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관찰과 묘사를 통해 꽃피우는 문화원형 - 조선 미술관 [도서]

한국 미술사에 주목하다.
글 입력 2023.03.23 13:4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31 (1).png

  

 

궁궐 담장을 사뿐히 넘나드는 특별한 전시회! 

조선 미술관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한국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하나의 방법은 '한국인은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답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한국인은 어떻게 살아왔는가'는 사진으로 많이 남아 있는 조선 말과 일제시대 생활상을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그런데 사진을 들여다보니 국토는 대부분 민둥산이며 양반이건 서민이건 기운이 모두 침체되어 있다. 이것은 나라의 정신과 살림이 가난하던 시대 상황 탓이다. 물론 조선 오백 년 내내 그랬을 리 없다. 사진이 담아낸 것은 기울어가던 시절의 모습일 뿐이다.

 

서문 중 p. 8

 

 

몇 세기를 넘어선 기록의 흔적을 마주할 때면, 절로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미래에서는 현재의 기록이 또다시 과거의 이야기가 되므로 '한국인들은 어떻게 살아왔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공통된 문화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의식주를 비롯하여 당시 유행하는 물품이나, 삶의 가치관 등의 생활 양식을 공유한다. 이처럼 하나의 문화가 지니고 있는 고유의 정서는 사라지지 않고 그 맥을 유지하게 되는데, 오늘날 'K-culture'로 불리는 한국의 문화원형은 시간에 따라 겹겹이 쌓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 사회의 이면,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도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타자를 이해할 수 있듯이,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른바 문화원형을 살펴보는 일이야말로 '한국인은 누구인가'라는 답에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다. 

 

 

 

풍속화 : 시대 속 사람들의 생활상



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소지하는 기록장치로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일상을 남길 수 있는 것과 달리, 사진이 등장하기 이전의 17~18세기 조선에서 미술은 우리의 모습을 담아낸 중요한 매체였다. 타문화의 영향에서 차츰 벗어나 한국만의 고유한 색을 꽃피웠던 '문화 절정기' 조선 후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 시기에 활동한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은 한국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조선 미술관>의 1관. 궁궐 밖의 사사로운 날들은 위에서 언급한 작품 이외에도 다양한 인간사를 보여주는 '풍속화'를 소개하고 있다.

 

 

[크기변환]KakaoTalk_20230322_192012569_01.jpg

 

 

그중에서도 정선의 《어초문답 漁樵問答》은 문화 절정기에서 전환점을 맞이하는 그림으로 보인다. 진경산수화의 대가로 알려진 겸재 정선은 풍속화를 그리는 것에 있어서도 새로움을 추구하는 선구자 역할을 했다. 

 

기억에 남는 저자의 해설은 바로 조선인이 쓰던 '지게'에 있다. 지게는 중국과 일본의 나무꾼이 사용하지 않는 물건으로, 조선의 고유색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또한, 두 사람의 얼굴을 모두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선이 그린 풍속화의 특색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아름다운 산수를 배경으로 대화를 나누는 어부와 나무꾼처럼 어쩐지 여유로움을 한껏 만끽하고 싶다.

 

 

[크기변환]KakaoTalk_20230322_192012569_02.jpg

 

 

책에 실린 단원 김홍도의 《포의풍류 布衣風流》는 이전에 알고 있던 그의 작품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김홍도의 작품을 떠올리면, 역동적인 움직임을 물론이고 각각의 인물이 취하는 특정 행동이나 표정을 통해서 삶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반면에 위 그림은 한 명의 인물과 주변의 사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저자의 해설에 따르면 이 인물은 비파를 타고 있다. 지인들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김홍도가 악기를 잘 다루었다고 하는데, 풍류를 즐기고 있는 모습은 어쩌면 자신을 형상화하지 않았을까?

