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돌아버린 세상이라고 해서 같이 돌아버리는 게 정답인걸까? - 공연 '보이체크 인 더 다크'

부정적인 세상 속 긍정 한줄기
글 입력 2023.03.2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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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 인 더 다크>는 가난하지만 순수한 군인 보이체크와 카바레에서 일하지만 보이체크의 순수한 마음을 알아보고 사랑에 빠지는 마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쟁 속 돈과 권력으로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 보이체크와 마리는 아이 한젤을 낳지만 한젤이 아파가며 결국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비록 이들의 순수한 사랑과 행복에 대한 갈구는 썩어빠지고 부패한 전시 상황 속에서 극대화되지만, 오늘날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의 간절한 욕망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상도 돈과 권력이 지배하며 우리의 영혼은 나날이 메마르고 척박해지고 있지만, 과연 우리 마음속에 진실하고 순수하고 사랑과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보이체크의 이야기

 

아무 생각하지 말고 쓸모없는 존재는 가차없이 죽이라는 동료 군인의 말에 '어떻게 살아있는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냐'고 반문하던 보이체크. 그는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의 신념이 굳건하며 진실한 영혼과 맞닿아 있는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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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는 자신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마리를 위해 꽃이라도 심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기에, 아름다운 마음의 씨라도 뿌려 마침내 그곳에 사랑의 꽃이라도 피길 바랐던 보이체크는 결국 안타깝게도 사랑의 꽃을 피우지 못하고 만다.
 
전쟁 속 용병으로 전락하여 잔인한 실험의 대상이 되어가며 이성을 잃고 마침내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되어가는 보이체크지만 관객의 입장에선 그러한 보이체크가 안쓰럽고 가엾게 느껴지기만 한다.
 
보이체크가 끔찍한 전쟁 속 실험의 희생자가 되어 살인을 저질렀다는 이유만으로 손가락질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보이체크가 사람을 죽인 걸까, 세상이 보이체크의 영혼을 죽인걸까?
 
이미 썩어빠진 세상 속에서 보이체크의 영혼은 파괴되어 버린 지 오래다.
 
 

마리의 이야기

 
카바레에서 일을 하는 마리는 자신의 겉모습만 보고 멋대로 판단하고 추파를 던져대는 남자들이 지긋지긋하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내면을 알아봐 주고 다가와 준 보이체크는 그녀에게 얼마나 소중한 한 줄기의 빛처럼 느껴졌을까? 보이체크는 이 지겨운 악몽에서 잠시나마 깨어날 수 있는 따스한 햇살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렇게 마리는 속수무책으로 보이체크와 사랑에 빠지고 아이까지 낳게 되지만 그 달콤한 꿈은 오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사실 마리가 보이체크와 사랑에 빠진 것은 악몽 같은 꿈에서 깨어난 것이 아니라 끔찍한 세상에서 잠시 아름다운 꿈을 꾸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꿈은 머지않아 사라졌다.
 
자신에게 유일하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보이체크가 망가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소중한 자식인 한젤이 의식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는 마리의 심정을 어땠을까. 그녀가 돈을 벌기 위해 다시 카바레로 돌아가 성적 대상으로 전락한다 한들 그녀에게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것보다 더한 두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인들 있으랴.
 
 

돌아버린 세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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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과 긍정 사이에는 공백이 있어.
그렇다면 우리는
긍정을 부정으로 바꾸어야 하는 걸까,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어야 하는 걸까?

- <보이체크 인 더 다크> 대사 중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간의 끝없는 탐욕으로 세상은 갈수록 부패하고 돈과 권력이 최고의 가치로 자리매김하며 인간성은 나날이 경시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세상 속에서 긍정성만 함양하고 산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는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사회의 수많은 요소들 중 몇가지라도 긍정적인 것들로 변할 수 있게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그것이 사회적 차원의 제도든지, 개인적 차원의 노력이든지 말이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그 누구도 포기해선 안 될 일이라 생각한다.
 
<보이체크 인 더 다크>는 순수하고 따뜻한 사랑과 열정의 가치를 다시금 마음에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하고 눈물겹도록 마음이 쓰라린 공연이었다.
 
 
[정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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