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 마지막으로 비밀 연극하자! - 뮤지컬 '비밀의 화원' [공연]

글 입력 2023.04.0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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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비밀의화원-포스터.jpg



 

우리는 때론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어릴 땐 생각했다. "어른들이 동화를 왜 읽어? 아이들을 위해 쓰인 거 아니야?" 동화(童話)를 한자 뜻으로 살펴보면 '아이 동'과 '말씀 화'로 이루어져 '어린이를 위하여 동심을 바탕으로 지은 이야기'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어린 시절의 내가 맞았다. 아이들을 위해 쓰인 이야기. 그것이 동화의 본질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세상을 경험하며 나의 생각은 바뀌었다. "어른들에게도 동화가 필요해."

 

뮤지컬 <비밀의 화원>은 나와 같은 마음을 공유한 어른들을 통해 탄생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른인 사람이 없고, 모두 어린 날의 하루하루가 쌓여 현재에 다다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는 여전히 '비밀의 화원'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커버린 아이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공연이 무대를 올렸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소설 <비밀의 화원>을 바탕으로 한 작품 뮤지컬 <비밀의 화원>은 보육원 아이들이 비밀 연극의 방식으로 소설 속 캐릭터들을 만나는 극중극 형태로 진행된다. 소설 <비밀의 화원>은 인도에서 부모에게 방치되었던 소녀 메리 레녹스가, 사람의 손길을 잃은 땅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비밀의 화원을 가꾸면서 자신의 마음 또한 위로를 찾는 이야기이다.


이번 뮤지컬 <비밀의 화원>의 김솔지 작가는 "<비밀의 화원>은 모든 어른의 마음속에 있는 어린아이를 치유하는 이야기다. 이 공연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속 정원에 장미가 가득 피어나길 바라며 뮤지컬을 구상했다."라고 전했다. 소설 <비밀의 화원>이 초등학생 필독서로 손꼽히며 명작으로 어린 나이 독자들에게도 읽혀온 만큼 뮤지컬도 8세 이상 관람가로 설정되어 있다.

 

 


네 명의 사랑스러운 주인공들



조명이 켜지고 무대는 관객들을 1950년대 영국의 보육원으로 데려간다. 그곳에는 곧 퇴소를 앞둔 네 명의 아이들이 있다. 주변을 밝히는 환한 미소를 지닌 당차고 거침없는 성격의 에이미, 이별을 앞두고 까칠한 모습을 보이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지닌 찰리,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고 동물에게 관심이 많은 해맑은 디콘, 가장 어른스럽고 성숙해서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데보라.


하루만 지나면 아이를 입양하고 싶은 어른들이 방문하는 마지막 '오픈데이'가 열린다. 세상에 나갈 준비, 어른이 될 준비가 아직 되지 않은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네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는 오늘, 어릴 때 같이 즐겁게 하던 '비밀 연극'을 다시 준비한다. 직접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각자 배역을 맡아 연기하는 친구들과의 비밀 연극이 가장 즐거운 나이지만, 퇴소를 앞둔 보육원 아이들에게 이런 어리광은 허락되지 않는다.


공연을 보는 내내 정말 사랑스러운 인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듬어주고 아껴주고 싶은 아이들에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착하고 말 잘 듣는 아이로 보일 수 있는 수동적인 모습을 요구하는 상황에 마음 아팠다. 현실의 상황을 바꿀 수 없는 아이들에게 비밀 연극은 하나의 좋은 돌파구가 되었다. 보육원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는 소설 속 메리와 콜린을 연기한 에이미와 찰리에게 뚜렷한 성장이 있던 이유이다.

 

 

봄 상상을 하면 나쁜 속삭임

겨울 가듯 녹아내려

나 꿈에서라도 가보고 싶어

몸부림쳐 올라오는

살아있는 봄

메리와 콜린 <상상>

 

 


극중극 형태



공연은 앞서 말한듯 보육원 아이들의 비밀 연극이라는 극중극 형태를 보인다. 모든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에이미, 찰리, 비글, 데보라와 더불어 소설 속 메리, 콜린, 디콘, 마사를 연기한다. 연기 속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소설 속 주인공으로 대사가 가장 많은 메리(에이미)가 크레이븐 저택에서 만나는 정원사, 울새 등을 비글과 데보라가 연기하는데 극과 극 사이에 위치한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웃음을 준다.


다른 어떤 놀이들과 달리 비밀 연극만이 가진 특별한 점은 모두가 약속한 시간 동안은 온전히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픈데이라는 중대한 일을 앞두고 있지만 비밀 연극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잠시나마 넓은 저택에서 하녀들의 보살핌을 받는 소녀로, 동물과 식물에 대해 박식한 소년으로, 저택의 주인이라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소년으로 지낼 수 있었다.


소설 속 인물을 연기하는 동안은 현실의 어려움을 잠시 내려둔다. 그곳에서 본인처럼 어떤 삶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마지막에는 자신만의 해결 방법을 찾는 경험을 간접적으로 하게 된다. 웃는 법을 모르던 메리는 진심으로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되었고, 평생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던 콜린은 자신의 몸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연극을 통해 한 경험은 현실 상황에서 용기를 준다.


