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 에멧 코헨 트리오 첫 내한공연

글 입력 2023.02.16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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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라고는 뮤지컬밖에 모르는, 그나마 더 쳐줘도 연극까지밖에 모르던 내가 재즈 공연을 갔다. 그 흔한 콘서트 한 번 가본 적 없어서 공연장에서 무대가 진행되는 동안 내 소리, 내 몸짓, 나의 어떤 행동을 내보이는 것은 극도로 지양하던 내가, 이 공연이 끝날 때는 어느새 리듬에 맞추어 고개를 끄덕이며 온몸으로 호응하고 있었다. 물론, 고개를 흔드는 건, 맨 뒷줄의 통로 자리, 옆에는 친구가 앉은 나의 특권이었지만.


어쨌든 공연장에서는 수분 바싹 마른 건조 오징어가 되곤 했던 내가 처음으로 상호작용하며 즐겼던 공연. <에멧 코헨 트리오 첫 내한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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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앞서 말했다시피, 난 공연이라고는 거의 뮤지컬에 올인 하며 살고 있다. 다른 장르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유독 뮤지컬을 좋아해서. 그런데 왜 좋아하게 됐느냐고 생각해보면, 내가 내 돈으로 처음 향유하고 감동을 한 첫 공연이 뮤지컬이라서 그렇더라고. 단순 그 자체. 늘 생각하지만, 공연은 접근성이 낮다. 가격이 비싸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가야하고, 양질의 관람을 위해서는 예매도 거의 필수다. 진입 장벽이 높다.


그래서 재즈 공연에도 도전해 볼 생각을 마음을 가졌다. 장벽을 좀 깨보려고. 원래도 재즈풍 노래를 좋아하니 시도해 볼 만한 개연성이다. 턴테이블이 있는 친구의 집에서 내가 친구에게 선물한 샤샤 슬론의 LP를 듣는 것을 좋아했고, 한창 뉴에이지를 들을 때 재즈 음악도 좀 들었다. 그렇다고 재즈에 대해서 아는 건 아니다. 그냥 플레이리스트 제목에 재즈 이름 붙어 있으니 그런가 보다 했고, 좋아하는 가수의 신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노래 댓글을 봤더니 ‘재즈풍 노래 좋다’고 적혀 있어 그런가 보다 했다.


여하튼 나는 재즈에 대해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어림짐작하는, ‘내가 그래도 이 풍을 좀 좋아하나 보다’의 그 ‘재즈풍’은 굳이 시각적 심상으로 표현하면 ‘보라색과 회색빛 사이의 연기’쯤 이었다. 보통 슬픈 노래를 좋아하는 내가 특히나 혼자서도 찾아 듣고. 듣다 보면 나른하게 하면서도 묘하게 빠져들게 하고. 어딘가 쓸쓸하고 좀 메마르고 버석한 느낌에 묘한 서글픔이 있는 보라색과 연회색쯤. 그러나 명확한 느낌은 아니어서 연기 같은.


그러나 이러한 심상은 에멧 코헨 트리오의 공연을 보고 완전히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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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리스트는 즉흥적으로 정해집니다



그날 원고 마감을 하느라 급박하게 공연장에 도착했다. 표만 헐레벌떡 받고 친구와 바로 입장했는데, 공연을 보고 처음으로 놀란 건 자유로운 관객 분위기였다. 좋은 부분이 있으면 ‘예!’라고 소리를 지르며 환호한다. 이제껏 내가 사는 공연 세계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기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이동하는 사람도 정말 많았다. 처음에는 공연에 늦은 지연 입장인가보다 했는데, 나가는 사람도 들어오는 사람도 꾸준히 많았다. 신기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렇게 상호작용을 하며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방식이 매력적이라고 느껴졌다. 연주가 좋으면 호응하고, 잠깐 쉬고 싶으면 나갔다 오고. 자유로웠다. 그리고 자유로운 환경이니 오히려 지금 이 공연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이 연주에 집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개개인의 환호를 지나, 그 개별 소리가 점점 상승하여, 결국에 뭉쳐 군중의 탄성으로 합쳐질 때. 그건 그 군중의 하나였던 내가 들어도 짜릿한 순간이었다. 한마디 말도 없는 이 연주에서, 자유로움은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걸 알려줄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이 아닐까, 생각했다.


공연을 다 보고도, 마지막으로 놀랐던 것은 공연 안내 문구였다. 나는 급하게 들어간 탓에 안내 문구를 공연이 다 끝나고서야 봤는데, ‘셋리스트는 즉흥적으로 정해집니다’라는 문구가 인상 깊었다. 공연의 장점이자 단점이 그날에만 존재한다는 현장감의 희소성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뮤지컬 같은 배우 페어여도, 그 날, 그 호흡, 그 애드리브는 다를 수 있다. 그건 그 순간에만 존재한 거니까. 그런데 재즈 공연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즉흥적으로 정해지는 셋리스트라니. 너무 좋아서 어떤 노래인지 찾아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다는 아쉬움과, 이 즉흥의 유일한 순간을 볼 수 있었다는 희열이 동시에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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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언어인 것만 같아



앞서 말했듯 나에게 ‘재즈’는 희뿌연 느낌의 심상이었다. 그런데 웬걸, 내가 에멧 코헨 트리오의 공연에서 느낀 것은 정반대였다. 재즈는 아주 명확하고 다채로운 장르였다.


