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독서동아리, 해볼까요?"라고 물으신다면

읽지 않는 책을 읽다보니!
글 입력 2023.02.2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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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자기개발서라니!



작년부터 다른 사람들과 식견을 나누고자 책을 함께 읽는 모임에 한 달에 한 번씩 나가고 있다. 해가 바뀌었으니 새로운 마음으로 1분기에는 자기계발서를 읽자는 안건이 나왔다. (하필이면) 안건 상정일에 결석을 하는 바람에 반항하지 못했다. 그래, 원래 읽던 책만 읽을 거면 혼자 읽고 말지! 하지만 후보군으로 올라오는 책들마다 흥미가 생기지를 않더라. 그나마 덜 명령할 것 같은 책에 소중한 한 표를 던졌다.


내가 어떤 책에 투표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투표하지 않은 책이 선정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더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어떤 책이든 신경쓰이지 않을 정도로 이 ‘자기개발’ 분류에 대한 호감이 없다. 확신하는 어투로 점철된 그리스로마신화의 신탁들을 보고 있자면 다소 어이가 없다. 모두가 저의 상황과 같지 않을 터인데 어떻게 저리도 자신이 있단 말인가.


그 뿐만이 아니다. 올해에 책을 몇 권 읽었냐는 질문에 대답할 때, 교과서를 셈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즉, 공부를 했던 책을 ‘독서’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외려 업무와 유사하달까. 그런 책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 목록에 올라가 있어야 한다, 쉬는 날 설렁설렁하는 여가의 독서가 아니라!


자기개발서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위에서 마무리되었다면 내 태도가 중립에 머무를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끝이 아니다. 수업을 들을 때면 선생님의 모든 말을 받아 적는 공부법을 소유한 나는 그런 책들을 읽는 내내 메모장을 펼쳐두어야 하는 성질머리이다. 그렇다. 나는 자기개발서와 같은 부류의 책들을 컴퓨터 책상에 앉아서 읽어야 한다. 문단의 주요 문장을 골라내고, 목차에 맞게 내용을 정리해야 하므로!

 

 

 

읽어야지, 어쩌겠어!



잘 된 일 같기도 했다(나는 합리화에 능하다). 이럴 때 아니면 내가 언제 눈길이나 주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책의 제목과 부제, 서문을 보고 있자면 입술이 뒤틀렸다. 책을 눈 앞에 펼쳐 놓고서, 읽는 시간보다 생각을 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이런 책에 비하면 에세이는 완전하게 인간적이다. 이런 책들은 현대사회의 표본이다. 내일 지구가 망해도 오늘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하고, 앞으로 나아갈 추진력을 유지할 수 있는 고집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으며, 끝끝내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결론인데, 이 ‘해피엔딩’은 내가 원하는 결말이 아니다. 맹목적인 성공을 향한 달리기라니,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본다던데, 내가 사는 이 곳에 개만 몇만마리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성공에 미친 사람들이 모인 지구에 내가 살고 있다니!’


다시 긴 한숨을 내뱉았다. 나도 알고 있다. 내가 성공을 표방하고 있지는 않지만, 내가 원하는 ‘평범한 삶’을 보통은 ‘성공했다’고 말하고, 대개 내가 살아가는 정도의 밀도를 가진 자를 ‘열심히 산다’라고 말하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을 뿐, 나도 개 무리에 속해 있다. 내 앞에 놓인 것을 수긍하고 책장을 넘기면서 이번 달에는 다른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눠볼 지에 대해 고민했다. 앞에 죽 늘어진 부정적인 견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결국 내가 제출한 논제들은 책의 논리를 부정하는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저자가 의심해야 할 것을 말했다면, 해당 명제에 대해 이미 긍정적인 경험이 있는지 질문했다. 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최고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문구에는 “최선을 다하고도 후회한 적이 있나요? 결과 또는 과정 중에 어떤 것에 더욱 방점을 두시나요?” 따위의 다소 유치한 복수와 같은 것이다. 내가 인고의 시간을 지나왔으니 이 정도 꼬여 있는 건 정상참작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약간.

 

 

 

혼자였다면 여전히 몰랐을 것들



그런 식으로 두 권의 책을 함께 읽었다. 알게 된 것, ‘아! ‘성공’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있어서 거부감을 첨가한 어감이구나!’. 자아성찰에 꽤나 열심이기 때문에 내 생각과 행동이 파생되었던 사건에 대해 많이 인지하고 있는 편인데,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정확히 모르겠다. 짐작가는 원인으로는, 수많은 드라마에서 묘사한 캐릭터들이 ‘성공’에 미쳐 가족들이나 연인들을 돌보지 못하고 후회했다는 것, 친일을 했던 자들이 사회상류층으로 자리 잡으면서 국가 전반에 깔린 부유층에 대한 거부감, 뭐, 그 정도가 되겠다. 대개 이 정도의 부정적 감정이라면 개인적인 사건이 있어야 할 텐데 도무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단어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점.


또 깨달은 것. ‘아! 나 심리학과지!’. 심리학을 배우는 이들이라면 알 테지만, 심리학 개념을 학습할 때의 가장 기초는 자신의 사례를 대입하고 인지와 행동의 인과를 추론하는 것이다. 즉, MBTI가 유행하기 전부터 심리학도라면 MBTI 검사를 넘어서, 애착유형검사, MMPI(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 HTP(House-Tree-Person), 로르샤흐 검사 등을 통해 스스로를 분석해본다.


기타 개념들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상담심리 교과목은 학생들 간 그룹을 만들어 상담법을 실행해보면서 모의상담이 진행된다(효과는 예상보다 꽤 좋다. 많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울곤했다.). 따라서 일반인들보다 자아성찰이 발빠르게 진행된다. 그러니 베스트셀러에서 말하는 심리적 통찰이 시시하게 느껴졌을 수 밖에. ‘다 아는 내용으로 장사를 하다니!’라고 비웃었는데, 나 외에 다른 멤버들의 심금을 울렸다더라.


저번 달에 마무리된 작업 중에 ‘혼자 책을 읽는 묵독을 넘어, 함께 읽는 사회적 독서로!’라는 표어를 담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책이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고, 독서모임 혹은 강연회 등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매개가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작업 중간에서도 나 스스로도 체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사회적 독서’를 두 번의 공동 독서를 통해 체감했다고 느낀 것을 보면. 사람은 직접 겪어봐야 안다더니.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우린 사회적 동물이니까!’가 아니다. 인간은 비교를 통해 자아를 성립한다. 에릭슨의 자아발달이론에 따르면 2~4세에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자아가 형성되고, 청소년기에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확립이 이루어진다. ‘함께 읽기’는 사회적 연대 뿐만 아니라,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그들과는 다르게 어떤 기준을 가지고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렇게 두어달 동안 나는 사춘기처럼 ‘나는 누구인가’를 곰곰히 곱씹어 보게 됐다.


여전히 자기개발서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침대에 앉아서 차 한 잔 홀짝이며 혼자 읽은, 읽을 책들 목록에도 여전히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함으로써 나에게서 ‘자기개발서’는 긍정적인 미사어구 한 줄을 가져갔다. 언젠가 이런 부류의 책이 필요할 때, 싫은 마음을 잔뜩 안고 있지는 않을 거라는 기대감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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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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