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짧은 이야기의 전달자 - 판소리 쑛스토리 – 모파상篇

글 입력 2023.02.05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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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가 해야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판소리는 사람들의 가까운 일상을 노래한다는 것이 관람 전 생각이었다. 더욱이 전통적인 것이라야 한다. 초가집, 사또, 저고리와 같은 지금은 평범해 보이지 않는 소재들과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판소리 쑛스토리 – 모파상篇>은 전통과 일상을 조금 다르게, 하지만 조화롭게 해석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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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7일부터 29일까지 상연된 <판소리 쑛스토리 – 모파상篇>는 기 드 모파상의 소설원작 「보석」, 「콧수염」, 「비곗덩어리」를 판소리 1인극으로 재해석한 공연이다. 


극의 도입부터 노래되는 소리 ‘그저 짧은 이야기’는 단번에 뇌리에 박힌다. 단지 짧은 세 편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서 다가올 이야기는 ‘앞으로 바짝 당겨 앉아’ 듣고, 지나간 이야기는 ‘훌훌 털어’ 낸다. 


각각의 이야기를 구분 짓는 것은 모파상의 소설들이 갖는 나름의 주제들에 의한 것이다. 1880년대 파리 사람들의 생활상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보석>과, 전쟁의 참상을 전달하는 <콧수염>, 그리고 전쟁 중에도 발동하는 사람들의 차별의식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비곗덩어리>는 특정한 공통점으로 부각되지 않는다. 


첫 번째 이야기 <보석>은 사랑하는 배우자와 사별한 파리의 사무관 ‘랑탱’이 그녀의 유품을 처분하면서 겪는 심리 변화를 노골적으로 묘사한다. 소중한 배우자에게 딱 하나 있었던 단점인 ‘모조 사치품 모으기’는 죽음 이후에는 정반대의 가치로 매겨진다. ‘진짜’가 아닌 ‘모조’를 모으는 것을 못마땅해 하던 랑탱은, 그녀의 물건이 실은 진품이었다는 것이 보석상에서 밝혀지자 막대한 재물을 얻는다. 그러나 보석을 팔아치운 후 랑탱은 그 재산으로 새로운 배우자를 맞이한다. 배우자에 대한 랑탱의 사랑은 진짜였을까, 모조였을까. 박인혜 배우는 시간이 흐를수록 격변하는 랑탱의 심리와 성격을 가벼운 몸짓만으로도 풍부히 표현했다.


두 번째 이야기 <콧수염>은 서간문 형식의 소설이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자는 콧수염에 대한 개인적 취향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것의 유래가 전쟁터에서 마주한 군인들의 시신이었음을 밝히며 편지를 마무리 짓는다. 가벼이 시작한 이야기는 전쟁의 참상에 대한 묘사로 다소 무겁게 끝이 난다. 


세 번째 이야기 <비곗덩어리>는 마찬가지로 전쟁 상황을 배경으로 삼지만, 피난민들의 이야기이다. 전쟁으로 혼란한 상황에서도 피난민들은 위계를 설정한다. 가장 하대 받는 ‘매춘부’는 일명 ‘비곗덩어리’라 불린다. 신분고하에 상관없이 이 여성은 남다른 애국심과 배려를 갖추었으나, 다른 피난민들을 위해 희생당하고 외면받는다. 


다만 세 가지 이야기는 모두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그러면서도 삶의 씁쓸하고 외로운 단면을 비춘다. 이야기가 끝날 적마다 입안에 텁텁함이 남았다. 어째 훌훌 털어버리기만 하기에는 모파상 소설의 주제의식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극은 빠르게 다음으로 넘어가고, 관객 역시 훌훌 털고 다음 이야기에 집중한다. 


박인혜 배우는 이야기꾼, 이야기의 등장인물, 그리고 무대 위의 배우로서 공연에서 많은 역할을 도맡는다. 혼자서 여러 인물을 표현해야 한다는 부담과 관객에게 이해시켜야 하는 어려움은 극 사이사이에 설명을 덧붙이며 여유롭게 풀어나간다. 등장하며 악사,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관객들과 호흡하는 공연 매너는 관객으로서 공연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생생하게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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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의 소설은 시대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그동안 ‘전통적’이라고 생각해 왔던 판소리와 다른 이야기이다. 연주에는 물론 다양한 악기들이 활용되었지만 소리는 북과 징이 기반이 된다.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배우의 소리는 소설 속 인물의 절절한 마음을 실감 나게 표현한다. 


실험적인 공연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부수고 공연은 판소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전하는 이야기의 장르를 불문하고 사람과 삶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판소리의 노래가 될 수 있다. 무겁지 않게 이야기를 전해 받았다.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한 공연이었다.

 

 

[홍가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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