연주, 특히 트리오는 긴장감을 높였다. 세 세션은 한 번에 시작하는 게 아니라, 한 세션이 연주하고 있으면 다른 세션이 그 위에 얹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박자가 엇박으로 들어갈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뭐, 이후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찾아보니 그게 의도한 엇박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아무렴 어때, 공연은 ‘씨 왓(See what)’인데. 나는 그 순간 엇박으로 겹쳐지는 트리오의 연주에 텐션을 느꼈다.


연주는 명랑하고, 풍성하고, 선명했다. 특히 음악이 고조될 때, 에멧 코헨이 피아노 페달을 위한 발뿐만 아니라 나머지 한 발도 같이 구르며 연주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온 몸을 다하지만 부드럽게 흘러가는 피아노는 정말 유려했다. 후반부에 피아노 솔로로 정말 빠르게 연주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나는 사람 손이 너무 빨라서 손이 흰 실타래처럼 보이는 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가 아닌 실제로는 처음 봤다. 소리 없이 그의 연주 화면만 봐도 그 선명한 선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필립 노리스의 베이스는 마치 말하는 것 같았다. 음악은 만국 공통의 언어라는, 그런 진부한 표현 말고. 현악기에서 ‘현(絃)’이 진짜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클라이밍을 할 때 벽을 쥐어뜯는 것 같다고 느낀 적 있는데, 베이스도 현을 쥐어뜯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우악스러운 게 아니라, 서로 기대며. 그 탄성과 높낮이와 튕김은 명백한 어떤 뜻이 있는 것 같았다. 모스 부호나 암호처럼, 어떠한 뜻을 담은 수신호처럼. 누군가의 언어인 것만 같았다.


드럼은 시종일관 우리를 바라봤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에멧은 등을 보이고 있고, 베이스를 연주하는 필립은 베이스를 바라본다. 그러나 드럼은 아니다. 카일 풀은 드럼을 치면서 시선과 몸이 계속 관객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나도 그의 시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잔잔한 트리오에서 드럼의 앞부분을 긁는 소리가 있었는데, 이는 내가 드럼에서 난생처음 듣는 소리였다. 비록 초등학생 때지만 드럼도 한때 쳤었는데, 그 소리는 어디서 기인할 수 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플로어 탐? 보우? 정말 아직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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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는 선명한 공감각



음악은 또 다른 언어라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만 같은 구절을 내가 실제로 떠올릴 줄은 몰랐다. 파워풀한 연주를 할 때는 눈에 소리가 꽂혀 들어오는 것만 같다가도, 부드럽고 조용한 트리오를 들을 때는 악기끼리 대화하는 걸 엿듣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저들의 속삭임을 내가 엿듣고 있다는. 에멧 코헨 트리오의 연주는 너무나 명확하고 선명해서, 소리 그 이상의, 그 자체로 어떤 누군가의 말이자 언어이자 대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 중간 연출의 요소도 좋았다. 피아노가 솔로로 슬픔과 조용함 사이의 곡을 연주할 때, 공연장 전체 오른쪽 벽면에 에멧 코헨의 그림자가 비쳤다. 연주처럼 함께 너울대는 에멧 코헨의 실루엣이 음악과 잘 어울렸다. 마지막 잼 세션에서는 이수정, 송하철 색소포니스트와의 즉흥 연주가 환상적이었고, 강재훈 피아니스트와 자리를 바꾸어가며 피아노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도 멋있었다. 풍성하고 화려한 색채의 공연이었다.


나는 주로 텍스트의 장르를 좋아한다. 하긴, 살면서 텍스트를 많이 접하는 건 당연한 일일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유독 그중에서도 책을 좋아하고, 스크립트 장르인 드라마와 뮤지컬을 좋아하고, 노래를 들을 때도 가사를 가장 중요시한다.


그러나 가끔 이렇게, 텍스트가 아닌 장르를 통해 공감각적인 카타르시스를 함께 느끼면, 나에게 파도처럼 밀려온 경험이나 감정을 텍스트로 다 표현해내지 못하는 것이 못내 답답하다. 어쩌면 그래서 이 연주를 들으며 또 다른 누군가의 언어라고 생각한 것 같기도 하다. 표현의 한계를 느끼며, 이러한 소통은 이 방식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감정이 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재즈는 그 자체로 공감각적 심상이 아닐까?

 

들었을 뿐인데, 모든 감각이 선명히 보고 듣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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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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