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의 반의어는 ‘전쟁’이다 - 보이체크 인 더 다크 [공연]

뮤지컬 <보이체크 인 더 다크>를 향유하며
글 입력 2023.03.1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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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라는 이유로 군인이 된 가난한 남자, 보이체크.

 

하지만 그는 사람을 죽일 용기가 없다는 이유로 늘 고된 훈련을 받으며 상관인 대위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그런 그의 유일한 위안은 고된 훈련이 끝나고 들으러 가는 마리의 노래뿐. 하지만 마리 역시 자신을 멋대로 판단하고 취급하는 사람들로 인해 몹시 지쳐 있는 상태. 그런 마리에게 꽃 한 송이 선물할 돈도 없어 괴로워하던 보이체크는 대신 그녀가 자주 오는 강가에 꽃을 심기 시작하고, 오히려 그의 이런 모습이 마리를 사로잡는다.

 

각자의 삶에 지쳐가던 중 서로에게 위안을 느낀 두 사람은 마침내 서로의 손을 잡고 영원을 약속하지만, 그들의 아이 한젤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만 한다. 보이체크는 어떻게 해서든 한젤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마리 몰래 군에서 진행되는 불법 실험에 참여하게 되고, 그 사실을 몰랐던 마리는 보이체크에게 비밀로 하고 다시 노래를 하러 나간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애써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결국 한젤은 죽고 만다. 한젤의 죽음, 마리의 불신으로 완전히 한계에 몰린 보이체크는 결국 정신을 놓아버리고, 두 사람의 관계 역시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

해당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인간과 전쟁은 공생할 수 있는가?


 

두 남녀의 로맨스를 다루는 작품은 많다. 매체를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로맨스”라는 장르는 겉으로만 볼 때는 단순히 두 남녀의 ‘사랑의 형태’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사실 “로맨스”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모양’을 보여준다.

 

뮤지컬 <보이체크 인 더 다크>도 인간이 살아가면서 마주칠 수 있는 “인생의 모양”을 노래한다. 가난한 군인 보이체크와 카바레에서 노래를 부르는 여인, 마리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보이체크 인 더 다크>. 군인 보이체크는 유일하게 마리의 노래를 마음으로 느꼈다. 다른 군인들은 마리의 화려한 외모, 아름다운 목소리에 찬사를 보내며 ‘’을 바친다. 그러나 보이체크는 달랐다. 보이체크는 마리가 “어떤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는지에 집중했다. 단지 그녀에게 줄 꽃이 없었을 뿐..

 

그래서 결심했다. 그는 꽃을 심기로! 그의 친구 카를이 준 꽃씨를 심어 꽃이 아름답게 피는 날, 마리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미 자신의 노래를 진심을 다해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지친 마리는 보이체크의 진심에 그녀의 마음속 작은 꽃씨를 심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이체크와 마리는 마음속에 피어나는 꽃의 열매, 그들의 아들 한젤까지 얻게 되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보이체크와 마리는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꽃을 피웠다는 것. “전쟁”, 단어만 들어도 공포스럽고 소름 끼치는 기분이 들지 않는가. 가난했던 보이체크는 그의 아픈 아들 한젤의 병을 치료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그의 순수한 영혼을 상처 입히는 불법 인체 실험에 참여하고 마리는 자신을 상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서 다시 노래를 부르며 돈을 마련하기 위해 힘겹게 살아갔다.

 

 
“한젤.. 오 한젤.. 제발 눈 좀 떠봐“
 

 

보이체크와 마리가 심은 꽃은 그렇게 지고 말았다. 처음부터 모든 게 잘못된 듯이, 마치 그들의 노력이 아무 소용이 없었음을 말하는 것처럼.

 

자, 다시 시간을 돌려서 생각해 보자. 보이체크와 마리가 꽃을 심을 때로 돌아가 볼까? 보이체크가 전쟁에서 싸워야 할 군인이 아니라면, 그래서 순수한 그의 영혼이 잔인함으로 물들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꽃은 다른 곳에도 뿌리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전쟁이 인간을 어떻게 몰아가는지, 얼마나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착취하는지 이 뮤지컬을 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극의 마지막에서 마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전쟁에서 인간다움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은 인간답기에 인간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전쟁이 인간다움을 빼앗는다면 그 누구의 꽃이라도 짓밟힐 수 있다. 사실 인간 자체도 전쟁이라는 상황에 놓였을 때 존재할 수 없을 텐데, 인간다움이 제 자리를 찾아 바로 설 수 있을 것인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한젤과 당나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한젤은 보이체크와 마리의 아들로 그들에게 선물이었다. 영원히 변치 말자고 약속한 둘 사이 약속의 결실이기도 했다. 그런 한젤은 안타깝게도 전쟁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를 빼앗겼다. 바로 ”부모님“”생명“. 보이체크와 마리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일을 했지만 결국 그의 곁에 남은 거 쓸쓸한 외로움이었고, 갓난 아기인 한젤에겐 그 시간마저 죽음처럼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무대에서는 실제 인물이 아닌 인형으로 구현되었지만, 인형이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젤의 모습이 더 비극적으로 다가왔다. 아프다고 말도 할 수 없는 갓난 아기 한젤, 그에게 있어 생명보다 더 중요한 건 마지막까지 함께이고 싶었던 보이체크와 마리와의 ”시간“이 아니었을지.

