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의 비극 속에서 빛을 발하는 연대와 단결의 힘 – 책 '원청'

대격변기 속, 닿을 수 없는 미지의 도시를 찾아 헤매는 인간의 여정
글 입력 2023.01.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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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인생>, <허삼관 매혈기>를 통해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위화’가 8년 만에 신작 <원청>으로 돌아왔다. 원청은 위화가 쓴 첫 전기 소설로서, 청나라가 저물고 중화민국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하는 1900년대 초반 대격변기를 배경으로 한다.


위화는 한 시대가 저물고 새 시대가 떠오르는 근대 중국의 혼란스러운 신해혁명기를 비추며, 전쟁이 불러온 환란과 자연재해 등으로 어질러진 난세 속 고통받는 평범한 개인들을 조명한다. 

 

 

*

본 글은 책 ‘원청’의 내용 및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원청>의 주인공 ‘린샹푸’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그가 고작 다섯 살일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그가 열아홉이 됐을 때는 어머니마저 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홀로 외롭게 자랐지만 어릴 적부터 부지런히 학문을 익히고 농사일과 목수 일을 성실히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만나게 된 한 여자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자신들을 남매라고 소개한 ‘아창’과 그의 여동생 ‘샤오메이’는 린샹푸의 집에 찾아와 하룻밤만 재워줄 수 있냐고 부탁한다. 부탁을 승낙한 그는 갈 곳 없는 샤오메이에게 호의를 베풀어 집에서 지내게 한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고요하기만 했던 넓은 집에서 몇 년 동안 쓰지 않았던 베틀 소리가 샤오메이에 의해 울려 퍼지는 것을 보며 마음이 동한다. 그렇게 둘은 사랑에 빠지고 그 결실로 딸 ‘린바이자’를 낳게 되지만, 한 계절이 지나자 샤오메이는 떠난 아창을 찾기 위해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춘다. 


린샹푸는 샤오메이를 원망했지만 죽을 만큼 괴로울 때도 자신을 웃게 만드는 딸의 존재가 있었기에 떠나간 그녀를 찾아야만 했다. 그는 며칠 내내 남하하며 샤오메이가 고향이라고 말했던 도시 ‘원청’을 찾아 수소문했지만, 원청과 샤오메이의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엄동설한 속, 딸을 두 손과 포대기로 감싼 채 온갖 고생을 하며 방황하던 린샹푸는 우연히 ‘시진’이라는 마을을 만나게 된다. 아창과 샤오메이가 묘사했던 원청과 동일한 마을의 모습, 그리고 남매와 말투가 똑같은 사람들을 보며 린샹푸는 곧 원청이 시진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결국 딸과 함께 그 마을에 정착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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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에 군락을 이뤄 모여 살던 이들은 천재지변과 전쟁의 환란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회오리바람의 굉음과 엄청난 폭설에 버티지 못한 작은 집들의 파편이 시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집 대문이 망가지거나 지붕의 기와가 뜯어진 일 또한 흔했으며 재해로 인해 가족의 목숨을 잃고 남겨진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그럼에도 시진은 공동체였기에 재해로 인한 어려움을 함께 이겨나가고자 했다. 목공에 소질이 있는 사람들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망가진 곳을 고치고, 지위가 있는 인물들은 시진의 평안을 기원하면서 믿음을 담아 천제를 올리고 폭설이 멈추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지극히도 평범하지만 따뜻하고 다정한 공동체의 모습이었다.


수많은 이들의 일상이 망가졌음에도 작중 인물들은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각자가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린샹푸 또한 ‘천융량’이라는 벗을 만난 후 자신의 부와 목공 실력을 활용해서, 그와 함께 마을의 시설을 수리해 주러 다니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이방인이었지만 린바이자를 위해 그곳에서 살 길을 찾으려 했고, 천융량의 자식들과 함께 딸에게 글 공부도 시키며 평범한 일상을 찾아가는 듯했다. 


그런데, 시기가 시기인지라 시진에는 또 다른 위기가 닥쳤다. 청나라가 무너진 뒤 전란이 그치지 않아 토비가 주변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약탈, 방화, 강간, 인질 납치, 고문, 심지어는 살인까지 아무렇지 않게 일삼는 토비의 잔인한 만행으로 인해 자연재해를 가까스로 극복했던 공동체는 다시 한번 무너지게 된다.


토비의 존재와 전쟁의 공포는 시진의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두려움을 입혔다. 토비의 야만스러운 행위뿐만 아니라 북양군과 국민혁명군의 교전 또한 끊이지 않았다. 조금만 큰 소리가 나도 토비의 침입이라고 생각해 겁에 질려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거나, 토비에게 인질로 잡힌 가족을 구하러 가다가 교전 상황에 휘말려 목숨을 잃게 되는 이들이 끊임없이 생겨났다.


연약한 개인이 제어할 수 없는 역사의 광풍과 외부의 재해는 그렇게 공동체와 인간의 삶을 갈가리 부서뜨렸다. 평범한 개인들은 대장간, 목공소, 강습소 등 생계유지를 위해 평생 해왔던 일을 포기하고, 민병단에 지원해 총을 들고 전쟁터로 떠밀려 나갔다. 그렇게 사회와 역사의 거친 급류는 평범한 인간들의 평범한 일상을 무너뜨렸다.


곁의 소중한 사람들을 억울한 죽음으로 떠나보낸 이, 전쟁으로 인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 인질로 잡혀갔다가 귀가 잘려 더 이상 동서남북을 구분할 수도 없고 몸이 기우는 걸 막을 수도 없게 된 이. 이 모두가 길을 잃었지만, 그저 견디며 삶을 이어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결국 그들은 방향도 미래도 모른 채 계속 전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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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은 비극적인 서사를 통해 난세에 고통받는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그린다. 인간은 광활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저 정해진 운명을 따라 휘둘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일까. 인생이 망가지고 공동체가 위협받는 순간에도 그저 상처 입고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것일까. 책장을 넘기면서 뇌리에 비관적인 생각이 스쳐가는 순간을 여러 번 맞이했다.


그럴 때마다 시진 곳곳에 자리한 사랑, 연대, 그리고 단결이 비관과 낙망을 지우고 희망과 믿음을 가져도 괜찮다고 소리쳤다. 전쟁으로부터 가족과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랑의 힘과, 수없는 위협에도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면서 역경과 고난 속에서 빛을 발하는 건 결국 ‘연대’임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린샹푸는 그토록 찾던 원청에 다다르지는 못했지만 시진이라는 공동체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자식들을 키우고, 희로애락의 순간들을 공유하며 그들과 동지가 됐다. 동지들과 함께 민병단을 꾸려 토비를 무너뜨리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하며 다시 고향의 땅으로 돌아가 묻히게 된다.


이 모든 게 린샹푸가 타고난 운명이었을지, 아니면 가족에 대한 사랑과 연대의 힘으로 정해진 운명을 바꿔서 일어난 일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여정을 숨죽여 따라가면서 인간을 향한 믿음과 역경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시진 사람들은 ‘팔자는 전생에 결정된다’, ‘운명은 예측할 수 없지만 모든 게 정해져 있을 뿐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체념하거나 악에 순응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저항했다. 작중 인물들처럼 어쩌면 정해져 있을지도 모르는 운명을 받아들인 채 무너지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하면서, 가족애와 동지애, 그리고 삶의 터전을 되찾고자 하는 꿈을 동력 삼아 저항하고 다시 일어서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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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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