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봄내음을 아시나요

아직은 추워도 이미 향은 봄인걸
글 입력 2023.03.0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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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굉장히 바쁘다.

 

집에 틀어박혀서 정해진 일상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 와중에 새로운 할 일들이 닥쳐온다.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새로운' 것들이 시작되는 시기이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그렇게 집에만 며칠 내내, 밖을 전혀 안 나가다가 오늘 아침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평소처럼 두꺼운 옷을 입고 외출했다. 확실히 마지막 외출이었던 2월의 끝자락과 3월의 시작보다는 기온이 오른 것이 느껴져서 바람이 차갑지는 않았지만, 추위를 워낙에 잘 타기 때문에 여전히 두꺼운 외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나를 붙잡은 건, 냄새였다. 봄냄새. 조금 더 예쁘게 말을 포장하자면, 봄내음.

 

계절마다 공기 속에 섞여있는 냄새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아주 어릴 적 겨울이었다. 한참 입김이 보이는 것을 구경하려고 입으로 숨을 쉬다가, 차가워진 구강에 냉큼 코로 깊게 숨을 들이쉬었고 그 때 처음으로 냄새를 맡았다.

 

겨울 냄새는, 아주 맑고 서늘하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정말 겨울다운 냄새가 난다. 약간의 장작이 타는 냄새 같은 게 섞여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때부터 각 계절 별로 나는 냄새들을 곰곰히 생각해보고 맡아봤는데, 몇 년동안 나름대로 연구한 냄새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봄 냄새는 따뜻하다. 살짝 달큰한 향이 나는 걸 토대로 아마 꽃이나 새순처럼 어린 식물에게서 나는 냄새가 강력한 것 같다. 나비가 날아다니는 들판에서 날 법한 냄새가 난다. 시각적으로 표현하자면, 노란 민들레같기도 하고 하늘색 하늘같기도 한 냄새다. 주로 5월에 아주 강하게 난다.

 

여름 냄새는 축축하다. 습한 여름의 특징 상 비냄새가 짙게 깔린다. 거기에 우거진 녹음과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이는 곤충들에게서 나는 자연의 웅장한 냄새가 난다. 햇살이 강할 땐 건조한 냄새가 나는데, 빨래가 햇볕에 바싹 건조되는 듯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가을 냄새의 포인트는 낙엽이다. 실제로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 가을엔 건조한 낙엽에서 나는 냄새가 난다. 또한 나무 표면에서 나는 냄새가 난다. 비슷한 자연의 냄새가 나는 여름과 비교해보자면 여름은 좀 더 푸르른, 녹색의 잎에서 나는 냄새와 흙냄새가 강하다면 가을엔 표면적으로 나무 껍질에서 나는 냄새가 난다. 가끔 은행 냄새가 섞여 나곤 하는데, 그럴 땐 주변에 떨어진 은행 열매가 없나 발치를 조심하게 된다.

 

겨울 냄새는 차갑고 시려워서 베일 듯한 향이 난다. 비발디의 '사계' 중에서 '겨울' 1악장에서 느낄 수 있는 그 휘몰아치는 냄새가 나는데, 모닥불 냄새가 섞이면 그 서늘함을 따뜻한 불이 녹여주는 것 같아서 굉장히 균형잡힌 냄새가 난다. 특히 눈이 오면, 눈 특유의 냄새가 난다. 눈이 주는 냄새는 새벽에 밖을 나가면 맡을 수 있는 냄새와 비슷하다.

 

고요하면서도 분명히 존재하는 냄새. 그것이 겨울 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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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봄 냄새가 아주 옅게 나기 시작했다. 아마 지나가던 길에 있던 놀이터에서 나무가 뿜어내는 향이었을 수도 있고, 또한 지나가던 길 근처에 있는 한강에서 나는 활력의 냄새일 수도 있겠다. 살짝은 쌀쌀한 기운이 가시지 않은 날씨에 몸을 움츠리다가도 냄새를 한 번 킁, 하고 맡자 봄이 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한창 맡았던 겨울의 싸늘한 냄새에서 봄의 따스한 냄새를 맡으니 나도 모르게 조금은 더 움직이게 된다.

 

계절이 주는 냄새는 그 계절을 매우 닮아있어서, 오늘처럼 봄 내음이 나면 봄에 활발히 움직이는 생명들처럼 나 또한 움직이고 싶어진다. 나의 생명력을 온 세상에 보이고 싶어진다. 봄 내음이 주는 것은 어쩌면 따뜻해지는 기온과 함께 생명들을 동면으로부터 깨우게 하는 것이 아닐까.

 

봄이다. 앞으로 봄 내음은 점점 더 짙어져 갈 것이다. 꽃이 흐드러지게 개화하는 시기가 오면 아마 더욱 달콤한 향이 날 것이다. 봄 내음을 좋아하니까 나는, 그 시기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정신없이 또 내게 주어진 일상들을 열심히 살다 보면 어느새 나에게도 봄 내음이 날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면 우리 모두가 하나의 봄이 되어 만발하는 생명들과 함께 따뜻한 햇살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아트인사이트] 명함_컬쳐리스트.jpg

 

 

[윤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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