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목청 높여 전한 꾹꾹 눌러쓴 이야기 - 판소리 쑛스토리 '모파상篇' [공연]

글 입력 2023.01.31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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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쑛스토리 - 모파상篇]은 판소리아지트 놀애박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중 첫 번째 작업으로, 프랑스 작가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의 1880년대 단편소설 ‘보석’, ‘콧수염’, ‘비곗덩어리’를 각기 다른 콘셉트의 1인극으로 공연하고, 모파상이 던졌던 인간에 관한 질문이 여전히 유효함을 확인한다. 이는 단편소설이 가진 간결함과 형식미가 판소리 ‘대목’ 양식과 공통점을 갖는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모파상의 단편소설은 크게 ‘전쟁’, ‘파리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단면’, ‘사랑’ 등 작가가 경험한 삶의 다양한 사건을 중심으로 한 몇 가지 주제로 나눌 수 있다. 주제를 막론하고 그의 작품은 인생과 인간성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과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 공연에서 선보이는 세 이야기 또한 상류계급의 속물근성과 위선을 예리하게 파헤치는 등 인간성에 대한 모파상의 날카로운 관찰이 돋보인다.


 

“아주 먼 곳에서, 강산이 열댓 번 변하기 전, 

솜씨 좋고 애처로운 한 남자가 꾹꾹 눌러써 남겨놓은 이야기.”

 

 

한 남자(모파상)가 꾹꾹 눌러써 남겨놓은 이야기라는 콘셉트에 맞게 무대는 간략하게 노트 두어 장을 찢어놓은 듯한 간략한 형태였다.

 

그런데 그 간략한 무대가 소름 돋는 연기력을 지닌 박인혜, 그리고 양옆에서 그를 든든히 받쳐주는 네 악사 김성근, 심미령, 오초롱, 정상화의 에너지로 인해 저 멀리 2층에서 오페라글라스로 무대를 볼 법한 극장도, 누군가의 안락한 방도, 보석상이 즐비한 길거리도, 또 마차도 되어주었다.


실제로 공연을 관람한 후 박인혜의 인터뷰를 살펴보니, 그가 이처럼 ‘비어있는 무대’를 무대 연출에서 주목할 만한 포인트로 꼽고 있었다. 박인혜의 말에 따르면 비어있는 무대 안에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고 듣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판소리가 가장 잘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편 다섯 명의 인물이 맞춰 입고 나온 의상 또한 인상 깊었다. 격식을 차린 듯 레이스와 리본이 한껏 달렸으나 깔끔한 서양식 복식에 끈으로 앞을 여밀 수 있는 우리 한복의 저고리 형태를 섞은 듯한 모습이었는데, 마치 판소리와 프랑스 소설가 모파상의 이야기가 만난 것을 옷으로도 표현하는 듯했다.


 

보석 (1883)

랑탱은 아름다운 아내를 사랑하지만, 아내의 가짜 보석 수집이 못마땅하다.

급작스레 아내가 죽고 나서 랑탱은 아내의 가짜 보석을 팔려 하고

보석의 진실을 알게 되는데…

 

 

세 단편소설 중 첫 번째 이야기인 ‘보석’이 가장 인상 깊었다. 큰돈이 손에 쥐어지자 한순간에 사람의 마음이 바뀌어버린다는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 여전히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100년도 한참 전에 모파상이 했던 물질에 대한 비판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 아닐까. 

 

또 이 이야기가 재밌었던 점은 판소리하면 떠오르는 독특하고 재밌는 의성어, 의태어가 잘 살아 있었다는 점이다. ‘돈 세는 소리’와 ‘19만 6천 프랑’ 대목에서 돈 세는 행위를 표현했던 ‘찹찹’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귀에 맴도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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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까운 곳에서, 강산이 열댓 번 흘러간 후에,

니와 같고 내와 같은 한 여자가 목청 높여 전해주는 짧은 이야기."

 

 

각색, 연출 및 음악감독부터 작창까지 맡은 소리꾼 박인혜는 판소리를 도구로 창작을 이어가며, 늘 많은 사람에게 판소리가 얼마나 넓은 품을 가졌는지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말한다. 그의 바람과 같이 또 한 사람이 판소리의 너른 품에 빠지게 되었다. 

 

사실 판소리하면 공연 시간이 길고, 과거의 어투를 사용하여 조금은 알아듣기 어려워 접근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인식이 조금 있었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이러한 편견을 단번에 깨버렸다. 박인혜는 모파상을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짤막한 이야기로 90분을 꽉 채웠다. 


[판소리 쑛스토리 - 모파상篇]은 세 편의 이야기가 전환될 때마다 앞 이야기를 미련 없이 ‘훌훌’ 털어버리고, 그 어떤 ‘의심도 없이’ 소리꾼의 말에 귀 기울이며 즐길 수 있는 공연이었다.

 

 

[유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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