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서히 스며드는, 서정적인 재즈 : East Meets East

글 입력 2023.03.02 15:1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재즈를 처음 접한 순간은 기억도 나질 않지만, 이 장르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생긴 무렵은 떠오른다. 작년, '라라랜드'를 재관람한 어느 겨울.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16년도 개봉 당일이었다. 조조로 보러 갔을 때 얼마나 두근두근하던지.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는 만큼 기대를 담았다. 그런데 웬걸. 대다수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울고, OST가 참 좋다는 것도 느꼈는데 그게 영화의 전반적인 인상으로 확장되진 않았다. 오히려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닌 영화라는 결론을 내리고, 나의 감상과 정반대인 대다수의 평을 들으며 의아함만 키웠다. 좋긴 한데 그 정도인가, 하면서.


똑같은 것을 보아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진다는 걸 몸소 증명이라도 하듯 작년엔 적합한 타이밍을 만난 것 같다. 스토리 못지않게 연출이 보였고, 인물들이 주변에 살아 숨 쉬는 사람으로 다가왔다. 여운을 느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지. 영화 '소울'도 지금 다시 보면 느낌이 다르겠구나. 그 영화 또한 '재즈'라는 장르가 죽음과 삶만큼이나 커다란 축을 차지하니까.


아, 여기에 생각보다 재즈가 흥미롭다고 느낀 순간이 작년에 한 번 더 있었다. 일하고 있는 양식집에서 어느 날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는데 노래가 기막히게 듣기 좋은 거다. 비틀즈의 All My Loving을 재즈 사운드로 편곡한 거였는데, 한동안 귀에 이어폰만 꽂으면 이 노래를 반복 재생했다. 무심결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언젠가 재즈 공연을 꼭 가보고 싶다고. 손쉽게 듣기보다는 현장에서 만들어 낼 시너지가 궁금했다. 연주자 한 명이 음악을 시작하며 끌고, 이를 감상하다가 하나둘씩 자신의 악기를 덧대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달려들고, 주도자가 바뀌고, 귀로 들을 수 있는 무수한 상호작용을.


좀처럼 기회가 찾아오지 않다가 2월의 마지막 일요일, 드디어 관람할 장소를 찾았다.

 

 

IMG_3027.JPG

 
 

JCC 아트센터는 '재능교육'으로 익히 알려진 재능그룹에서 꾸려낸 장소이다. 전시장과 콘서트홀을 겸한 공간으로, 전자는 1층부터 3층까지 후자는 지하 두 층을 사용한다. 아마 처음 방문한 이들에겐 1층과 2층이 조금 헷갈릴 수 있겠다. 공연장의 1층은 B2층, 2층은 B1층이니까. 


공연 관람은 공간 경험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건물의 외관부터 로비, 계단, 화장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공연장까지 쭉 훑곤 하는데 차라리 2층이라는 안내 대신 B1층이라고 적어주는 건 어떨까 싶었다. 이건 또 이 나름대로 혼선을 빚을 것 같기도 하고. 그 외의 건물 디자인은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다고 느꼈다. 한 계단과 그다음 계단 사이의 빈 공간이 큼지막해서 조금 흠칫하긴 했어도.


2층 거의 끝자락에 앉아서 한눈에 공연장을 조망하기 좋았다. 천장을 가득 메운 조명들이나 공연장의 크기나 객석의 단차 같은 것들. 공연은 자주 보러 다니는 편이 아니라 악기 수음이 적절한지 비교하긴 어렵지만,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크기에 음향 표현도 꽤 선명하다고 느꼈다.

 

 

IMG_3030.JPG

 

 

건반악기 피아노, 목관악기 색소폰, 현악기 콘트라베이스, 타악기 드럼. 종류가 제각각이라 과연 이 소리들이 어떤 화합을 만들어낼지 시작부터 궁금했다. 맨 처음 두 곡은 아주 서정적이고 섬세한 분위기였다. 아마 연주자들도 몸을 풀고 호흡을 맞춰보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두 곡의 전개방식이 아주 비슷하다는 인상도 받았다.


이어서 색소포니스트 손성제 님의 인사와 함께 어떤 계기로 이 멤버들이 모이게 되었는지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이제 막 코로나 관련 규제가 풀리는 시기에 한국인 두 명과 일본인 두 명의 만남이라 조금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2019년에 처음 기획된 공연이었다. 공연이 밀리고 밀릴 수밖에 없던 시기에 줌으로 만나 서로 악기 연주를 보여주고, 레코딩해서 주고받는 등 여러 제약이 있음에도 꾸준히 교류를 해온 듯했다. 공연 날짜가 언제일지, 가능하긴 할는지 알 수 없는 상황임에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웠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한 때에도 묵묵히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음이 느껴지기도 하고.


이렇게 오래 기다려온 공연이니만큼 도쿄에서의 금요일을 시작으로 토요일 세종, 마지막 일요일 서울까지 당도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공연하는 사람들에게는 피곤하면서도 익숙한, 동시에 그리웠던 스케줄이었을지 모르겠다.


