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아 잊히게 된 화원의 문을 다시 두드리다 - 비밀의 화원 [공연]

글 입력 2023.04.01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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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적 <비밀의 화원> 그림책을 가지고 있었다. 화려한 색감의 책 표지와 큼직하게 적힌 ‘비밀의 화원’이라는 글자 때문인지, 그 책도 왠지 비밀처럼 소중히 다루며 읽어야 할 것 같았다. 네모반듯한 책이 헤지지 않도록 조심히 책장을 넘겼던 기억이 떠오른다.


내용까지 세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꽤나 환상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졌던 그 감정만큼은 아직도 어렴풋이 남아있다. ‘나에게도 그런 아름다운 비밀의 화원이 있었으면’ 하며 주인공인 메리를 부러워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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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비밀의 화원>에 나오는 에이미, 비글, 찰리, 데보라도 나처럼 어린 시절에 ‘비밀의 화원’을 책으로 만났던 아이들이다.


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보육원에서 함께 지내다가 이제는 세상 밖으로 나갈 나이가 되어 퇴소를 앞두고 있다.

 

보육원에서는 반년에 한 번 아이를 입양하고 싶은 어른들이 방문하는 ‘오픈데이’가 열린다. 이 네 명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마지막 오픈데이를 하루 앞두고 청소를 하던 중 울새 모형과 낡고 헤진 ‘비밀의 화원’ 책을 발견한다. 


그동안 숱한 오픈데이를 거치면서도 그들은 후원이나 입양 등의 도움을 받지 못해 마지막까지 보육원에 남아있다. 내일도 기회가 오지 않는다면 각자 홀로서기를 해야한다는 사실에 분위기가 침울해지던 차에, 에이미는 어린 시절처럼 ‘비밀의 화원’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책을 읽는 비밀 연극을 다시 해보자고 제안한다.


즉, 이 공연에서는 실제 ‘비밀의 화원’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아닌, 그 책을 통해서 상상을 하고 힘을 얻는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하며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마음속에 스스로 비밀의 화원을 가꿔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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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비밀 연극을 통해 ‘비밀의 화원’ 소설 속 메리, 디콘, 콜린, 마사가 되어 연기하는 장면들이 관객에게는 극중극 형식으로 펼쳐진다.


어린아이처럼 연극놀이를 하는 모습은 마냥 낙천적이고 순진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것은 그들에게 놀이 이상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들에게 이번 비밀 연극은, 스스로의 삶을 혼자 책임져야 하는 날들을 앞두고 어린 날 자신들에게 용기를 주었던 상상을 통해 힘찬 발돋움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보육원 아이들의 상황은 ‘비밀의 화원’ 소설 속 아이들의 이야기와도 맞물린다. 소설 속에서 메리는 사랑 받은 기억이라고는 없으며, 흑사병으로 부모님 모두를 잃고 고모부의 대저택에 오게 된 아이이다. 모든 걸 시중들어주는 하녀도 없고, 별다른 놀 거리도 없는 대저택에서의 시간은 지루하고 더디게만 흐른다.


하지만 메리는 저택에서 일하는 마사의 조언에 따라 황무지 들판에 나가보고, 울새와도 친구가 되며 홀로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배워간다. 그리고 10년간 굳게 닫혀 아무도 들어가지 못했다는 저택의 화원을 남몰래 찾아내고 그것을 자신만의 비밀의 화원으로 가꾼다.


마사의 동생인 디콘은 모든 꽃과 나무, 동물들의 친구인 인물로, 메리와 함께 비밀을 지키며 화원을 가꾸는 것을 돕는다. 이들은 자신이 곧 죽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매일 울기만 하는 대저택의 도련님 콜린과도 친구가 되어 그가 스스로의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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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에 관한 연극을 하며 보육원의 아이들은 마음속에 있는 자신만의 비밀의 화원을 계속 지키려 한다.


그들은 자신이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도, 현실에는 두렵고 절망적인 일들이 훨씬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보육원에서 같이 자라온 친구들과의 추억과 상상을 간직하고 되새기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기 위해 비밀 연극을 함께 한다.


그들에게는 사전적 의미의 가족은 없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다름 아닌 가족 같은 존재가 되어주며 보육원 바깥세상에서의 새로운 삶에 첫발을 내딛는다.


공연을 보며 아주 어릴 적, 그리고 학창 시절 한편에 친구들과 함께 나눴던 추억의 순간들과 대화들이 떠올랐다.


오랜 시간 굳게 닫혀 있었던 비밀의 화원처럼, 오랫동안 아무도 들여다봐주지 않아 잊히게 된 과거의 소중한 기억들이 내 안에 숨어있는 것 같았다.


<비밀의 화원>은 마음속 어딘가에 숨겨진 정원이 아직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으니 문을 찾아 두드려보라고 말하며, 각박한 현실 속에서 즐거움을 잃어가는 이들에게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치 메리에게 화원으로 향하는 길을 알려주고 낡은 열쇠를 전해준 울새가 그랬던 것과 같이.


마음속 숨겨진 화원에 관심을 기울이고 물을 준다면 향기 가득한 꽃밭이 다시 피어오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송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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