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늘의 나에게 가장 가깝게 - 도서 '내가 읽는 그림'

오직 나의 감각으로 감상하는 작품
글 입력 2023.04.16 14:1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230327112106_gyprgvgy.jpg

 

 

치유서사학이라는 문학 전공수업을 들으며 ‘자기 접촉’과 ‘치유’라는 개념을 배웠다.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우리에겐 각자 깊이 있게 와 닿는 구절이 다르다. 똑같은 구절을 어린 시절 읽었을 때와 어른이 되어 읽었을 때 또 다르다. 우리 안에 쌓인 경험, 삶,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가 그 선호를 결정한다. 우리는 문학 작품에서, 그 글 속에서 때론 알지 못했던 우리 안의 무의식과 만난다.


비단 소설, 시, 글 뿐만이 아니다. 그림, 사진, 그리고 노래나 음악 또한 그러하다. 유독 어떤 노래가 귀에 꽂히고 어떤 풍경이 가슴 속에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어떤 그림이 유독 쓸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내가 읽는 그림’은 타인이 아닌 오직 나의 시선으로 미술 작품을 즐길 수 있는, 이 시대의 가장 젊은 미술서이다. 숨겨진 명화부터 동시대 작품까지, 매일 밤 11시마다 BGA에서 발행해 온 콘텐츠들 중 121편의 작품과 에세이 페어링 콘텐츠를 엄선하여 수록한 책이다. 시인, 문화평론가, 방송작가, 화가, 큐레이터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스물네 명의 필자들이 진솔하고 솔직한 언어로 풀어놓은 감상들이 함께 담겨 있다. 


전문적인 평론가의 시선이나 정보성 설명이 아닌, 누군가의 일상과 하루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솔직한 생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여자와 배의 꿈에 관하여

전병구, 무제


 

[크기변환]J2-488x299.png

 


인간의 몸 또한 언제나 추락을 예정하고 있다. 그러나 묘하게도, 사람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은 그런 추락을, 중력을 거스르는 순간이다. 매트리스 속 스프링들이 필사적으로 몸을 들어 올려줄 때 우리는 고도의 편안함을 느낀다. 해먹에 몸을 맡긴 채, 하늘을 배경으로 매달려 있는 여자는 위태롭기보다는 가장 편안한 상태에 도달 해 있는 것 같다. 꺼지는 몸과 그 몸을 필사적으로 지탱하며 공중에 머무르게 하는 해먹 속에서, 그녀는 무척이나 자유로운 기분을 느끼고 있을 듯하다. 


 

끝나지 않을 듯한 매서운 추위와 찬바람이 가시고, 어느새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다. 해도 길어지고 햇살은 더욱 따사로워졌다. 길가엔 이름 모를 풀들과 꽃들이 피어난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봄이 다가왔다. 


창 밖을 느껴지는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며 문득 눈에 들어왔던 작품이다. 해먹에 몸을 맡기고 누워있는 편안해보이는 분위기와, 노랗고 따스한 색감, 부드러운 분위기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종종 좋은 날 대학 동기들과 자체 공강을 하고 한강 공원에 놀러갔던 추억이 떠오른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자유를 만끽하던 그 시절의 낭만이란. 돗자리 깔고 편의점 라면을 끓여먹으며, 또 배달받은 치킨을 먹으며 즐겁게 수다를 떨던 즐겁고 따사로웠던 순간들. 당시 근처엔 이런 해먹 의자가 있었는데, 배부를만큼 먹고 왁자지껄 수다를 떤 후엔 하나둘 이 해먹 의자에 기대 누워 노을진 하늘을 바라보곤 했었다.


자유라는걸 감히 정의할 수 있다면 바로 이런 순간들이지 않을까. 선선하게 불어오는 저녁바람을 느끼고 해먹 위에서 팔다리를 쭉 뻗으며 잠시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 순간의 더할 나위 없이 다정했고 편안했던 어떤 마음을 이 그림을 보면서 떠올릴 수 있었다.




