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살아, 실비아 - 뮤지컬 '실비아, 살다' [공연]

죽여야만 했다. 살기 위해
글 입력 2023.04.1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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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야만 했다. 살기 위해.

 

실비아는 아버지를 죽여야만 했다. 그녀가 살기 위해.

실비아는 남편을 죽여야만 했다. 그녀가 살기 위해.

 

둘을 죽였어야 하는 셈이나

 

대신,


실비아는 자신을 죽였다. 살기 위해.

 

 

실비아 포스터.jpg

 

 

긴 삶의 궤적보다 죽음의 장면으로 각인된 사람이 있다. “가스 오븐에 머리를 처박고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시인 ‘실비아 플라스’가 그렇다.

 

그녀의 죽음은 삶에 대한 투지에 압도됐다. 익히 알려진 그녀의 마지막 모습 탓에 죽음만을 바라보던 불안정한 시인으로 표상되지만, 사실상 실비아는 길의 끝에 걸린 삶을 바라보며 죽음의 구덩이에 몸을 던진 편에 가깝다.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기 위해, 새로운 시작을 위해 10년에 한 번씩 택한 죽음은 뮤지컬 <실비아, 살다>에서 ‘비상 정차’에 비유된다. 편도 티켓을 쥐고 탄 열차로 종점인 ‘아홉 번째 왕국’에 이르기까지의 여행이 곧 삶이고, 절박하게 기차를 세워 내리고자 하는 ‘비상 정차’는 곧 죽음이다.

 

‘비상 정차’는 일시적인 만큼 문제 상황을 해결한 뒤에는 응당 다시 출발해야만 한다. 실제로, 실비아의 두 번의 비상 정차는 성공했다. 그러나 세 번째 비상 정차는 그저 ‘정차’에 머물렀다. “제발 의사를 불러주세요.” 그녀의 마지막 쪽지는 삶에 대한 그녀의 강한 집착을 보여준다. 그동안 우리가 그녀를 죽음의 이미지로 반복해서 재현하고 무기력하게 그려온 것이 얼마나 납작했는지, 반성하게 되는 대목이다.

 

<실비아, 살다>에서, 실비아는 세 번째 비상 정차 시도를 멈춘다. 그리고 살아간다. ‘빅토리아’의 위로와 응원 덕분이다. ‘빅토리아 루카스’는 실비아가 자전적인 소설 <벨 자>를 발표할 때 사용한 예명으로, 미래에서 온 자신이다.

 

<벨 자>는 유리종에 갇힌 여성 주인공인 에스더가 유리종을 깨고 나오려는 이야기로, 빅토리아의 시선으로 자신을 에스더에 투영했다고 볼 수 있다. 빅토리아가 실비아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곧 실비아가 에스더에게, 그리고 독자와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일 것이다.

 

 

실비야 오르자.jpg

 

 

“어두운 계단을 올라가자. 멈추지 말고.

걷다가 보면 환한 빛이 우리를 맞이할 거야.”

 

 

 

실비아를 가둔 유리종


 

실비아의 죽음은 유년기 아버지의 죽음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8살에 아버지의 죽음에 충격받은 실비아는 9살에 첫 자살 시도를 한다. 그녀에게 ‘아빠’는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대상이었다. 누군가를 인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곧 권력이라는 점에서 아빠는 권력자였고, 권위를 지녔다.

 

그는 실비아가 시를 쓰면 좋아했고, 그녀를 칭찬했다. 좋아하는 글쓰기를 통해 그의 기대에 부응하며, 실비아 삶에 큰 의미가 생겼다. 그런 아빠를 어린 시절에 잃은 결핍은 후에 아빠를 닮은 남편인 ‘테드’를 아빠와 동일시하며 일시적으로 충족된다.

 

실비아의 엄마는 그녀에게 의무감을 지운 사람이다. 자신을 위한 희생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부채감에 증오하게 되는, 그럼에도 사랑하는 대상. ‘여성’으로서의 의무와 제약을 내재시키며 실비아 내면의 한계를 만든 사람.

 

넘버 ‘엄마를 배신할 수 없어’에서 이 처절하게 양면적인 감정이 드러난다.

 

 

실비아_엄마.jpg

 

 

M10. 엄마를 배신할 수 없어 中

엄만 결혼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하고 여태껏 지켰죠

하지만 그걸 지킨 엄마를 증오해요

날 위해 희생한 그 삶을

 

그래도 엄마 난 엄말 배신할 수 없어 어찌해야 해

엄마의 뜻을 거역할 때 밀려오는 이 죄책감 어찌해야 해 나는

이 세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날 위해

날 위해

 

실비아의 아빠와 엄마는 그녀에게 정체성과 의무감을 불어넣은 이들이다. 그녀가 사랑한 대상이고 그녀를 사랑한 이들이지만, 동시에 그녀를 ‘벨 자’로 가둔 이들. 불륜으로 가정을 파탄낸 남편 테드 또한 그렇다. 그러나 그 유리종을 깨고 나오고자 할 때, 실비아는 ‘그냥 나로’ 살 수 있었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인정욕구를 벗어던지고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면서 그녀의 필체는 야수처럼 살아난다. 짬이 날 때마다 쓰는 시도 ‘여류 시인’다운 아름다운 시도 아닌, 그저 그녀가 그렇게 살고 싶은 대로, 감각들이 타오르는 대로 언어를 토해낸다. 실비아의 글은 의무감과 부채감, 제약에서 벗어나며 태어난다.

