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살아 있다는 건, 굉장한 일이구나. [문학]

책, 구로우타도리 합창단, 팬케이크, 다락방 그리고 엄
글 입력 2023.02.11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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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정원이 딸린 이층집에는 한 소녀가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영원이라는 뜻의 '토와'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는 사랑이라는 뜻의 '아이'라는 이름을 가진 엄마는 언제나 함께였습니다. 토와는 그 생활이 퍽 마음이 들었습니다. 엄마는 토와에게 책을 읽어주었고 달콤한 팬케이크를 구워주었으며 옷을 지어주고 사랑한다고 해주었습니다.

 

이 행복한 소녀, 토와에게는 남들과는 다르게 세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토와는 세상을 눈으로 보는 대신 향기로 세상을 느낍니다. 비록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상관없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엄마의 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따라 상상의 나라로 갈 수 있었고 시간의 흐름은 아침마다 들려오는 구로우타도리 합창단의 소리와 수요일의 아빠로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계절마다 다른 향기가 나는 정원과 다락방이 있는 이층집 그리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엄마가 있으니까요!

 

눈이 보이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영원한 사랑이 그를 지켜 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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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사랑?


  

영원히 행복할 것만 같았던 생활은 어느 날을 기점으로 변했어요. 그래요. 엄마가 일하러 나가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어요. 엄마는 점점 변했어요. 책을 읽어주지도 않았고 밥을 해주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기분이 수시로 변했어요. 토와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죠.

 

토와는 그런 엄마를 걱정하며 참았어요. 덜 익은 컵라면을 먹고 탈이 나도 괜찮았고 아기 때나 입던 기저귀를 내밀었을 때도 참았어요. 토와 혼자 집을 지키는 것이 걱정되었던 엄마는 나가기 전 토와에게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약을 먹였어요. 약을 먹고 나면 꿈 속에서 토와는 여행했어요. 여행을 마치고 나면 어느새 엄마가 돌아와 있었기에 토와는 괜찮았어요.

 

어느 날이었어요. 평소처럼 엄마가 주는 약 먹고 일어났지만, 엄마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았어요. 집은 아주 고요했어요. 토와는 엄마를 기다렸어요. 구로우타도리 합창단이 엄마를 데려올까 기다려봤지만, 정원의 향기가 여러 번 바뀌도록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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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변화는 정원의 향기로 알 수 있었지만 세세한 시간의 변화는 알 수 없었어요. 낮과 밤의 변화를 느낄 수 없었고 수요일의 아빠만이 토와의 유일한 시계가 되었어요. 하지만 그조차도 점점 줄었어요. 이제는 수요일의 아빠가 되어주지 않았어요. 물품을 점점 줄어들었고 토와는 배가 고팠어요.

 

너무너무 고팠죠. 음식을 준비해주는 엄마가 없고 앞이 보이지 않으니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걸 먹었어요. 수요일 아빠의 주요 식품은 간편식으로 바뀌었고 물품이 오자마자 먹고 탈이 나곤 했어요. 그럼 토사물에서 고형물만 집어먹기도 했어요. 기저귀의 양도 줄었어요. 그래서 토와는 같은 걸 며칠이고 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죠. 언제 씻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아요. 고요했던 집은 부스럭거리는 덩어리들과 악취로 가득 차기 시작했어요. 비라도 오는 날에는 집과 토와 자신에게서 나는 냄새에 참을 수 없었어요. 밖에서는 토와와 엄마의 소중한 집을 쓰레기 집이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토와는 웅크리고 엄마를 기다렸어요.

 

계절은 또다시 변했고 토와는 배고픔에 허덕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평생 자신을 품어주던 집이 흔들렸어요. 집에 있던 가구들이 쓰러졌고 열어둔 창문으로는 평소와는 달리 구로우타도리 합창단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흔들림 이후엔 사이렌 소리가 나고 공기도 달라졌어요. 그럼에도 엄마는 토와에게 와주지 않았어요. 토와는 결국 오랜 기다림을 포기하기로 했어요. 토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로 했어요. 그런 토와에게는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요?

 

 

나는 엄마를 잊어야만 한다.

내 마음속에서 엄마를 쫓아내야만 한다.

그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자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었다.

 

- 토와의 정원 中

 

 

***

 

토와가 다나카 토와코가 되기까지


  

토와는 아무 준비없이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토와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갑자기 변했고 토와가 처음 세상으로 나왔던 시절부터 이미 10년 이상이 흘러 있었다. 자신의 이름과 집, 엄마와 수요일의 아빠만이 존재하던 토와의 세계는 변했다.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데워먹는 방법과 배설을 조절하는 법,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교육을 통해 점자와 기초적인 산수를 배웠다. 외출을 하는 것은 아직 힘들었다. 토와의 눈이 되어줄 지팡이와는 쉽게 친해질 수 없었고 다양한 소리와 향 때문에 밖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점점 줄어들었다. 다시 토와의 세상이 줄어들려는 찰나 '조이'라는 안내견을 소개받으며 토와는 다시 나아가기로 했다.

 

토와는 정식으로 '다나카 토와코'라는 이름으로 조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자신의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토와도 이제는 안다. 그런데도 토와는 집과 정원이 그리웠다. 이 전보다 살기 좋아진 집. 더 이상 쓰레기 집이라고 불리지 않는. 토와는 이 집에서 살아갈 것이다. 도서관에 가기도 하고 친구를 만들고 정원을 산책하며 살아갈 것이다.

 

 

살아 있다는 건, 굉장한 일이구나.

 

- 토와의 정원 中

 

 

오랜만에 오가와 이토 작가의 책이다. 이 전에 '츠바키 문구점'시리즈을 읽은 후부터 작가의 이름을 발견하고 나면 꼭 한 번씩을 읽곤 한다. 역시 재미있었다. 영원히 행복할 것만 같은 토와의 일상에서 '엄마'라는 부분이 갑자기 바뀌는 부분부터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인 '토와'는 정말 굳센 사람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눈이 보이지 않는 토와가 느끼는 대로  서술 되어 시간에 대한 묘사는 상세하지 않다. 토와가 혼자 보낸 시간이 나중에 서술되지만, 확 와닿지 않는다. 혼자 눈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오랜 시간 포기하지 않는 토와를 보고 있자면 나는 너무 쉽게 포기하는 사람인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책의 주 무대가 되는 집도 충격이었다. 그저 토와의 삶과 이후의 삶을 사는 '공간'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들이 더 있었고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표지와 뒤편의 문구를 보고 평화로운 줄 알았던 이야기는 충격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내용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오가와 이토 작가는 역동적이고 독특한 삶을 사는 주인공들과 그들의 삶의 한 조각을 강조하며 독자에게 '삶'에 대해 고찰하게 한다. '달팽이 식당'에서는 삶 속의 '기적'을, '츠바키 문구점'과 '반짝반짝 공화국'에서는 삶을 사는 사람의 '마음'을, '라이온의 식당'과 '토와의 정원'에서는 삶을 살게 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내 삶에서 어떤 점을 소중히 하고 있을까? 아직은 확정하고 싶지 않다. 내 삶은 아직 빈 곳이 많아서 말이다. 다양한 경험으로 채운 후 결정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책장을 덮으며 다음 오가와 이토 작가가 보여줄 '삶'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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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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