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도서/문학]

불면에 대한 헤세의 예찬, <밤의 사색>
글 입력 2023.03.2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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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보면 난 어둠을 사랑한다. 삶 속에서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어두운 순간들을 떠올려 보았다.

 

먼저 공연의 암전이 생각났다. 약간 산만한 음성들이 여기저기 울리는 공연장, 노랗게 켜진 객석등은 옆 사람이 보고 있는 휴대폰의 흠집까지 선명하게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공연을 시작한다는 안내 방송이 불현듯 흘러나오고 그 순간 사람들은 분주하게 하던 것들을 정리한다. 그리고 이내 불이 꺼져버린다. 마치 안내방송의 입김이 타오르고 있는 촛불을 끄듯, 꺼진 촛불의 열기가 공연 전의 긴장으로 이어져 모두가 이 갑작스러운 어둠 속에서 절로 침을 삼키게 된다.

 

요즘 하루 중 제일 행복한 시간이 어둑어둑 해진 밤을 산책하는 순간이다. 어둠이 가라앉은 밤공기가 살갗과 옷깃 사이의 공간, 그 공백 안을 채운 차가운 공기가 느껴질 때. 걷다 보면 비치는 아파트 속 방마다 다른 백열등과 LED가 만드는 야경. 이 모든 것들을 음미하며 걷는 내 발걸음과 조용히 깔린 내 헤드폰 속 음악이 하나의 안무 마냥 찰떡이라고 느껴질 때. 아무 생각 없이 밤의 운치를 감상하며 한 걸음 한 걸음을 소중하게 걷게 된다.

 

또 은은한 조광이 비치는 어두운 카페는 어떠한가. 카페 아르바이트생이 미쳐 바빠 치우지 못한 먼지들은 가려지고 내 정신을 한껏 고양시켜줄 커피와 무드 있는 조명들이 반긴다. 이런 공간 속에서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다면, 상대의 눈망울에 집중해 보아라.

 

눈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그 사람이 무엇을 갈망하고 어떤 것이 필요한지 단번에 맞춰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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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체가 조금 달라진 까닭은 방금 헤르만 헤세의 <밤의 사색>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헤세의 짧은 산문들이 엮인 이 에세이는 굉장히 헤세답다. 이 책에서 헤세는 불면증을 강렬히 예찬한다.


 

‘나는 불면의 고통을 견디고 불면의 밤을 축복하는 법을 배웠고, 어둠 속에 잠복해 독한 숨을 내뱉는 절망을 눈 하나 깜짝 않고 노려보았다.’


 

‘우리는 잠 못 이루는 밤에 우물물 소리를 듣다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감탄하고, 베일에 가려진 삶의 마지막 진실에 경외심을 갖고, 더 진지해지고 더 깊이 생각하며 인내심을 발휘한다.’

 

 

심지어 이런 말도 한다.


 

‘잠 못 이루는 밤을 평생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사람은 아마 가장 순진한 영혼의 소유자일 것이다’

 

 

다소 불면을 찬양하는 태도가 극단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대부분의 이들이 헤세의 문장들에 공감할 것이라 생각된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밤을 지새우며 끝없이 정주행한 드라마가 세상 짜릿하고 자극적이듯이 모두가 곤히 잠든 밤 초롱초롱한 내 눈을 발견하는 일은 꽤나 흥분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밤을 기다리는 일은 낮으로부터의 도피일지도 모른다. 가리고 싶어도 그 어느 것도 가려지지 않는 밝디 밝은 대낮. 모두가 바삐 움직이고 분주한 하루가 펼쳐지는 생생한 삶의 현장이 버거워서. 태양은 뜨겁지만 낮 동안 이리저리 치이며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을 밤에 잠시나마 녹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더욱더 잡고 싶어서 잠에 들기 싫은 걸 수도 있다.

 

사실 헤세의 책을 읽다가 말았다. 헤세는 책 제목답게 불면이었지만 사색의 시간이었던 자신의 밤들을 읊는다. 하지만 난 불면일 때 사색도 그 무엇도 하지 못한다.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밤의 시간을 눈 뜬 채 보낼 뿐이다. 그래서인지 헤세의 말들이 읽으면 읽을수록 와닿지가 않았다. 그래도 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시길.

 

불면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주는 책이다.

 

 

[신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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