 

무관심 속에서 제멋대로 자라나

웃는 법은 모르고 울고 화낼 줄만 알던 메리

고아가 되어 하나뿐인 친척 크레이븐 경의 저택에 도착한다

에이미(메리) <책을 펼쳐>

 

 

[국립정동극장] 뮤지컬 비밀의화원 프레스콜 (6).jpg

 

 

 

감각적인 무대 연출 - 악기, 향기, 화원



사실 뮤지컬 <비밀의 화원>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시선을 끄는 요소가 있었다. 바로 여러 종류의 악기와 연주자들이다. 건반, 바이올린, 첼로, 기타들과 타악기들이 무대 한곳을 가득 채우고 있다. 노래뿐만 아니라 연주도 현장에서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있는 연주자들은 이야기를 직접 이끌고 나가는 배우 못지않게 바쁜 모습이었다. 이들의 모습을 눈에 담느라 나의 눈도 바빴다.


악기와 연주자들이 청각을 화려하게 해줬다면 <비밀의 화원>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소설 속 세 친구가 화원에 있을 때 느낄 또 하나의 감각, 후각을 채워주는 요소가 있다. 공연을 신나게 따라가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은은하게 싱싱한 풀과 꽃의 향기가 난다. 유독 아이들이 화원에서 머무는 장면에서 또렷하게 느껴지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순간 그 향기가 화원을 상상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함을 깨닫게 된다.


정동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한 경험이 많지 않아 알지 못했던 사실이 또 하나의 놀라움을 주었다. 메리가 처음 울새를 따라 화원을 발견하고, 메리가 처음 디콘과 함께 꽃을 심으러 화원을 들어오고, 두 친구가 화원을 가꾸는 동안은 가려져 있던 화원의 진짜 모습이 공연의 후반부에야 공개된다. 콜린과 함께 화원에 온 날 믿을 수 없이 무대 위 공간이 열리면서 보이는 거대한 비밀의 화원은 꿈속 세상인 듯 황홀함을 안겨준다.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곳

나뭇가지 사이로 춤추는 햇빛

아주 오랫동안 잠들었던 화원

디콘과 메리 <미니어넷>

 

 

 

오래 마음에 남는 향기로운 음악



공연이 영화와 달리 가진 특성은 현장성이다. 무대 위의 배우들을 실제로 보고 관객들이 그들의 웃음과 눈물에 함께 마음이 움직이는 경험은, 그 순간에 공연장 안 모든 사람이 같은 호흡으로 감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그날을 추억할 뿐 다시 꺼내어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존재한다. 공연이 끝난 후 그리움이 짙어질 무렵 힘을 더 발휘하는 공연의 요소는 음악이다.


특히 뮤지컬 작품의 경우는 이야기가 가사 속에 녹여져 있기 때문에 뮤지컬의 넘버를 찾아서 듣는 것으로 공연 관람했을 당시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다시 불러올 수 있다. 이번 작품에 <프랑켄슈타인>, <벤허>, <아몬드> 등 한국 창작 뮤지컬 흥행을 이끈 작곡가 브랜든 리(이성준)가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 음원으로 공개된 <비밀의 화원> OST는 3곡(울새와의 하루, 혼자 서는 법, 미셀스웨이트 저택)이다.


선공개된 3곡 외에도 개막 전 진행된 '작은 음악회'를 통해 들려준 넘버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들을 수 있다. 공연을 보기 전에 듣는다면 어떤 무대 연출과 함께 등장하는지 더 집중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공연을 이미 본 후라면 뮤지컬의 여운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넘버가 어색해서 뮤지컬 관람에 익숙하지 못한 관객도 <비밀의 화원> 넘버 중 적어도 하나는 마음에 와닿는 곡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버려진 화원 잠긴 문 너먼 어떤 곳일까

네가 살고 있는 큰 나무 담너머에

꽃은 피어나지만

주인 없이 잠긴 화원

우리 친구라면 그곳으로 나도 데려가 줄래

메리와 마사 <울새와의 하루>

 

 

[국립정동극장] 뮤지컬 비밀의화원 프레스콜 (9).jpg

 

 


경험하게 될, 공감하는 이야기



누구에게는 이미 지나온 어린 시절, 누구에게는 현재 겪고 있는 어린 시절이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각자의 매력이 있는 보육원 안 아이들이지만 어딘가 나와 닮은 모습이 보였다.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에이미, 희망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 많은 것에 무신경하고 싶었던 나의 어린 시절은 찰리, 어른이 되는 속도가 나에겐 빠르게만 느껴지는 순간은 비글, 나를 만나 더 행복해지는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즐거운 건 데보라.


네 명의 아이들은 무사히 즐겁게 마지막 비밀 연극을 마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비밀의 화원>은 이들이 보육원을 떠나 각자의 세상 속에서 살 때에도 마음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울새가 정말 살아있는 새가 아니어도 친구들과 함께 하는 비밀 연극 속에서 교감할 수 있었던 것처럼, 현실적인 어려움을 사랑으로 실현하는 마법이 가능한 마음속 비밀의 화원을 잘 간직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소설 <비밀의 화원>을 읽고 연극을 하면서 네 아이가 성장했듯, 뮤지컬 <비밀의 화원>은 나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었다. 이것이 예술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관계없는 타인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그들이 겪는 고난과 기쁨을 통해 나의 모습을 돌아보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겪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통해 관객도 현실의 삶에서 용기를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조금만 조금 기다려줘

시간이 지나면 어른이 되잖아

흐르는 시간의 속도가 내겐 벅차서

조금만 미루고 싶어

비글(디콘) <조금만>

 

 

[정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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