 

M12. 아빠, 이 개자식 

하지만 아빠, 이제 완전히 끝났어

내가 한 사람 죽인다면

나는 둘을 죽이는 셈이야

아빠라고 말하며,

내 피를 빨아 마신 흡혈귀

 

 

 

우리 모두 술 탄 물을 마신 거야


 

실비아_술탄물.jpg

 

 

실비아가 원한 건 ‘내가 이상한 건가 그런 느낌 없이’ 살아가는 것이었다. 자유롭게 말하고자 시를 썼으나 딸로서, 아내로서, ‘여류’ 시인으로서 요구되는 억압들은 자신을 검열하도록 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아주 예민하게’ 노래하고, ‘이름 없이 성별 없이’ 살고 싶었던 실비아는 왜, 무언의 질책을 받게 된 걸까? 빅토리아는 이를 ‘술 탄 물’에 비유한다. 실수로든 일부러든 술 탄 물을 사람들에게 주는 사회. 그리고 술 탄 물에 서서히 중독되는 사람들. 모두가 의도되거나 의도 없는 것들에 의해 취하고 중독된 사회.

 

M08. 술 탄 물 

실수로 한 번 그런 거면 한번 토하고 술에서 깨면 되겠지.

그런데 매일매일 하루 수백 번 마신다면

매일매일 개진상을 부리겠지

중독이 되는거야

 

우린 모두 술 탄 물을 마신 거야. (토해버려)

술 마시면 술 취하지 어쩌겠어. (토해버려)

술 취하면 진상부려 당연한걸. (토해버려)

토해버려!

 

 

실비아_쿵쿵.jpg

 

 

해괴한 조명과 연출, 안무가 조합된 '쿵 쿵' 넘버에 이어 '술 탄 물'은 기이한 사회의 모습을 꼬집는다. 극 중에서 가장 안무가 많고 신나는 곡이지만, 가장 숨찬 곡이기도 하다. ‘숨이 차올라 막혀오는 사회의 편협한 요구를 토해버려라!’는 의미를 담은 당찬 넘버이며, 결국 가스라이팅에 관한 비유다.

 

“여성은 조신해야 해”, “여류시인다운 아름다운 필체”, “집안일과 내조를 하며 짬짬이 시를 써보세요.” 여성으로서의 몸가짐, 여류시인다운 시, 아내로서의 일. 이 모든 것을 해내고자 스스로를 자책하고 검열하던 실비아의 모습은 ‘여성’이라는 단어와 떼려야 뗄 수 없다.

 

밖이 훤히 보이는 유리종 안에 갇힌 여성 ‘에스더’, 그리고 훤히 내부가 보이는 종에서 탈출하고자 저항하는 그녀를 관망하는 자들. 상황에 부닥치지 않았으니 고민할 필요도, 검열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곧 권력이다. 같은 시인이었던 그녀의 남편 테드는 스스로를 검열했는가? 그는 조신하게 행동했는가? 집안일을 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내었는가? 아니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고 옥죄었는가? 이 또한 아니다. 그것이 곧 투명하게 가려진 ‘그’의 권력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여성들이 어릴 때부터 들어오던 차별과 제약의 말들, 커서도 겪는 일상의 불안함은 여전히 존재한다. 몸가짐을 조심하라던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피해자의 무결함을 강조하는 이야기로 변주되고, 여성주의 운동은 ‘극단적’이라 많은 사람이 공감하지 못한다며 검열을 내재화하도록 요구된다.

 

실비아, 에스더를 가둔 투명 종은 여전히 온실인 체하며 우릴 덮고 있는 것 같아.

 

 

 

시공간을 넘어, 실비아의 글과 삶으로 이어지는 연대


 

극 중 실비아는 빅토리아의 응원에 기차를 타고 종점까지 가보기로 한다. 자신을 믿어주고 북돋아 주는 한 사람이 있었기에, 그녀는 삶을 끝까지 살아보고자 결심한다. 기차에서 과거의 자신을 닮은 소녀를 본다. 그리고 실비아는 빨간 목도리를 뜬다. 그녀에게 빅토리아가 그랬듯, 다른 소녀에게 이른 봄을 선물해줄 따뜻한 목도리를.

 

M18. 글은 나의 대체물 rep. 

깜깜한 세상에서 소녀는 점점 사라져가.

소녀는 생각해. 내 글은 쓸모가 없어. 여기서 그만 멈출 거야.

너의 글이 누군가에게 목도리가 되어줄 거야.

세상이 추운 소녀들은 봄을 더 빨리 맞이할 거야.

 

어두운 계단을 올라가자. 멈추지 말고.

걷다가 보면 환한 빛이 우리를 맞이할거야.

 

 

실비아.jpg

 

 

그러니 주저 말고, 자책 말고, 검열 말고 쓰자. 실비아의 글과 삶이 우리에게 그랬듯, 우리도 다른 누군가에게 빅토리아가 되어줄 수 있으니.

 

실비아의 기일에 막을 올려 그녀를 살게 만든 <실비아, 살다>는 오늘 막을 내린다.

 

그럼에도

계속 살아, 실비아.

 

 

공연 사진: 공연제작소 작작

 

 

[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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