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장 한국적인 발레를 만나다 - 유니버설 발레단 '코리아 이모션'

글 입력 2023.03.2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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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가장 한국적인 발레를 만나고 왔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2023년 신작 '코리아 이모션'은 한국인의 대표적인 정서인 '정(情)'을 다채롭게 표현한 네오클래식 발레 작품이다.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작품이었다. 발레 공연에서 무려 자진모리장단, 가야금과 아쟁의 선율, 판소리로 한 편의 축제를 벌이다니. 애절하고 가슴 뭉클한 한국인만의 '정(情)'을 유니버설 발레단의 아름다운 공연으로 만나보았다.

 

 

2023 정기공연 코리아이모션 포스터.jpg


 

유니버설 발레단의 첫 번째 정기공연 '코리아 이모션'을 관람한 후에 어머니와 나는 한참 감동에 벗어나지 못했다. 공연장에서 퇴장한 이후부터 시작된 대화는 며칠간 이어졌다.


'코리아 이모션'을 초대했을 때 어머니께서 예상한 것은 흔히 하얀색 발레복을 입고 공연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셨다고 한다. 그런데 공연을 보고 나오니 섣불리 예상했던 그림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난 되게 쇼킹했어. 알고 보면 발레만의 동작과 표현이 우리나라의 정서에 너무 잘 맞았네. 파워풀하면서도 굉장히 섬세하고, 감정을 섬세히 드러내는 게 한국 고유의 정서랑 참 어울렸어. 그야말로 창작자의 고뇌와 고통이 느껴지는 진정성 있는 공연이었어. 전통을 그저 답습하지 않고 현시대에 재해석했잖아."

 

 

2021( Korea Emotion 2 ) - ⓒ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ngjin Kim  (22).jpg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서양의 무용인 발레를 우리나라의 감정과 정서로 표현한 것 자체가 충격적이셨다고. 나는 연이어 말을 덧붙였다.

 

"그러게. 나도 공연을 보는 내내 충격 그 자체였어. 사람의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이미 한계를 돌파했다는 생각도 새삼 들었고. 같은 몸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누군가는 저렇게 땅 위를 날고 발끝으로 서서 온몸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니. 그저 경이롭다는 말 밖에는 안 나와"

 

어머니께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다시금 딸이 호흡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간다.

 

"태초의 사람이 발레를 처음부터 한 것은 아니었잖아. (웃음) 사람의 몸을 가지고 태어나서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하다 보니 '발레'라는 장르가 생기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했겠지. 결국 우리가 보는 이 공연도 발레의 진화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

 

가만히 나의 말을 들은 뒤 어머니는 다시 감상을 이어가셨다.

 

“그게 예술이지. 예술의 진정성은 옛것을 그대로 옮겨놓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예술가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공유하는 것이 예술이 아닐까. 과거의 것을 똑같이 복제해서 따라하는 것이 아닌거지. 상상이나 해봤겠니. 발레가 한국인의 정(情)을 표현하는 감각을 이렇게 잘 살리게 될 줄은."



2021( Korea Emotion 2 ) - ⓒ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ngjin Kim  (64).jpg

 

 

모녀의 대화는 끝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직도 그날의 감동을 다 말씀하시긴 이르다.

 

“주워 담을 수가 없는 순간의 예술이잖아. 단 1시간 가량의 공연에서 잃어버린 감정과 감성을 얻은 것 같아. 여기서 알 수 있는 거 같아. 우리가 왜 예술을 접해야 하는지 말이야. 예술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본질의 감각들이 있단 말이지."

 

대화가 무르익으면서 어느덧 우리의 대화는 점차 확장되었다. 발레 공연을 접하고 나서 문득 '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AI가 아무리 사람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하더라도, 분명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미묘한 감정과 정서를 이끌어내는 영역만큼은 따라오지 못할 거야.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발레의 모습과 우리의 고정관념을 깬 것도 '코리아 이모션'이었잖아."

 

 

2021( Korea Emotion 1 ) - ⓒ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ngjin Kim  (49).jpg

 

 

대화의 방향은 어느덧 '코리아 이모션'의 작품 의도로 향했다. 어머니는 마지막까지도 아낌없이 그날의 감상을 연이어 말씀하셨다.

 

"사실 내 기준에서 '발레'라고 하면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 같은 배경을 생각했거든. 하지만 공연에서는 국악을 아름답게 활용해서 완전히 새로운 연출, 새로운 의상을 선보였지. 푸르른 배경과 아름다운 한복을 연상케하는 의상까지 모두 한국적이었어."

 

한편 연출가의 시점에서 왜 '코리아 이모션'이 탄생했는지 고민에 잠기기도 하고, 공연의 완성도와 대체 불가능한 매력에 감탄하시기도 했다.

 

"연출가는 왜 이 시점에서 이런 공연을 했을까? 그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한 걸까 생각하게 되네. 사실 발레라는 공연이긴 하지만 연출자의 영혼을 보고 온 거지. 그런 연출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애처롭고 서정적인 작품을 볼 수 없었을거야."


 

2021( Korea Emotion 3 ) - ⓒ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ngjin Kim  (2).jpg

 

 

지금까지 모녀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보고 왔다.

 

이번 리뷰에서 이렇게 대화 형식을 활용한 이유가 있다. 그저 화려한 수식어만으로 공연에 대해서 설명하기에는 창작진들의 의도와 관객의 감동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할 것 같았다. '국악 크로스오버와 네오 클래식 발레의 만남'에 대하여 관객들이 실제로 어떤 감상을 나누었는지 생생하게 전하기 위함이었다.

 

우리 모녀는 2000년대 초반 유니버설 발레단의 공연을 함께 관람하고 나서 거의 18년이 훨씬 지난 후에야 다시 유니버설 발레단과 만나게 되었다.

 

재회했지만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만난 그들의 작품. 인간과 AI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대변혁의 시대에서 '코리아 이모션'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오로지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몸의 예술'을 계기로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와 인간만의 독창성에 감응할 수 있었다.

 

 

[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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