악기마다 특징이 뚜렷해서인지 인상 깊었던 점이 하나씩 있다.


먼저 드럼. 밴드 음악 속 드럼은 늘 날카롭고 경쾌하게 귀를 찌르는 역할이었다. 그래서 심벌즈가 얼마나 섬세한 소리를 낼 수 있는지, 몰랐다. 드럼 스틱은 무조건 나무로 된, 끝이 둥근 형태여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드럼 연주자 옆엔 여러 종류의 스틱이 있었는데 곡에 맞추어 손에 든 것이 바뀌었다.


자갈 섞인 고운 모래를 만지는 듯한 사운드가 가장 충격적으로 기억 남는다. 달리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다. 그건 그저 '자갈'이었다. 심벌즈의 둥근 모양을 따라 톡톡, 그러나 빠르게 소리는 멀어지며 가까워졌다. 같은 도구로 같은 심벌즈를 훑듯이 움직이면 또 다른 잔잔함을 자아낸다는 걸 목도하기도 하며.


어느 때엔 으레 '드럼' 하면 떠올릴 폭발적인 사운드로 단숨에 다른 악기를 압도할 때도 있었다. 드럼 소리가 폭주하듯 음악을 이끌다가 짧은 정적으로 모든 격렬함이 멈추고, 콘트라베이스의 기다란 활이 직선을 그었다. 짙은 고동의 현이 울리는 소리가 새 챕터를 알리는 느낌이었다. 자연스러운 바톤 터치. 드럼의 독주가 끝남으로써 곡의 흐름도 끊길지 모르겠다는 찰나의 우려를 가벼이 뛰어넘으면서. 베이시스트와 드러머는 일본인이었는데 이전에 여러 번 호흡을 맞췄던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즉흥이고, 어디부터 어디는 사전에 정해둔 대로 흘러갔으려나.


피아노는 가장 익숙하고 친숙한 악기인데, 피아니스트 송영주 님의 말이 참 좋았다. 홀로 공연을 할 땐 티켓을 사서 보러 와 준 관객들을 위해 건반 전부를 넘나들며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여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다소 즉흥적인 자신보다 더 즉흥적인 멤버들과 호흡을 맞추며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장난스럽게 '비움의 미학을 배운다'라고 하셨지만 그 무엇보다 동감 가는 표현이었다.

 

 

IMG_3033.JPG

 

 

실제로 연주가 좋았던 건 단체줄넘기 같아서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건 누구와 경쟁을 벌이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정해야 할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양끝에서 줄을 돌리는 사람들을 조명 기사를 비롯한 무대 디렉터라고 하면, 그 안에서 줄에 달려들었다가 나가기를 반복하는 건 연주자들이다. 모두가 한 번에 들어서지 않고, 한 사람이 먼저 들어서서 템포를 만들면 그걸 보며 다음 사람이 뛰어든다. 그리고 또 다음, 다음.


한 사람이 오래 자리를 차지했으면 잠시 빠져나가 숨을 고르고, 다른 사람들이 조금씩 앞으로 움직여 조금 더 느슨하게 간격을 두고 줄넘기를 이어나간다. 줄을 뛰어넘는 사람들 간의 호흡은 물론이거니와 줄을 돌리는 사람과의 합도 중요한 작업이다. 이 모든 걸 가능케 하는 건 역시 서로를 향한 믿음. 무언가 완벽하게 준비된 느낌이 아니더라도, 오히려 변수의 자리를 남겨뒀기에 다양함이 탄생할 수 있는 것 같다.


놀랍게도 송영주 피아니스트의 말을 들은 직후 이어진 그의 앨범 수록곡에서 그들의 화합이 느껴졌다. 처음의 몸풀기는 온데간데없고 정확한 때에 들어서고, 나서고. 그 순간 가장 잘 맞는 짝을 서로가 아는 것처럼. 끝에 다다를수록 박수는 더 커졌다. 나와 비슷하게 공연에 스며든 사람들이 꽤 있던 게 아닐까.


앵콜곡을 소개하며 색소포니스트 손성제 님이 그러셨다. 기분이 좋다고. 사람들이 이런 음악을 안 좋아할 거라는 주변의 염려 섞인 말을 꽤 들으셨던 것 같은데 이번 공연은 반응이 참 좋더라며. 뭐, 언제나 그러하듯 진심은 통하는 게 아닐까. 2019년에 기획한 일을 어떻게든 성사해 낸 집념, 공연의 방향을 설정할 때 잊지 않은 뚝심, 그리고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좋은 음악에 대한 진심. 객석의 곳곳에서 들리던 훌쩍임과 귀가 따가울 정도로 커다랬던 박수소리. 이 작은 공간에서 느껴본 열기를 될 수 있으면 오래 간직하고 싶다.


 

[박윤혜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