 

 
”이렇게 당나귀를 찌르면 되잖아“
 

 

돈을 벌기 위해 ‘’으로 불리는 알약을 먹으며 불법 인체 실험에 참여했던 보이체크. 그는 매번 당나귀를 칼로 찌르라고 강요당했다. 타인의 생명을 절대로 헤쳐서는 안된다고 굳게 믿는 보이체크에게 이 실험은 죽으라는 말과 같았다. ‘콩(알약)’은 보이체크에게 잔인하고 무자비한 감정을 주입하고 과학자는 보이체크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그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단점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보이체크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건 어느 정도 사실이다. 군인은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원칙이고 보이체크는 이를 여러 번 위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인이라고 모든 생명을 가벼이 여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다움을 가볍게 삭제당한 보이체크는 결국 사람까지 살해하게 된다.

 

그가 찌른 ‘당나귀’. 나는 여기서 당나귀가 보이체크의 ‘인간다움’이라고 보았다. 그는 결국 돈을 벌기 위해 그의 ‘인간다움’을 팔았고, 직접 찌르고 살해했다. 그의 미래를 보지 못한 채, 아니 사실 미래를 볼 인간다움이 사라졌다는 말이 정확하겠다. 당나귀를 찌른다는 것, 이는 그가 이미 보이체크가 아닌 전쟁의 또 다른 희생양으로 재탄생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전쟁이 이렇게 만들었다. 꽃을 짓밟고, 열매를 빼앗고, 인간이 인간 다울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전쟁에 자비란 없다. 그래서 인간도 없다. 우리가 전쟁 안에 속해있다면 그건 이미 우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뮤지컬 <보이체크 인 더 다크>에서 인간 다울 수 없음을 노래한다.

 

 

 

# 연출과 넘버



뮤지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바로 무대 연출과 넘버이다. 인상 깊었던 무대 연출과 넘버를 한 가지씩 여러분과 같이 감상해 보고 싶다.

 

손전등’이 등장한다. 보이체크가 인체 실험에 참여할 때 그의 혼란한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손전등’이 사용되었다. 배우들이 직접 손전등을 하나씩 들고나와 그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손전등 불빛을 비추는 모습은 그 어떤 무대 장치보다 큰 몰입감을 선사했다. 그의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내면을 공감하기에 충분했고, 그 빛 하나를 의지해 움직이는 보이체크를 보면서 그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뮤지컬의 다섯 번째 넘버, <우리의 봄>이다. 보이체크와 마리가 사랑을 확인한 후 앞으로를 약속하는 노래로 그들의 비극적인 결말과 대비되어 지금 다시 이 넘버를 들을 때면 내 마음속 피어나고 있는 꽃이 꺾이는 기분이 든다. 이 넘버에서 가장 인상 깊은 가사는 바로 이것이다.

 

 
”꽃잎이 저 멀리 흘러가도 그 향기는 여기 남아있으니“
 

 

그들의 사랑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 순간이 와도 관객들이 두 사람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처럼 꽃잎은 떨어져 멀리 흘러가겠지만 그 둘의 사랑이 헛된 것은 아님을 의미하는 구절이다. 누군가와 사랑을 시작할 때, 우리는 결말을 알지 못한 채 상대만을 바라보며 사랑을 온몸으로 음미한다. 하지만 그 결말이 어디에 다다를지는 몰라도, 서로 사랑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 잔향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보이체크와 마리의 사랑이 향수처럼 극이 끝난 이후에도 잔잔한 향을 내며 내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보이체크와 마리의 사랑 그리고 그들의 삶의 조각들이 관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꽃씨들로 마음속에 박혔다. 이제 이 꽃씨들을 어디에 심어볼까?

 

 

[임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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