R&B, 크로스오버. 다양한 장르와 나이대의 국내 정상급 뮤지션들이 축제를 함께했다.
첫날인 15일에는 헤이즈, EPEX, 테이, 이석훈, 우원재, 이하이까지 총 6팀의 뮤지션들이, 마지막 날(16일)에는 데이브레이크, 이영지 x 키코, 황치열, 코요태, 로꼬, 포레스텔라가 페스티벌 분위기를 한껏 달궜다.
친숙한 노래는 친숙한 대로, 낯선 노래는 낯선 대로 모두 즐거웠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과 이런 멋진 뮤지션들을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감사해지는 순간이었다.
축제가 모두 끝이 난 뒤 집에 돌아와 꿈만 같았던 시간을 회상하며 여전히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지금’이라는 페스티벌 이름의 의미가 가슴으로 와닿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줄곧 과거를 회상하는 타임슬립이라는 컨셉과 ‘지금‘이라는 이름이 어긋난다 느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중학교 3학년에 만난 우리가 어느덧 10년 지기가 됐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10년 전이라고 해봤자 고작 초등학생 정도일 줄 알았는데, 내년이면 벌써 고등학교 입학이 10주년이라니. 마냥 어린 줄 알았는데 교복을 벗은지도 벌써 6년의 세월이 흐른 거였다.
한창 교복을 입던 때는 그 시절이 아름답다 말하며 본인들의 옛날이야기를 하는 어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냥 어른을 동경하던 나는 자라 이제는 그 관문 앞에서 방황하며 그 과정의 어려움에 눈물을 훔치곤 한다. 자유를 누리는 때보다 책임을 져야 할 때가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부러움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어이없게도 그 시절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이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나 역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축제와 같은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쉽게 입을 수 없는 교복들을 지나치며, 지금 생각해 보면 별일 아닌 것들에 한없이 심각해지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을 다 가진 듯 웃던 학창 시절이 진심으로 그리워졌다.

잠자리에 누워 하루를 마무리하는데 잔디밭에 누워 있던 순간이 교차했다.
자연 한가운데에서 파랗게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던 그 순간만큼은 주변에 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세상과 내 존재만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걱정과 불안에 떨어야 했던 현실에서 벗어나 나의 존재감과 살아 숨 쉬는 ’지금‘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페스티벌, 지금‘은 말 그대로 ’지금‘을 위한 시간이었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순간의 감정에 충실했던 우리들의 학창 시절. 삶의 무게가 마치 우리의 크기와 속도를 맞춰 자라나는 것 같았던 그 때. 세대와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지금‘에 가장 충실했을 마냥 그리운 과거의 한순간과 닮아있었다.
햇볕이 따가워 눈이 부시던 날씨도, 비를 맞아 찝찝해진 상태로 신나게 뛰어놀던 시간도, 해가 진 어둠 속에서 피어나던 작은 불빛과 낭만으로 채워지던 공간도 모두. 나를 짓누르던 모든 고민들에서 해방되어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졌다.

축제의 가장 마지막 게스트였던 ’포레스텔라‘의 공연이 기억난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곳곳에서 밝혀지던 초록빛들. 10대부터 60대까지 폭넓은 팬층을 보유한 포레스텔라의 공식 응원봉이었다. 보통의 페스티벌이 주로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는 달리 학창 시절로의 ‘타임슬립’을 컨셉으로 하는 ‘페스티벌, 지금‘에서는 다양한 세대들이 함께 어우러져 축제를 즐겼다.
페스티벌을 즐기는데 나이에 제한이 없는 것처럼, ‘지금‘을 즐기는 데도 굳이 제약을 둘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에 충실하자 말하면서도 때론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고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한다. 삶이 점점 버거워질수록 지금을 벗어나고 싶어지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통만이 가득한 것 같은 삶에도 분명 크고 작은 행복이 있기 마련이고, 어쩌면 고통스럽게만 느껴지는 슬픔과 불안 등의 감정들 역시 살아있기에 누릴 수 있는 우리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과거를 컨셉으로 한 축제를 즐기던 그 순간의 우리 역시 ‘지금‘의 우리였듯이, 내 삶의 모든 순간을 마치 축제처럼 살아보고 싶어졌다.
걱정과 불안, 좌절과 고통까지도 전부.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분명 그리운 추억이 돼 있을 모든 순간들. 나의 ‘지금’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