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눈을 떠도 암흑인 이곳에서 : 뮤지컬 '보이체크 인 더 다크' [공연]

미치지 않고서야 살아남을 수 없다
글 입력 2023.03.2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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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구에서 얼마나 많은 전쟁이 일어났는가? 무언가를 빼앗기 위해, 혹은 지키기 위해 벌일 수 있는 가장 잔혹한 수단. 하지만 기이하게도 전쟁에서 이기는 사람은 있어도 이득만 보는 사람은 없다. 전쟁은 필히 폐허를 남기고 떠나간다. 그리고 그것은 공간에만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죽이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하지만 전쟁에서는 이 또한 불가피한 상황이 된다. 그래서 전쟁은 비이성과 광기의 집합체이다. 비이성과 광기만 남은 곳에서는, 윤리는커녕 제정신을 붙잡는 것조차 버겁다.

 

 

 

1. 꽃을 피울 틈조차 허용되지 않는 곳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보이체크.


보이체크는 가난하지만 순수하다. 물론, 전쟁 속에서는 가난도, 순수도 용납될 수 없다. 누가 황야에 핀 들꽃의 쓰임새를 따지겠는가? 그래서 보이체크는 전쟁터에서 하등 쓸모없는 존재나 다름없다. 늘 상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하지만 황야에 핀 들꽃은 감정이 메마른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보이체크를 사랑한 여성, 마리처럼. 마리는 군인들을 위해 노래하는 카바레의 가수이다. 하지만 관중은 자신의 노래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꽃만 선물한다.


이 이야기는 한 ‘꽃씨’에서 시작한다. 꽃을 살 돈도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보이체크는 강가에 꽃씨를 심는다. 그렇게 직접 피운 꽃을 마리에게 주기 위해. 그리고 마리는 그러한 보이체크의 진심에 매료된다. 두 사람의 사랑은 흙 속에 심어진 한 ‘꽃씨’에서 시작한다.


그렇게 전쟁 속에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두 사람 사이에 한젤이라는 아이가 생겨난다. 하지만 전쟁 속에서의 행복은 사치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려는 듯, 한젤은 병에 걸려 열이 펄펄 나고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시작으로 점점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었다.


어쩌면 전쟁이 아니었다면, 한젤은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한 명쯤은, 치료받을 돈도 없이 시름시름 앓으며 죽어가는 아이를 가엾게 여겨 돈을 받지 않고 치료를 해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쟁 속에서 병을 앓으며 죽어가던 아이는 흔했을 것이고, 아이의 고통이 먼저 눈에 들어올 ‘눈을 뜬’ 의사는 흔치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먼저 돈을 요구했다.


가난은 여전했다.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에도, 그리고 결혼한 후에도,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변하자, 두 사람에게 걸림돌조차 되지 않았던 가난이 가장 커다란 벽으로 변해 한젤과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다. 한젤을 살리기 위해서는 우선 이 벽부터 제거해야 했다. 즉, 돈을 벌어야 했다.


결국 두 사람은 각자 지켜내려고 했던 것들을 포기하고 만다. 개인의 신념을, 개인의 자유를. 그리고 개인의 존엄성을. 보이체크는 ‘완벽한 군인’을 만들기 위한 불법 실험에 참여하고, 마리는 다시 카바레의 가수가 된다. 그 앞에 놓인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제가 할게요!”라는 말만 반복하며.


하지만 그들의 처절한 노력이 무색하게, 결국 벽 너머에서 한젤은 꽃을 채 피우기도 전에 그대로 땅속에 파묻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제야 아이의 고통이 눈에 들어오기라도 했는지, 한젤을 ‘죽게 한’ 보이체크와 마리를 책망했다. 그들의 처절한 노력이 무색하게.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은 흙 속에 심어진 한 ‘꽃씨’에서 끝났다.

 

 

 

2. 오직 폭력과 살인만이 허용되는 곳



여기서 잠시, 보이체크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보자. 정확히 말하자면, 보이체크가 당한 ‘실험’의 이야기 말이다. 순수함에 동물조차 죽이지 못하는 보이체크는 대위에게는 치워버리고 싶은 걸림돌, 실험을 진행하던 군의관에게는 가장 적합한 실험 대상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이득을 위해 보이체크는 우연이 아닌 우연으로 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완벽한 군인’이 무엇이겠는가?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남을 죽이는 것 따위는 서슴지 않는 존재, 군의관은 그것을 원했다. 그렇기에 ‘완벽한 군인’의 이미지와 정반대인 보이체크도 ‘완벽한 군인’으로 만들 수 있다면, 실험은 성공일 것이다. 그래서 군의관은 보이체크의 변화에 더욱 집착한다.


작품을 보면 이 실험의 정체에 조금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군의관은 보이체크에게 꾸준히 ‘콩’을 먹이며 마치 ‘콩’이 실험의 결과를 정할 요인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 보이체크를 변화시킨 것은 군의관의 강압적인 살인 요구와 보이체크를 벼랑 끝에 밀어놓은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실험은 성공했어도, 그것을 ‘실험’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군의관의 태도도 기괴하게 느껴졌다. 당나귀를 모두 죽이고 돈을 달라는 보이체크를 보고 환희에 가득 찬 표정으로 이번에는 인간을 죽여보라며 자신을 그 살인 대상으로 정한다. 결국 보이체크가 자신마저도 죽이자 자신의 실험은 성공이라며 실성한 듯 웃다가 숨을 거둔다. 일반적인 논리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던 광경이었다.


결국 이것은 실험이기보다는,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묘사한 것에 가까웠다. 멀쩡한 사람들을 살인이 필연적인 상황에 밀어 넣어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나 혹은 나와 가까운 사람이 죽는다는 압박을 주는 것. 서로 진정한 목적은 잊어버린 채, 오직 죽고 죽이는 극한의 상황에만 집착하는 것.


애초에, 폭력과 살인이라는 것은 정당화할 수 있을까? 그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폭력과 살인은 절대로 이성의 영역에 속할 수 없다. 하지만 전쟁 상황에서는, 이 비이성적인 행위가 당연하게 여겨지고, 그것을 강요당한다. 어떠한 일면식도 없는 남을 죽인 후, 그 선택을 정당화하려고 애쓰거나, 결국 이유를 찾지 못해 미치고 만다.


‘실험’이 이어지는 동안 보이체크가 환각을 보고, ‘실험’에서 탈출한 후에도 보이체크가 살인에 대한 기이한 집착을 보이는 것 또한 전쟁 후 군인들에게 나타나는 PTSD 증상과 유사하다. 실제로 전쟁 후 군인들은 오히려 평화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폭력이라는 자극에서 더욱 안정감을 느끼고 그것을 습관적인 방어 기제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작품을 보는 중간에 전쟁 상황에서 계속 훈련과 폭력을 거부하던 보이체크가 조금은 미련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한젤이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실험을 거부하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보이체크의 잘못인가? 늘 나쁜 것이라고 교육받았던 폭력이 일상이 되는 전쟁이라는 상황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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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논리를 모두 빼앗긴 채 돌아온 보이체크는 마리가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꽃을 심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콩’을 잔뜩 쏟아 그 위에 흙을 덮는다. 마리가 보이체크를 사랑한 이유는 단지 그가 꽃을 심어서가 아니었음에도. 어차피 꽃을 피우지도 못할 ‘콩’을, 전쟁이 끝난 폐허 위에.


전쟁이 지나가고 남은 곳에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땅도, 몸도, 마음도.


오직 모두가 눈을 감은 어둠만이 남아있었다.

 

 

[김민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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