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여유로움을 위한 치열함 [문학]

'오후 3시, 오잔호텔로 오세요'를 읽고
글 입력 2023.02.2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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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과회 

차와 과자 따위를 베푸는 간단한 모임.

 

- 표준국어대사전

 

 

 

다과회를 해본 적 있나요?


 

테이블보를 덮은 기다란 테이블 위로 장난감같은 처음 보는 간식들이 가득 담긴 접시가 층층이 쌓여있고, 예쁜 컵을 들고 등장인물이 다과회를 가지는 장면. 어릴 적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장면이었다. 나는 다과회, 또는 티파티가 정말 멋있어 보였다. 이후에 그것이 애프터눈 티세트라는 걸 알게 되고 난 후 언젠가는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친구가 사진을 보여주었다. 책에서만 봐왔던 3단 트레이를, 애프터눈 티세트를 주문할 수 있는 가게였다. 당시 받던 용돈으로는 무리가 있었기에 큰맘 먹고 친구와 갔다. 행복했다. 맛있는 디저트와 샌드위치, 처음 마셔보는 향긋한 홍차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한 친구와의 수다. 그 모든 것이 모여 나에게는 굉장히 좋은 기억이 되었다.

그 후 여유가 있을 때마다 애프터눈 티세트를 먹으러 다녔다. 가게마다 가격도 천차만별이기에 구성도 다르고 준비된 차도 다 달랐기에 즐거웠다. 상황이 여의찮으면 차만 우려서 사람들과 나눠 마시기도 했다.

 

이런 나였기에 끌렸던 것일까. 오늘 소개할 책은 애프터눈 티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오후 3시 오잔호텔로 오세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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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는 상이란다.


 

도야마 시즈네는 간식을 중요시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시즈네의 할아버지에게는 어릴 적 인상 깊었던 간식과의 추억이 있어 가족들에게도 간식의 소중함에 대해 말하곤 했다. 할아버지의 간식 사랑을 그대로 이어받은 시즈네에게 애프터눈 티는 궁극의 간식이었다.

 

향기로운 차와 다양한 간식으로 듬뿍 대접받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애프터눈 티를 업으로 삼을 수 있다니! 취업 준비를 하던 시즈네는 오잔호텔의 '애프터눈 티팀'의 인터뷰를 보고 '여기다.' 하는 마음에 토익 점수를 올리고 중국어까지 공부하여 무사히 오잔호텔에 입사한다.

 

다른 부서로 입사한 시즈네는 끝없는 노력을 통해 결국 애프터눈 티팀으로 부서 이동에 성공해낸다. 시즈네는 자신을 오잔호텔로 이끌었던 '소노다 가오리'의 후임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기획서를 가지고 회의에 들어가지만, 팀원들로 인해 그의 기획은 박살 나고 만다.

 

 

 

인생은 고생스러운 법.


 

팀원들에게 선보인 첫 기획서는 몇 장 넘겨보지도, 설명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회의가 끝나버렸다. 행복할 것만 같았던 애프터눈 티팀에서의 일상은 생각과는 아주 달랐다. 의견을 내는 족족 기각당하는 아이디어들, 무언가 숨기는 것 같은 파티시에, 의견을 피력하기보다 방관하는 요리사와 어딘가 뒤틀린 계약 사원과의 관계, 그리고 의욕만 앞서는 시즈네 본인.

 

시즈네는 팀을 이끌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휴직한 가오리의 그늘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초반부의 애프터눈 팀을 보면 험난하기 그지없다. 서로를 믿지 못해 자신이 가진 애로사항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자신의 과거를, 누군가는 신체의 불편함을, 누군가는 직함에 대한 질투를. 하지만 서로 일을, 손님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점점 서로를 이해하고 의견을 나누기 위래 노력한다.

 

과연 오잔호텔의 애프터눈 티 팀은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시즈네의 기획이 과연 모두의 동의를 받으며 통과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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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애프터눈 티'라는 주제로 여유롭고 따뜻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이끌지만,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대화를 보여주며 그들이 처한 차가운 현실을 간간이 보여준다. 비정규직의 비애, 신체적 불편함으로 인한 슬픈 과거, 워킹맘의 어려움과 한때 과거를 이끌었지만, 현재는 찾아보기 힘든 여성들 등 다양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저 애프터눈 티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빌린 책이었지만 책이 담고 있는 씁쓸한 현실이 더욱 책으로 끌어당기는 매력이 되었다.

 

 

 

다과회를 열어본 적 있는가?


 

눈으로 볼 때 예쁜 것들이 준비하는데 손이 많이 가는 것처럼 예쁜 것들이 모인 다과회는 손이 안 가는 것이 없다. 어떤 사람들을 초대할 것인지, 그들에게 어떤 차와 다과를 준비할지 결정해야 한다.

 

찻잎은 다과와 어울리는지 관리가 잘못되어 잡내가 되지 않는지, 우유와 설탕도 준비해야 하는가부터 알레르기가 있는 손님은 없는지, 다과를 준비한다면 어떤 종류와 가게에서 사 올지 고민해야 한다. 여기까지 고민이 이어지면 담는 그릇이나 다구까지 신경이 쓰인다. 이렇게 준비하고 있으면 대접받는 기분이 드는 이유를 절로 이해된다.

 

누가 보면 이렇게 번거로운 걸 왜 하냐고 할 수 있다. 다량의 고민과 설거짓거리 그리고 가벼워지는 지갑만 남는 이 활동을 왜 지속해서 하는가. 그 분위기가 좋다. 그 여유롭고 잔잔한 분위기 속에 있다 보면 준비하는 동안의 고생을 잊곤 한다.

 

사람들과의 이야기, 준비하느라 힘들었지만 보기 좋고 맛있는 간식을 즐기다 보면 번거로움을 잊고 다음을 기대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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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그렇다. 느리지만 치열하게 멀리서 보면 여유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을 하는 나는 누구보다 노력하는 걸 보면 인생도 하나의 애프터눈 티가 아닌가 싶다. 번거롭고 귀찮더라도 언젠가는 그것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즐거운 결과와 미래를 기대하며 끊임없이 노력하고 만다.

 

맞이할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나를 위해 가끔은 애프터눈 티 같은 간식으로 여유를 가지면 어떨까? 간식은 상이니, 말이다.

 

 

[빈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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