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좋은 에디터가 되는 길

글 입력 2023.02.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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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좋은 에디터란 무엇인가’라는 주제가 던져졌을 때부터 예기된 상황일 지도 모른다. 마치 생각을 멈추려고 해도 멈춰지지 않는 이상한 굴레에 갇힌 것처럼, 좋은 에디터만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그 굴레 속에서 나는 괴롭기도 했고, 또 그만큼 들뜨기도 했다.


빈 종이에 '좋은 에디터'에 어울리는 문장이나 단어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적고 나서 그 내용을 가만히 들여보고 있자니 어쩐지 조금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에디터란 이런 모습을 지닌 자인데, 그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을 지난날에서 찾기 어려웠다. 사실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퍽 괴로웠다.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이야말로 정말 안타깝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어째서. 자괴감이 날 괴롭혔다.


그리고 딱 그만큼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이번 공통 주제 글쓰기가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이 찾아왔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에디터, 당장은 완벽하게 해낼 수 없겠지만 흉내는 낼 수 있을 테니까.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그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그런 기분 좋은 상상까지 해본다.


괴로움으로 시작해 새로운 결심까지 하게 만든, 내가 정의 내린 '좋은 에디터'를 공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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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다



사실, 좋은 에디터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그 속에 정답은 없다. 옳고 그름도 없다. 그냥 각자만의 답이 있을 뿐이다. 그 개인적인 답을 털어놓기 위해서 우리는 가장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어쩌면 얼굴도 모르고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글'로 연결되어 있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답도 없고, 정석도 없고, 원칙도 없는 곳에서 자신만의 언어로 말하는 사람.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드러내는 사람. 때로는 자신의 깊은 내면 속 상처나 못난 모습도 솔직히 고백할 줄 아는 사람.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을 세상에 내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 쓴 글에는 그만의 색이 묻어 나오고, 그만의 향이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글이 된다.

 

그렇게 나만의 글을 만들어 내기 위해 글 앞에서 만큼은 솔직해지려고 노력한다. 다른 누군가에게 나를 투영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구태여 찾으려 애쓰지 않고, 지금의 나를 존중해 본다. 그러다 보면 솔직한 마음을 글로 옮기는 과정이 아주 조금은 쉬워진다. 그리고 그때 남겨 놓은 글은 그때의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 된다. 지금 이 글도 지금의 나만이 지을 수 있는 글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특별한 곳이 아닌 일상에서 글감을 찾으려고 한다. 일상만큼 나를 잘 설명해주는 곳은 없으니까. 평소에 자주 발걸음 하는 장소나 종종 사색에 잠기게 만드는 어떤 것, 요즘 특히나 푹 빠져 있는 취미, 무엇이든 주제가 될 수 있다. 경험상 그렇게 나온 글감은 조금 더 자연스럽고 편안한 마음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 그 글에서 만큼은 스스로 검열하게 되는 이상한 과정도 덜어낼 수 있었다.


사연 없는 사람 없듯이,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이 생긴 사람 없듯이, 사람은 다 각자만의 이야기를 안고 산다. 말하자면, 그만큼 다양하고 개성 있는 글이 나올 수밖에 없다. 글 앞에서 솔직하고 자신을 존중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인상을 남기다



그렇게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 어떻게든 어떤 식으로든 보는 이에게 인상을 남긴다. 내가 만든 글로 하여금 타인이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되고,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되며, 더 나아가 안 하던 행동을 하게 되기도 한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이곳 아트인사이트에서도 너무나 쉽게 경험할 수 있다.


연말에 여기서 한 편의 글을 보고, 조금 색다르게 새해를 시작했다. 매년 새해를 시작 할 때 그 해를 대표할 문장을 고른다는 글이었다. 정말 근사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올해의 문장을 고르고 골라 새 다이어리 첫 장에 또박또박 적어 보았다. 왠지 정말 그러한 2023년이 될 것 같아서 괜스레 설렜다. 앞으로도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그 글이 떠오르면서 새로운 문장을 고민하게 될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지난날에는 자신의 어린 상처를 고백하며 여전히 그것을 극복하지는 못했다는 글을 보았다. 감히 어떠한 말로도 위로를 건넬 수는 없었다. 다만 자신의 아픔을 공개적인 글로 드러낸 모습이 며칠 동안 잔상을 남겼다. 그 모습이 전혀 유약하거나 나약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단단하고 강인하게 느껴졌다. 그런 모습은 꼭꼭 감추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되도록 얕고 짧게 말하고 싶었는데. 그동안의 내 생각이 완전히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 외에도 경험한 적 없던 음악이나 영화에 대한 글을 접하고, 나도 그 음악과 영화의 팬이 되는 경우도 숱하디 숱했다.


좋은 에디터가 만든 좋은 글의 선한 영향력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일단, 쓰자



사실 앞서 말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일단, 써야 한다. 쓰지 않으면 나만의 글을 지을 수도, 그 글로 타인에게 어떠한 감상을 남길 수도 없다.


두서없어도,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엉망이어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라도, 일단은. 써야 한다. 그렇게 쓴 글이 기고 글 중 하나가 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지금 당장은 기고하지 못해도 그 글이 새로운 글의 거름이 되기도 하니까.


이런 말이 참 무색하게도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써야 한다는 것을 아는데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글을 한 자도 쓰지 않았다. 핑계는 다양했고, 그중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은 '좋은 글을 써내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누가 꼭 좋은 글을 써야 한다며 뿌리칠 수 없는 임무를 부여한 것도 아닌데, 언젠가부터 좋은 글은 내 지독한 사명이 되어버렸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뭐 얼마나 대단한 글을 쓴다고 이토록 신중한 건지. 왜 이렇게 조심스러운지. 이게 이렇게 망설일 일인가.


물론 무슨 일이든 후회 없이 해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건 욕구가 아니라 욕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글이든 나중에 다시 보면 아쉬움과 후회가 남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만큼의 여백이 있기 때문에, 조그마한 틈이 여러 있기 때문에 글이 숨을 쉴 수 있는 게 아닐까. 그 글의 숨이 새로운 글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는다고 믿고 싶다.

 

*

 

앞으로도 글을 계속 쓰는 한, 좋은 에디터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싶다. 그 시간이 이번처럼 괴롭더라도. 괴로운 만큼, 또 희망적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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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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