존재의 감각

조혜영, Azure-Pool 1


 


내가 달릴 때 나를 둘러싼 배경은 캔버스를 스쳐간 저 붓자국들처럼 빠르게 흘러가고 이내 달리는 행위만이 남는다. 속도감을 갖는다는 것은 나의 자국을 세상에 남기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속도가 빨라질수록 귓가에 내려앉는 소리는 지나가는 행인들의 웃음소리도, 달리는 차 소리도 아닌, 나의 호흡 소리뿐이다. 

 


나는 색깔 중 파란색을 가장 좋아한다. 그런 이유로 처음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던 그림이다. 처음엔 하늘이 뒤집혀 있는 것 같다는 감상을 받았다. 그 다음엔 어쩌면 하늘의 풍경을 담은 호수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자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달리면서 스쳐지나가는 모든 풍경들은 마치 캔버스를 지나간 붓자국들처럼 이지러진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발상이다. 별다른 운동을 하고 있지 않은 내게 온전히 먼 길을 달렸던 기억이란 꽤 아득하다. 고등학교시절 친구들과 자선 마라톤대회에 나갔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하프 마라톤이었고, 뛰기보다는 걸었던 구간이 더 많았지만 걷고 뛰며 앞을 향해 나아가고 나아갔던 경험이란 꽤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만큼 뛰는 순간 내 귀엔 내 심장소리가 가장 크게 들린다. 주변의 풍경은 어느새 이지러지고 그 흐려진 풍경 속에 뛰고 있는 나 자신만이 또렷하고 선명해진다.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차를 탈 때면 창가자리에 앉는걸 좋아한다.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이 이지러지는 감정은 어쩌면 내게 익숙하다. 언젠가 스쳐지나왔을 나의 모든 순간들과 풍경들을 문득 떠올리게 된다. 



 

만남

위성환, paris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무거운 일이다. 지나온 삶과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지의 사건, 그 모두를 함꼐 감당하겠다는 다짐이 그 안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밤의 횡단보도를 스쳐 지나가는 두 사람이 있다.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영역을 걸어가는 두 사람. 녹색의 마법이 모든 것을 정지시킨 시공간 속에서 오직 그들만이 움직임을 허락받는다.

 


오늘도 길거리를 걸어가며 수많은 사람들을 스쳤다. 가끔 대중교통을 탈 때마다, 같은 칸이나 같은 버스에 타고 있는, 하필 지금 이 시간에 여기에 함께하게 된 사람들의 어떤 우연에 대해 생각한다. 놓쳐버린 앞의 버스와 뒤늦게 도착했을 그 다음 버스, 그리고 마침 내가 탄 이 버스에 대해서 생각한다.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새삼 참 놀랍고 새로운 일이다. 그건 전혀 다른 또 따른 세상과의 조우와도 같다. 무한한 우주 속 전혀 다른 모양과 궤도로 돌던 별들이 돌연 교차하게 되는 어떤 순간. 함께 시간을 나누고 공유하는 순간들. 새삼 그런 걸 느끼면 내 주변의 친구나 연인, 모든 새로운 만남들이 기적같이 다가온다. 


내일도 모레도, 앞으로도 난 평생 수많은 사람들을 스칠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스쳐지나갈 것이고, 그 중 몇몇은 멈춰서서 서로 인사하는 사이가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와 같은 방향으로 평생 길을 걷고자 할 사람을 마주칠지도 모른다. 


응시할수록 모든 일의 시작점인 만남에 대해, 그 낯섦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사진이다. 


*


진솔하고 솔직한 에세이를 따라 하나 둘 넘겨가며 바라본 작품들 중 어떤 것들은 그만의 색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오늘의 나에게 가장 가깝게, 평론가가 아닌 오직 나의 감각으로 작품을 즐겨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박주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