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프랑스 미술관을 산책하는 시간 –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프랑스 편)

글 입력 2023.01.0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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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에는 ‘모나리자 집단’이라 불리는 이들이 있다. 관람객의 네 명 중 한 명은 ‘모나리자’만 보고 박물관을 나온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유명하다고 해서 어렵게 방문했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봐야 할지 막막한 이들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닐 것 같다.


‘모나리자 집단’이 되긴 싫지만 미술관을 생각하면 막막하기부터 한 사람을 위해,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프랑스편』은 미술관 산책을 제안한다. 2012년부터 6년간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에서 도슨트로 활동한 이창용 작가가 그 산책에 동행해 각 미술관의 역사와 그 미술관에서 주목해 볼 만한 작품은 무엇인지 설명해준다.

 

 

 

서양미술사가 흐르는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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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미술관 산책의 첫 순서는 역시 루브르 박물관이다. 프랑스대혁명 직후이던 1793년, 궁전이던 루브르는 시민을 위한 미술관으로 재탄생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루브르는 2019년 기준 약 60만 점의 작품을 소장 중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로 ‘모나리자’만 보고 나올 수도, 1박 2일 내내 돌아볼 수도 있는 이곳에서 반나절 정도 돌아보는 것을 목표로 미술관 산책을 시작해본다. 


출발 지점은 ‘그랑 갤러리’라 불리는 이탈리아 회화관이다. 무려 457미터 길이의 통로를 걸으며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 ‘노인과 손자’와 같이 초기 르네상스 작품에서 시작해 르네상스 시대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다빈치의 작품까지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저자는 ‘암굴의 성모’, ‘성안나와 성모자’ 등 다빈치의 작품을 설명하는 데 특히 공을 들인다. ‘모나리자’로만 다빈치를 알고 있다면, 그의 그림이 어떻게 서양미술사에서 한 획을 그었는지 배울 수 있는 기회다. 


물론 그 유명한 ‘모나리자’ 이야기 역시 빠뜨릴 수 없다. 스푸마토 기법, 대기 원근법 등 다빈치의 회화법이 총동원되었다는 설명을 듣고 나면 너무 흔해서 특별한 감흥이 없던 ‘모나리자’가 새롭게 보인다. 책을 읽으며 우리가 아는 ‘모나리자’가 후대에 실수로 노란색 바니쉬를 칠한 모습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루브르 박물관을 산책하며 만나는 또 다른 흥미로운 화가 중 한 명은 자크 루이 다비드이다. 신고전주의의 중심에서 미술계를 이끌었던 그는 나폴레옹 시대와 흥망성쇠를 같이한 작가이기도 하다. 로베스피에르의 혁명정부에서 인기를 끌며 정치 화가로서 활동을 시작해 부와 명예를 쌓는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는 10개월 만에 무너지고 다비드 역시 수감 생활을 한다. 


그 이후 이 화가의 행보가 흥미롭다. 새롭게 들어선 나폴레옹 정부가 그의 그림 실력을 인정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나폴레옹에게 충성하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하면 흔히 떠올리는 백마를 타고 붉은 옷을 걸친 모습 역시 다비드의 작품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운 화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부와 권력을 좇으며 산 화가의 이야기는 현실적이라서 어쩐지 더 기억에 남았다.

 

 

 

새 시대를 연 인상파 70년을 한눈에, 오르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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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순서인 오르세 미술관은 본래 기차역이었던 곳을 1986년 프랑스박물관협회의 제안으로 미술관으로 개관한 곳이다. 서양 미술사 전체를 망라하는 루브르에 비하면 그 역사도 짧고 규모도 아담하지만 마네, 모네, 드가, 르누아르 등 19세기 인상주의 작가들을 좋아한다면 오히려 루브르보다 오르세에서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오르세 미술관은 1848년에서 1914년 사이의 작품만 전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인상주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인상주의’라는 말도, 인상파 작가들의 그림도 낯설기만 하던 시절 미술계를 뒤집은 그림이 있으니 바로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이다. 이 작품은 저자가 오르세 미술관에서 근무하던 시절 그의 동료가 미술관에 불이 나면 가장 먼저 대피시킬 그림으로 꼽은 바 있다고 한다. 그림만 봐서는 이 작품이 왜 그렇게까지 가치 있는 작품으로 꼽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저자는 당대 시대적 배경과 그림의 맥락을 차근차근 설명함으로써 독자에게 이 작품의 가치를 알린다. 대담한 주제 선정, 원근법을 무시하는 그림, 르네상스 시대 걸작의 패러디 요소는 왜 ‘풀밭 위의 점심’이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꼽히는지 충분히 납득하게 만든다.


