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오네스코 - 의자① [도서/문학]

외젠 이오네스코의 「의자」에 관하여①
글 입력 2023.01.1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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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4월 22일 랑크리Lancry 극장에서 초연된 외젠 이오네스코(Eugene Ionesco, 1909~1994)의 작품, 《의자:Les Chaises》.

 

언제나 그렇듯 이 실험적이고 새로운 작품은 대중, 평론가들의 혹독한 비판을 마주해야 했다. 초연 당시 분노한 관객들이 입장료 환불을 요구하고 위협을 느낀 출연진이 뒷문으로 도망가는 상황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한 달 뒤,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극작가 아르튀르 아다모프는 <예술>지에 이오네스코를 지지하며 쥘 쉬페르빌, 장푸이용, 사뮈엘 베케트 등이 서명한 <『의자들』의 옹호>라는 서명서를 발표한다. 이후 이 작품은 1956년 2월 자크 모클레르가 샹젤리제 스튜디오에서 재연한 이후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었으며 이오네스코의 걸작 중 하나로 명성을 얻게 된다.

 

당시 극을 본 관객들은 왜 분노했으며, 그 극의 어떤 특별한 점이 다른 극작가들로 하여금 이오네스코를 옹호하게 만들었을까. 이오네스코의 문제작, 《의자:Les Chaises》을 살펴보며 나름의 해석과 의미(무의미)를 길어내 보고자 한다.

 

 

 

의자 : Les Cha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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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무대는 객석을 향한 원형의 벽과 열 개의 문, 두 개의 창문, 앞 무대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의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오네스코는 희곡 첫 페이지에 해당 그림을 지시문과 함께 넣어두었다.)

 

극은 노인(95세), 노파(94세)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과거 이야기를 되풀이하거나 성대모사를 하는 등 무료히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지친 노인은 어머니를 부르며 울기 시작하고, 노파는 지금은 자기가 엄마이고 아내라며 그를 어루만지며 위로한다.

 

이후 노파는 남편(노인)에게 인류에게 메시지를 공표해야 할 신성한 의무를 상기시키는데, 그 메시지는 인류를 구원하는 희망의 상징이다. 그들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학자, 사제, 숙박업자, 은행가, 경비원, 공무원, 황제 등 수많은 손님들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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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Chaises, Taiwan, 1982 

 

 

곧 손님들이 배가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하나둘씩 도착한다. 노부부는 의자를 가져다주기 위해 문으로 나갔다 들어오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초인종 소리가 연이어 울리고 손님들이 도착하지만 손님들은 보이지 않고 빈 의자들만 계속해서 무대에 쌓인다. 이 극에서 손님들은 두 노인에게는 물론 관객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들이다.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도 소리, 보트 소리, 초인종 소리, 움직임이 최고조에 달하자, 최후의 방문객인 ‘황제’가 등장하고 팡파르가 울려 퍼진다.

 

황제를 향한 노부부의 칭송과 한탄 이후, 노부부와 함께 유일하게 무대에 실존하는 인물인 ‘변사’가 등장한다. 노부부의 메시지를 대신 전해 줄 변사는 조용히 들어와 연단에 올라선다. 노부부는 변사에게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위대한 메시지를 맡겼기 때문에 자신들은 임무를 끝냈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황제 만세“를 외치고는 창문으로 몸을 던진다.

 

그러나 그들을 대언할 변사는 '귀머거리''벙어리'이다. 변사는 몇 마디 더듬거리며 칠판에 ‘앙주뺑 ANGEPAIN’(번역하면 천사빵)이라는 알 수 없는 단어를 끄적이더니, ‘안녕 ADIEU’이라는 단어를 두 번 쓰고는 머뭇거리며 불쾌한 듯 어두운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큰 문 쪽으로 유령처럼 걸어 나간다. 무대에는 의자들과 연단, 색종이와 색 테이프만이 남아 있다. 마침내 보이지 않는 군중 속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 속삭이는 소리, 쉿 하는 소리, 놀리는 기침 소리 등이 오래 지속되며 막이 내린다.

 

 

 

노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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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Chaises, Sorano Theater, Saison 16/17 

 

 

노파: 얘기나 해줘요. 그 얘기요. 그 재미있는.......

노인: 또요? ......됐어요..... 재미요? 또 하라고요?....... 같은 걸 갖고...... 재미라니. 매번 같은 걸 갖고 .......결혼하고 칠십오 년 동안, 매일 밤, 하루도 안 쉬고, 똑같은 얘기, 똑같은 사람 흉내, 똑같은 달 흉내......언제나 똑같은......제발 다른 얘기 좀......

노파: 그래도 안 지루해요. 당신 얘긴데요. 재미있죠.

노인: 다 아는 얘기잖아요.

노파: 금방 다 잊어버리잖아요......밤마다 정신을 새롭게 하니까........매일 청소를 한다고요. 일부러......당신을 위해서, 매일 밤, 새로워지는 거예요. 자, 하세요.

노인: 정 그럼.

노파: 자, 당신 얘기자......동시에 내 얘기죠. 하세요. 우리는.......

노인: 우리는..........여보........

노파: 우리는..........여보........

노인: 우리는 커다란 창살 문 앞에 도착했어요. 흠뻑 젖은 채, 뼛속까지 꽁꽁 언 채, 몇 시간째, 아니, 며칠째, 아니, 몇 주일째.......

「의자」,120p


극에 등장하는 노부부(노인과 노파)는 실패와 굴욕의 긴 세월을 보내며 권태에 빠져 사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외딴섬은 노부부의 고독이 상징화된 공간이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단절되어 친구도 없이 밀폐된 방에서 인생을 결산하며 과거에 대한 회한, 사랑에 대한 향수 등을 풀어놓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노인은 아내를 그리스 전설에 나오는 아시리아 여왕의 이름인 ‘세미라미스’라고 부르고 노파는 남편을 장군이자 대장부로 칭한다. 이는 그들이 처한 ‘지금 여기’의 비참한 상황을 뒤로하고 타인으로서 살아가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유명이 부재한 그들은 쉽게 타자들의 세계에 입장해 타인이 될 수 있다.

 

이들의 대화에서 특별한 내용이라곤 찾아볼 수 있다. 마치 이전 연극 <대머리 여가수>에서처럼 무의미한 일상의 편린들을 나열하거나, 과거에 대한 넋두리만을 반복할 뿐이다.

 

대화 속에서 노인은 아기처럼 울며 엄마를 잃어버린 고아의 모습을 보인다. 노인과 노파에게는 각각 그들만의 죄의식이 있는데, 먼저 노인에게는 과거 춤추러 가기 위해 죽어가는 어머니를 방치한 것이고, 노파에게는 아들의 떠남을 만류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 모두는 책임이 없는 혹은, 어찌할 수 없는 죽음과 연결되는 복잡하고도 본래적인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는 여기서 두 늙은이의 비참한 삶의 모습을 통해 시간과 죽음의 함수를 체험할 것이며, 허무와 죽음의 두려움이 어린시절의 노스탤지어에 어두움으로 채색됨을 본다. (외젠 이오네스코, 『노트와 반노트』-이오네스코의 작품세계)

 

 

이오네스코 - 의자② 편으로 이어집니다.

 

참고 문헌

김찬자, 『이오네스코 읽기』, 세창출판사, 2015

외젠 이오네스코, 『대머리 여가수』, 민음사, 2003

외젠 이오네스코, 『노트와 반노트』, 동문선, 2003

 

 

[박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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