 

추가로 책을 중심으로 붓·도장·향료 등의 문방구와 도자기·화병·부채 등의 골동품, 또는 자신의 애장품을 그린 책가도(冊架圖)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궁중 회화에서 민화로 퍼져나갔다. 아쉽게도 김홍도의 책가도는 전해지지 않았지만, 이를 연상케 하는 《포의풍류 布衣風流》을 보며 당시에 유행하는 것과 사람들의 취미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애서가와 수집가의 취향이 담긴 책장을 소개하고, 방을 구경하는 재미는 변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기록화 : 베일에 쌓인 궁중 생활의 흔적


 

여러 대중매체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역사물은 어떻게 당시의 생활상을 표현했을까?

 

자주 등장하는 작품의 배경을 보면 우리에게도 익숙한 왕의 이름과 그들의 업적 및 일화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기록을 보다 상세하게 남긴 '사관(史官)'이 있었다. 왕의 말과 행동은 물론이고, 관리에 대한 평가와 당시에 일어난 사건을 후대에 남기는 역할을 했다.

 

또한 궁중에서 필요로 하는 그림을 제작하는 국가 기관인 도화서의 '화원(畵員)'은 특별한 사건이나 사실을 남기기 위한 기록화를 그렸다. 숙종 때에 이르러서는 도화서와 화원에 대한 적극적인 후원이 이어지고, 정조에 차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 제도가 만들어졌다. 책에서 등장하는 김홍도, 김득신은 차비대령화원 출신으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는데 더욱 뒷받침된 그림, 바로 기록화가 없었다면 숙종, 영조, 정조 때를 지금처럼 다각도로 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크기변환]KakaoTalk_20230322_192012569.jpg

 

 

<조선 미술관> 2관. 궁궐에서 열린 성대한 잔치는 기록화 중에서도 임금이 등장하는 '궁중기록화'를 소개하고 있다.

 

국보로 지정된 《기해기사첩 己亥耆社帖》은 임금이 기로소에 들어간 사건을 그린 기사첩이다. 여기서 기사(耆社)란, 70세 이상이고 정이품 이상의 중신을 우대하는 뜻에서 만든 모임을 뜻한다. 그리고 기로소(耆老所)는 기사들이 친목을 다지거나, 이들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된 관서이다. 참고로 왕은 60세가 되면 기로소에 들어갔다.

 

특히, 숙종이 태조 이성계 이후 두 번째로 기로소에 들어간 왕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 그림은 더욱 의미가 있다. 이어서 조선 최장수 임금인 영조의 《기사경회첩 耆社慶會帖》도 함께 수록되었다. 

 

한편 기로소 입소와 관련된 행사는 크게 다섯 개로 나뉘었으며, 지금부터 소개할 《경현당석연도 景賢堂錫宴圖》는 임금이 경현당에서 기로신들을 위한 베풀었던 잔치를 기록했다.

 

자세히 보아야 더 섬세한 관찰이 가능한 걸까. '일월오봉병'의 아랫부분이 보이는 임금의 찬안 뒤와 '별순검'이 자리 잡고 있는 찬안 양쪽에 대한 저자의 해설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또한, 경현당 가운데 탁자 위에는 항아리와 모란꽃이 있다. 기로소에서는 봄과 가을에 기로연을 연다고 했으니, 모란꽃이 피는 시기인 6월을 생각하면 꽃은 채화이다. 이것만 보아도 당시에 화원들이 얼마나 뛰어난 관찰력을 발휘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했는지 알 수 있다. 

 

*

 

몇 달 전에, 알쓸인잡에서 신윤복 《월하정인》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을 봤다. 사실적인 묘사를 특징으로 하는 신윤복의 그림에서 초승달의 모양이 보통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달랐다는 점을 주목했다. 위가 볼록한 초승달은 월식일 때 나타나는데, 이를 다시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보면 그림을 그린 특정 날짜를 유추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은 과거에도 중요했으며, 현재와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도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그리고 조선 미술관은 역사책이자 미술책으로 옛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국인은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했다. 

 

이제 우리가 살아갈 시대의 사실 정신이 더욱 중요한 가치로의 역할을 부여받고, 역사 속에서 미술과 그림이 현실과 맞닿아 있는 기록의 견고함으로 느껴질 때 '한국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도 더욱 투명하게 마주할 수 있다.

 

 

 

안지영.jpg

 

 

[안지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