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덕질은 나의 힘

아주 오래된 취미 생활
글 입력 2023.03.0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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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친구가 종종 나에게 묻는다. 요즘엔 무슨 덕질하고 있어? 라고.

 

당연히 내가 현재진행형으로 덕질을 하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실려있다. 그래서 매번 그에 부응하는 답을 돌려준다. 콘서트나 뮤지컬을 예매했거나 물 건너오고 있는 CD가 있거나. 늘 어딘가에 시간과 정성과 돈을 쓰고 있는 현재진행형 덕질 현황을 보고했다.

 

작년부터 나는 덕질 누진적용의 직격탄을 맞았다. 10대부터 지금까지 다채로운 덕질을 해왔는데 모두 현재진행형이 되어버린 탓에 작고 귀여운 월급을 열심히 쪼개서 여기저기 갖다 바치고 있다. 당사자에게 돌아가면 다행이지 매물이 없어서 프리미엄을 주고 모르는 사람 지갑도 챙겨주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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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 대상을 향한 마음을 표현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나에게는 그게 ‘소비’이다.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어도 돈을 주고 CD를 구입하는 일이나 공연장에 찾아가는 일처럼 가장 기본이 되는 곳에 돈을 지불하는 게 좋아하는 마음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내 지갑을 열게 만드는 순간, 내 덕질은 시작된다.


작년 한 해 덕질에 돈을 얼마나 썼는지 계산하려다가 눈에 띄는 몇몇 개만 훑었는데도 금액이 상당해서 외면했다. 책상에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CD와 블루레이가 놓여있고 책장에는 잡지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잡지에 흑백으로 기사 한쪽만 실려도 사던 학생은 여전히 인터뷰 한 꼭지를 보기 위해 외서를 주문하는 성인으로 자랐다.

 

고객센터에 ISBN과 상품명과 함께 입고 요청하는 일은 오래간만에 해도 낯설지 않았다. 집에 외서가 쌓이는 속도와 배송대행지의 등급이 오르는 속도가 비슷했다. 안팎으로 열심히 사재끼고 있었다.


나에게 덕질을 물어보는 친구는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정확히는 모를 때가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좋아하는 대상은 전부 마이너 취향이다. 말을 해도 상대는 알지 못한다. 나에게는 한없이 소중한데 누군가에게는 인지조차 되지 않는 존재라는 걸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대략적으로만 이야기한다.

 

아깝고 소중한 마음은 종종 악의 없는 말에도 흠집이 생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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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상대로 덕질을 하면 그런 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난리 쳐도 당사자는 너는 모른다'와 ’덕후는 계를 타지 못 한다‘는 흔한 레퍼토리. 나는 별은 멀리서 봐야 그 반짝임을 가장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라 그 사람이 나를 모르는 일은 마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미 지금의 내가 충분히 행복하다는데 나를 모른다 한들 그게 어떤가요.

 

물론 이렇게 말하면서 계를 타보기는 했다. 누가 들어도 ‘덕계못이라더니 아닌 거 같다’는 이야기를 몇 번인가 들었다. 존재만으로도 좋은데 그 존재가 나에게 좋은 순간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그 찰나의 행복함으로 많은 힘든 시간을 버텨내기도 했다. 덕질을 함으로써 나는 행복했고 또 힘을 받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대상이 유명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블로그를 시작한 적이 있다. 누군가 검색했을 때 결과에 뭐라도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는데 나중에는 습관적으로 포스팅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장소는 블로그에서 트위터로 넘어갔고, 누군가 내 직업을 궁금해할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한 적도 있다.

 

그 행동이 의미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그 순간이 모두 즐거웠다. 관심을 갖고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서 어느 시간에 올려야 좋을지 고민하던 시간까지 말이다.


덕질은 나에게 포토샵과 영상 편집과 외국어 번역을 고민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것들을 알려주었다. 정말 덕질 외에 어느 곳에도 쓸모없는 건인데 놀랍게도 그것들로 인해 나는 여전히 즐겁다. 다시 덕질을 시작한 나는 외국어를 더 익혀서 가사를 두 개쯤 제대로 번역해보겠다는 작은 다짐도 했다. 자기계발 측면에서 보자면 당장 업무에 쓸 영어 공부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무슨 제2외국어 공부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내가 신나고 즐거워서 멈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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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런 조언을 들었다. 취미를 만들어보라고, 그러면 힘든 순간을 잊고 집중하는 순간이 오고 그게 선순환을 가져온다고. 나는 힘들고 지칠 때도 덕질을 했고 살만할 때도 덕질을 했는데 언제 어느 순간이었든 시간과 마음을 쏟을 곳이 있다는 자체로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었다. 지금의 나는 과거에 비해 더 활동적인, 무척 정적인 덕질을 하고 있는데 아마 내가 덕질에 쓸 수 있는 활력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계속 이렇게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덕질을 할 것 같다.

 

적당히 그만두기엔 이미 오래전부터 오래된 취미생활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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