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감정을 만나는 또 하나의 길 - OOTD 말고 EOTD

감정의 바다가, 있다
글 입력 2023.03.1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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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지난 가을 나의 가장 큰 화두였다. 감정에 휩쓸리는 것보다 느끼지 않는 상태가 더 안정적이라고 여겨온 오랜 역사에 균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건 곧 착각의 역사다. 감정을 느끼지 않고 끊어낼 수 있다고 자만한 착각의 역사. 착각은 진리처럼 강했다.


심리 상담을 통해, 까맣게 잊었다고 생각한 사건과 감정이 은밀하지만 거대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걸 인식하고 나서야 인정할 수 있었다. 무언가를 느끼고 말고는 의식이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말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해석하고 가공하는 따위의 행동은 무엇을 느낀 이후에 가능한 대응에 가깝다.


영향을 받을 것 같으면 외면하고, 사소하다고 여기고, 잊어버리기 급급했던 행동이 사실 이미 느껴진 감정을 적절히 처리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결국 셀 수 없이 많은 감정이 여과 없이 몸을 통과해 켜켜이 쌓이게 되었다. 겉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실은 붕괴되고 조각나서 몹시 불안한 떨림이 지속되고 있었다.


여기서 스스로를 탓하는 건 적절하지 않았다. 그 착각은 나름대로 발견한 생존방식이었을 테니까. 감정을 외면해야만 했던 내면의 상태와 외부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고, 수많은 갈림길 중 하나를 끝내 선택한 것일 테니까. 이제 알았으니 천천히, 어색하게 감정에 다가가면 되는 것이었다.

 

외면당한 감정들을 인식하고 손 내미는 것. 이것이 지난 가을부터 이어온 나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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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어려운 감정을 대하며 떠올린 질문이 있다.


‘감정이 눈에 보인다면 더 쉽지 않을까?’

‘감정은 근본적으로 수동적인 감각인가?’

‘감정을 먼저 선택할 수는 없을까?’


감정에 서툰, 혹은 너무나 잘 알고 있어 두려운 존재를 알고 응원한다는 듯, 나름의 답을 내어준 장소를 알게 되었다. 감정 조제실 'ofor(오포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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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포르는 다양한 감정과 이야기를 물성으로 빚어낸다.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원석마다 감정과 이야기를 부여하고, 팔찌, 반지, 목걸이 등의 액세서리 형태로 엮어내는 것이다. 저마다의 감정과 이야기를 품고 있는 오포르의 물건들을 구경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감정에 다가가고 머무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쇼룸에 방문했을 때, 마치 직관적인 감정 전시회를 관람하는 것 같았다. 미술 작품을 보고 한참을 자기 안에 침잠하듯, 전시된 작품과 이야기를 감각하며 내면의 ‘바다’에 빠진 것이다. 20여 분의 유영을 마치고 고른 나의 원석(감정)들을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자존감, 용기, 영감, 평안, 믿음’


치열하게 고민한 것이 무색하게 한결같은 감정을 선택해 웃음이 났다. 한데 모아보니 ‘시작을 두려워하고 본인만의 영감을 원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시작을 원하는지, 무엇이 두려운지, 왜 그토록 나만의 영감을 찾고 싶은지에 대한 답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나의 감정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지며 쇼룸을 빠져나왔다.


[크기변환]화면 캡처 2023-03-18 172758.png

  

그날그날 원하고 필요한 감정들을 고민한 후 ‘감정의 숲’이라는 체인에 매달고 나가는 것이 하나의 루틴이 되었다. ‘OOTD(Outfit of the day)’와 함께 ‘EOTD(Emotion of the day)’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전보다 감정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자의적으로 선택하고, 만지고, 볼 수 있는 감정의 힘을 인식한다. 감정을 야기하는 상황을 통제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사실 감정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감정을 제 마음과 속도대로 처리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이 어려운 것일 수 있다. 조금 억울하지만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느껴진 감정을 어떻게 후처리할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지 않을까.


글, 그림, 노래, 춤 등 흔히 ‘문화예술’이라고 하는 것들은 그런 감정들을 외면하지 않고 치열하게 품은 후 적절히 표현하고 해소하는 행위라고 바꿔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일어난 역사를 자기 의지대로 재편찬하는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문화예술이 각광받는 이유는, 역시 감정의 해소를 열망하는 '미숙한 편찬자'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 (이슬아 작가의 표현을 빌림)

 

EOTD를 선택하는 것은 쉽고 효과적으로 감정의 재편찬에 뛰어들 수 있는 일이라고 느낀다. 나아가 직접 감정을 선택하고 상기함으로써 주도적으로 역사를 만들어 갈 가능성도 엿볼 수 있다.


이토록 ‘감정’에 몰입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이 갖는 영향력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나’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적절히 승화할 때 나는 비로소 ‘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뿌옇게 흐려진 '나'를 문지르고 닦아 투명하게 하는 일이 어쩌면 삶의 과제가 아닐까.

 

저마다의 모양을 가진 ‘나’가 많아질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제보다 더 감정적인 ‘나’가 많아지길 희망한다. 그렇게 '우리'의 감정의 바다가 넓고 깊어질 수 있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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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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