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스웩(swag)'이라는 단어가 문화계 전반에서, 특히 힙합을 위시한 장르 음악 사이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이 있었다. 본인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멋,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 등을 겸손이라는 미덕으로 가리는 대신 당당한 모습으로 어필하는 것이 곧 하나의 트렌드처럼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스웩 열풍은 이내 언제 그런 게 존재하기라도 했냐는 듯이 어느새부턴가 그 종적을 완전히 감추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여전히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자신만의 매력을 당당하게 드러냄으로써 많은 이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에 와서는 '스웩'이라는 단어가 세간에서 어딘가 올드한 느낌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쉬이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돈 자랑, 명품 자랑과 같은 일차원적이고 세속적인 자랑의 남발로 인해 단어의 느낌이 지나치게 가벼워진 탓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애초에 유행하는 어휘라는 것이 으레 그러하듯 스웩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레 트렌드의 첨단으로부터 밀려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뮤지션들은 여전히 다양한 형태로 자신의 멋을 발산하며 그들만의 스웩을 무기 삼아 수많은 리스너들의 동경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전처럼 '스웩'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형태는 아닐지라도, 자신이 아티스트로서 지니고 있는 고유의 정체성과 발자취를 음악에 그대로 녹여내면 그것이 곧 최고의 스웩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일부 뮤지션들이 계속해서 '멋있는' 결과물들을 세간에 내놓고 있는 덕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개척자는 언제나 박수받아 마땅하다, 'We Made Us'
No밖에 없던 곳을 노다지로 (we made us)
양아치에서 멋쟁이 아저씨로 (we made us)
Game이 없던 곳에 경기장을 지어 (we made us)
한국 힙합 (we made us)
지금이야 국내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중 하나인 '쇼미더머니'를 필두로 탄탄한 코어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 힙합이지만, 불과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은 힙합의 불모지였다. 물론 당시로서도 결코 작지 않은 규모의 씬(scene)을 형성하고 있기는 했으나,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일부 뮤지션들의 음악을 제외한다면 한국 힙합은 소위 이야기하는 마니아들만이 주로 향유하던 '그들만의 리그'라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에는 힙합 역시 비주류 장르음악이라는 것이 대부분 그러하듯 대중의 무관심 혹은 괄시와 맞서 싸워야만 하는 처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2000년대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을 주름잡던 전설적인 레이블 '소울 컴퍼니'의 주요 일원이었던 제리케이가 2012년에 발표한 'We Made Us'는 그 제목에서 짐작해볼 수 있듯이, 한국이라는 힙합 불모지에서 씬의 빛나는 성장을 직접 이룩해낸 본인과 한국 힙합의 OG(Original Gangster)들에게 바치는 찬란한 헌사와 같은 노래이다. 'B-boys & B-girls, 잊지 말아, 우릴 만든 건 돈이 아니라 우리 자신임을 말야'와 같은 자부심 넘치는 가사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그의 근거 있는 자기자랑은 최근의 한국 힙합에서는 쉬이 느껴볼 수 없는 높은 품격의 흥취를 선사한다.
그의 기록은 현재진행형, '살아있네'
레코드판이 카세트가 되고
카세트 테잎이 CD로 바뀌고
CD가 다운로드 스트리밍이 돼도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도
살아있네
제작자 내지는 프로듀서로 널리 명성을 떨치고 있는 연예 기획사의 대표들이 한때는 시대를 풍미하는 전설적인 가수였던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지 않다. 다만, JYP엔터테인먼트의 대표 프로듀서 박진영은 화려한 과거를 뒤로 하고 무대 일선에서 물러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다른 '디렉터'들과 달리, 여전히 무대 위의 '플레이어'로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두드러지는 아티스트이다.
박진영이 2016년에 발표한 싱글 '살아있네'는 '가수 박진영'의 일대기를 총망라하는 곡으로, 음악과 청자들을 매개하는 플랫폼이 달라지고, 그것을 소비하는 대중의 취향마저 계속해서 변화했지만, 자신은 여전히 가수로서 '살아있음'을 자랑스레 뽐내는 노래이다. 실제로 박진영은 1990년대의 '날 떠나지마', 2000년대의 '난 여자가 있는데', 2010년대의 '어머님이 누구니', 2020년대의 'When We Disco' 등 수많은 히트곡을 통해 시대를 불문하고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꾸준히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의 거만한 자기자랑에 우리가 그저 탄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뮤지션으로서의 소명감과 자긍심, '잘 듣고 있어요'
누구는 목숨을 찾고 누구는 사랑을 좇는 거겠죠
잘 알고 있어요 듣고 있어요 기억하고 외우고도 있죠
의미가 있는 이야기는 듣고 또 들려주고 싶어요
잘 듣고 있어요 듣고 있어요 잘 듣고 있어요
'잘 듣고 있어요'라는 인사말보다 뮤지션에게 커다란 힘과 위로를 전할 수 있는 표현이 또 있을까 싶다. 2018년 유튜브를 통해 선공개되고, 마침내 2021년에 정식 발매된 이랑의 노래 '잘 듣고 있어요'는 이랑 본인이 팬들로부터 들었던 '잘 듣고 있어요'라는 인사말에 건네는 답가와 같은 곡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잘 듣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 또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는 사실을 전함과 동시에, 의미가 있는 이야기는 계속해서 듣고 들려주고 싶다는 본인의 당찬 결심을 밝히고 있는 '잘 듣고 있어요'는 이랑이 뮤지션으로서 가지고 있는 소명감과 자긍심을 대표하는 트랙이다. 그의 팬들로 하여금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이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해당 노래를 처음 듣는 이들에게도 '이랑'이라는 인물이 지닌 매력을 아주 단단히 각인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가히 훌륭하고 영리한 트랙이라 평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