모네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초창기 인상파 작가들은 이른바 ‘아카데미즘 미술’ 세력으로부터 혹평을 받으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애초에 ‘인상주의’라는 이름조차 모네의 ‘인상, 해돋이’를 본 평론가가 그 그림을 비꼬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어느 시대든 핍박을 당하는 이들은 서로 모이게 되는 듯하다. 인상파 작가들은 마네를 중심으로 교류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바티뇰 그룹’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름이 알려진 다른 작가도 좋지만 유독 눈길이 갔던 건 바티뇰 그룹의 일원 중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화가 프레데릭 바지유의 작품이었다. 이 책 표지에 사용된 그림을 그린 사람이기도 하다. 바지유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서 경제적 여유가 있었기에 자신의 작품 활동에 열정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모네, 르누아르 등 우리가 이름을 아는 작가들의 무명 시절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다른 작가들이 이름을 알리는 걸 도왔지만 정작 본인은 보불전쟁에 나가 30세도 되기 전 사망하고 말았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모네의 마지막 열정이 잠든 오랑주 미술관, ‘지옥문’을 만나는 로댕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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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에서 길게는 몇백 년, 짧게는 몇십 년을 건너뛰며 여러 작가의 그림을 만나왔다면, 오랑주 미술관과 로댕 미술관에서는 한 작가의 작품을 깊게 감상할 수 있다.


오랑주 미술관이 있는 시골 마을 지베르니는 모네가 43년간 머물렀던 곳으로, 곳곳에 모네의 흔적이 가득하다. 꽃을 사랑하고 정원을 아꼈던 그는 미술계에서 자리 잡은 후 큰 정원을 만들어 가꾸었다. 이곳에서는 생전의 그를 떠올리게 하는 정원과 함께 모네의 인생 마지막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수련 대장식화’를 만나볼 수 있다. 

 

모네가 처음부터 그림 때문에 정원을 가꿨던 건 아니었지만 1899년 이후로 수련을 주제로 한 작품만 250여 점을 남겼고, 마지막에는 높이 2m, 넓이 91m에 이르는 ‘수련 대장식화’를 남긴 것을 보면 그에게 이 정원이 어떤 의미였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무명시절을 지나며 인상파의 문을 열어젖히고 화가로서 부와 명예를 거머쥔 작가가 말년에 가족을 잃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았다는 사실이 평화로워 보이는 정원과 대조적으로 다가온다.


이전까지 산책한 미술관이 회화 중심이었다면, 로댕 미술관은 로댕의 조소 작품으로 가득하다. 20년간의 무명 시절부터 전성기를 맞아 활발히 활동하고, 성공한 조각가로 인생을 마치기까지 그의 손길이 닿은 ‘생각하는 사람’, ‘지옥문’, ‘칼레의 시민들’ 등 여러 작품을 살펴본다. 로댕 미술관이지만 그의 조수이자 뮤즈였던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 또한 만나볼 수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개인적으로는 짧게 다뤄진 카미유 클로델에게 좀 더 관심이 갔다. 

 

*

 

짧고도 길었던 미술관 산책을 마치고 나면 그저 ‘명작’이라고만 생각했던 작품들이 좀 더 친숙해지고, 막막하던 미술관도 더 가깝게 느껴진다. 저자는 미술관 산책에 앞서 프롤로그에서 좋은 작품은 자기 스스로 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산책 역시 추천코스를 알려줬을 뿐, 미술관을 산책하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다. 이 길을 벗어나 자신만의 새로운 코스를 개척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다 읽었다면 이제 가이드와 헤어져 나만의 미술관 산책을 시작할 시간이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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