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개봉되지 않을 수 있는 편지를 보내는 것은 [사람]

그에 대한 또 다른 마음이 고이 전해지는 것
글 입력 2023.04.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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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때때로 과거의 소중한 인연들에게 메일로 편지를 보내곤 한다. 알림이 곧장 떠서 그리 멀지 않을 미래에 읽힐 카카오톡이나 메시지와는 다르게 언제 읽힐지 모른다는 설렘이 좋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다들 문서까지 카카오톡으로 주고 받으면서 메일을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회사의 경우는 예외가 있다. 내가 그들과 쓰는 메일은 대개 개인 메일이다.


의외로 어떤 사람은 아주 빠르게 메일을 확인한다. 그 사람은 나의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그 메일을 우리와 사진 전송용, 문서 전송용으로 사용하셨는데, 지금도 그것을 사용하고 계신 듯하다.-어찌 보면 그것도 선생님께는 하나의 업무용 메일이라 확인이 빠른 것일지도 모른다.-그 메일을 보낼 때마다 선생님은 나와 똑같이 메일로 답장을 해 주실 뿐, 추가로 문자를 보낸다거나 카톡을 보내시지 않는다. 선생님과의 메일 편지는 택배 정도 되는 것 같다.


또 누군가는 빨리는 아니지만 길어야 한 달이 지나기 전에 메일을 읽는다. 나는 이것을 볼 때마다 그 행동이 무엇보다 그의 생격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우선 그는 어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급하게 해내는 편이 아니다. 일정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일을 해결한다. 또, ‘청소’라는 것에도 그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 기본에 있는 것이 ‘주기적으로’였는데, 그 주기적인 기간은 너무나도 개인적이라 남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시기가 맞으면 메일이 빨리 읽히고, 맞지 않으면 느리게 읽히는 것이다. 이 친구는 내가 그것을 보낼 때마다 확인이 늦어 미안하다며, 다음에는 카톡이나 전화를 달라고 한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답장은 꼭 메일로 해 주는, 조금은 거칠게 친절한 친구다. 이 친구와의 메일 편지는 1년 후 우체통에 넣은 편지 정도 되는 듯하다.


그리고 1년보다 더 전에 보낸 메일조차 읽지 않고 있는 인물이 하나 있다. 이는 내가 중학교 때 처음 알게 된 친구다. 그 친구가 메일을 읽지 않는 것은 그와 나의 사이가 멀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그와 여전히 자주 카톡을 주고 받기도, 시간이 맞으면 만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사람들보다 오히려 연락의 빈도도, 만남의 빈도도 높다. 그저 내가 메일로 전한 편지는 읽고 있지 않을 뿐이다. 그가 그 아이디로 로그인하지 않은 지 오래된 듯하다. 나의 친구는 내가 종종 메일로 마음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지만, 나는 이따금 계속해서 편지를 보낸다.

 

처음에는 읽은 날짜로 변하지 않는 ‘읽지 않음’이 조금은 아쉬웠다. 내가 무엇인가를 보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그 메일로 뭐 보내뒀어”라고 직접 말해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게 6개월이 지나도록 읽히지 않았을 때 나는 깨달았다. 오래오래 쌓이고 묵을수록 어쩌면 더 의미가 커질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내가 그 친구에게 전하는 편지는 어쩌면 평생 읽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친구가 그 메일을 완전히 잊어버렸거나 다른 메일 여러 개에 익숙해져 버렸다면 그렇게 읽히지 않고 남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내가 그 친구에게 보낸 편지’대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개 편지는 누군가가 읽게 하기 이해 보낸다. 과거에는 말을 타고 직접 전달했기 때문에 제대로 도착했는지, 언제 도착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지번 주소를 활용했을 시절에는 간혹 편지가 분실되기도 했다.(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경험이다) 도로명주소를 사용하고, 우편 배달에 대한 시스템이 더 발전했을 무렵에는 사람들은 종이 편지를 많이 쓰지 않기 시작했다.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들이 우리에게는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그에게 보낸 편지는 정확히 도착은 했으나 받아야 할 사람이 받지는 못한 편지, 잘 도착했는지 잘못 도착했는지 정확히 할 수 없는 편지쯤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언제 개봉될지 모르는 편지’가 꽤나 큰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편지를 보내다 보면 그 사람에 대한 (내가 모르던) 성격도 알 수 있게 되고, 조금 더 신중한 마음으로 편지를 쓸 수 있으며, 보내지 않는 손편지 등과는 다른 재미들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가 읽으면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게는 큰 장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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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이 빨리 읽기를 바라는 또는 완전히 읽지 않기를 바라는, 그것도 아니라면 읽었으면 좋겠지만 왠지 읽지 않는 게 낫겠다는 마음이 들 만큼 전송이 후회되는 연락들까지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연락을 많은 사람들과 하고 있다. 그것과는 조금 다르게 ‘언제 읽혀도 상관없는’ 연락을 하나 추가해 보면 어떨까 한다. 주변 사람들의 재미있는 반응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연락하고 싶지만 왠지 주춤하게 되는 이에게 보내보는 것도 좋다. ‘읽었으면 좋겠지만 왠지 읽지 않는 게 낫겠다는 마음’의 그 어딘가를 잘 잡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계속 읽지 않아서 전송이 후회된다면 전송을 취소하면 그만이지 않은가. 이러한 '개봉되지 않은 편지' 혹은 '언제 개봉될지 모르는 편지'로 지난 날 소중했던 인연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단장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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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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