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동화 속의 내가 아니야 [음악]

내가 알던 동화와 사뭇 다른 이야기
글 입력 2023.03.09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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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판타지 속 세상을 알려주던 동화를 기억하는가. 각자 자라온 환경은 달라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동화들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이야기는 그저 새롭게 자라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동심을 지키고, 자유로이 펼칠 수 있는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기 위한 역할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주체적이지 못한 공주는 강인한 왕자에게 도움을 받아 사랑을 하고, 그들의 서사를 보태기 위한 도구로 주로 마녀가 사용되지만 끝내 죽음을 맞이하는, 전형적인 진부한 사랑 이야기로 얼룩져 있었다.

 

동화와 점점 거리가 멀어지던 나이 때부터 지금까지, 동화 클리셰를 부인했던 적은 없었다. 환상에 가까운 이야기는 어릴 적 기억 속에만 간직한 걸로 충분하기에 크고 나서부터는 생각할 겨를도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왜 공주들은 왕자가 구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반대로 위험에 처한 왕자를 멋있게 구해내는 공주의 이야기로 필요한 게 아닌가? 마녀는 정말 나쁘기만 한 인물일까? 그들의 행동이 달랐다면 동화의 결말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1. 르세라핌 – The Great Mermaid


  

 

 
“목소리를 잃을 바에 차라리 온 세상을 물에 잠기게 하겠어”
 

 

왕자를 만나기 위해 다리를 얻으려면 반드시 목소리를 잃어야 하는 인어공주, 르세라핌은 이를 부정한다. 두려움이 없는 그녀들답게 희생 따윈 없으며, 자신이 원하는 건 다 가지겠다고 말한다.

 

이 곡과 원작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어공주의 태도이다. 사랑을 위해 다리를 얻고 목소리를 잃던지, 목소리는 유지한 채 사랑과 다리는 얻지 못하던지.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 인어공주는 주어진 선택지에 순응하며 필연적인 희생을 하게 된다.

 

그러나 르세라핌이라는 위대한 인어는 제시된 선택지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닌 자신이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었다. 바로 희생 없이 원하는 건 모두 가진다는 것. 그들은 목소리를 잃을 바에는 바다를 덮칠 것이고, 목소리를 잃은 대가로 얻은 뒤틀린 사랑 따위는 필요 없다고 한다. 이들의 당당한 외침은 3분간 쉬지 않고 이어진다.

 

 

‘내게 맞춰진 사랑 희생 하나 없이’

‘그런 뒤틀린 사랑 나는 필요 없어’

‘차라리 내게 내놔 ocean 세상을 내 바다로 덮쳐’

‘원하는 건 다 가질거야 그래도 날 물거품으로 만들지 못해’

 

 

사실 이 곡은 르세라핌 곡 중 나의 최애로 손꼽히는 곡이다. 동화에 대한 사유나 해석과 별개로 주인공의 태도를 바꿔버리는 그녀들의 굳은 컨셉은 나를 단번에 끌어당겼다. 20년이 넘는 삶을 살면서 다양한 집단에 소속되어 수많은 사람을 만나 끊임없는 선택지를 마주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나는 늘 수동적인 태도를 보였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난 뒤야 스스로 바꿔보려고 노력하며 조금씩 달라졌지만, 여전히 과거의 내 모습이 군데군데 묻어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나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진취적이고 당당한 이야기를 하는 르세라핌의 음악이 좋았고, 그중에서도 특히 오리지널을 뒤엎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 이 곡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거기다 나를 좀 더 자극하는 데에도 톡톡히 한몫했다.

 

이러한 감정이 교차하자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만약 인어공주가 이들과 같은 태도를 보였다면 결말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동화를 읽은 아이들도 공주도 강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될까? 많은 사람이 때로는 불리한 선택지에 순응할 필요 없이 내 주장을 강력히 밀고 나가도 된다는 걸 조금 더 일찍 알게 되지 않았을까? 풀리지 않을 물음표투성이다.

 

 

 

2. 아이유 – Red Queen



 

 

“그 여자도 너처럼 꼴사납게 생기긴 했어. 너보다 더 빨갛고 꽃잎은 더 짧아”

장미가 말했다. “가시가 많은 종류야”

 

 

2015년 발매한 아이유의 ‘챗셔’ 앨범에 실린 곡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을 차용한 곡이다. 르세라핌은 원작과 다른 결말을 끌어냈다면 아이유는 원작에 질문을 던진다. 과연 악역이 가장 나쁠까? 청자인 우리는 나쁘지 않은 걸까? 지금 이곳에서 가장 나쁜 사람은 누구인가.

 

이 곡은 공격받아 마땅한 악역에게서 선한 부분을 발견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두의 선입견에 질문을 던지는 곡이다. 우리는 동화를 통해 주인공은 착한 사람, 악역은 나쁜 사람이라는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건 악역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정말 나쁜 사람이 누군가에겐 정말 좋은 사람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정말 좋은 사람이 누군가에겐 정말 나쁜 사람일 수 있다. 살면서 나쁜 짓을 한 적 없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나조차도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Red Queen은 이 모든 가능성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다. 여기서 가장 나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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