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했던 모든 알바에게 [문화 전반]

알바에 대한 고찰
글 입력 2023.01.0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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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마지막으로 단기 근무하러 카페에 갔다 왔다. 오늘이 마지막인 이유는 운이 좋게 원하는 직무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게 되어서다. 당분간은 취업 준비를 하는 와중에 시간까지 쪼개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된다.

 

언제부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내 일상이 되었다. 학비를 번다거나 빚을 갚는다거나 하는 절실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나 스스로 돈을 모으고 쓰고 싶었기 때문에 시작한 활동이었다. 다른 지역에 있는 학교와 고향을 왔다갔다 하며 몇 년을 주말이 없는 삶을 보냈다.

 

종류도 처음엔 다양했다. 뷔페, 음식점, 포장 단기 아르바이트, 그리고 카페에 정착하기까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좋아하는 분야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 가게에서 오랜 기간 정착해 일을 하며 안정을 얻기도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는 나와 출신과 배경과 나이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더 큰 세상을 바라보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모로 얻는 게 많았던 것 같다.

 

오늘은 아르바이트에 관한 이야기다.

 

 

 

첫 알바


 

알바의 시작은 수능이 끝난 후 친구를 따라서 들어간 뷔페였다. 왜 뷔페였냐면 당시엔 나는 아직 성인이 아니었고, 학생을 받아주는 데는 그곳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수능이 끝나고 교실에서 잠만 자는 게 너무 지루했던 나는 성인이 되고 여기저기 빨빨 돌아다닐 돈을 마련하기 위해 별생각 없이 친구를 따라갔던 것 같다.

 

그렇다면 뷔페에서는 왜 나를 고용했을까? 당시는 연말연시였다. 송년회나 신년회라는 이런저런 연회 자리가 많을 때였고, 무엇보다도 코로나라는 질병의 존재조차 몰랐던 시기였기 때문에 크고 작은 모임을 뷔페에서 많이 하던 때였다. 당시 일손은 채워도 채워도 모자랐고 아무것도 모르는 고등학생이어도 그릇 치우는 일만 하면 됐기 때문에 무조건 많이 고용하던 시기였다.

 

말은 이렇게 해도 일은 꼴랑 한 달 정도 했을 거다. 기억하기로는 그보다도 더 짧은 기간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기억에 가장 남는 아르바이트 중 하나다. 무엇보다도 첫 아르바이트였기 때문이고, 뷔페 사장님이 무덤덤한 듯하면서도 어린 직원들을 잘 챙겨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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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 암흑기


 

첫 알바를 그만두고는 음식점 알바를 하게 됐다. 양꼬치 집. 처음으로 아르바이트 공고를 발견하고 지원해서 일하게 된 곳이다. 고깃집이고 숯불을 직접 놓아야 하는 곳이었지만 사장님 부부가 정말 잘 해주셨고 가끔 나는 아직까지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을 중국집 음식을 해 주셔서 좋아했던 곳이다.

 

그렇게 좋아하던 곳을 삼 주 만에 그만두었다. 출근길에 넘어져 발목을 다쳤기 때문이다. 한동안 마땅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을 때는 꿈에도 나올 정도로 아쉬워했던 곳이다.

 

이때부터 무언가 꼬이기 시작한 건지 모르겠지만 2018년도에 처음으로 카페에 발을 들이기 전까진 한 곳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전부 음식점이었다. 유명 고깃집, 그리고 장어집.

 

고깃집 역시 한 달을 채우지 못했다. 방학 때 잠깐 하려고 지원한 아르바이트였는데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간 것이었는지 생각보다 힘든 노동의 강도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가 담당한 시간은 점심 피크 시간이었다. 어찌나 맛있는 고기였는지 사람들이 무더기로 들어왔다 나가길 반복했다.

 

문제는 내가 그때 일머리가 아직 없었던 시기라는 것이다. 해봤던 일은 고작 접시 나르기와 숯불 옮기기 3주 정도였다. 그런 내가 사장님 눈에 차지 않았나 보다. 사장님은 내가 컵을 잡는 방법까지 마음에 들지 않아 하셨다. 3주 차가 되고 사장님에게 여전히 된통 혼나자 손님을 응대하면서도 눈물이 났다. 그렇게 고깃집 아르바이트는 그만두게 되었다.

 

고깃집 알바의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내가 살던 집에서 버스를 타고 넉넉히 삼십 분은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도 나를 힘들게 했다. 내가 사는 도시는 버스가 불친절하기로 소문이 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나는 항상 일찍 출발하면서도 일에 늦지는 않을지 걱정해야만 했다. 그래서 다음에 구한 알바가 집에서 3분 거리에 있는 장어구이 집이었다.

 

장어집에서는 4개월 정도 일했다. 그곳에서의 시간이 어땠는지 물어본다면 크게 할 말이 없다. 우선 손님을 경쟁사에 빼앗기고 있던 영세한 사업장이었고, 스끼다시와 장어구이, 마지막에 매운탕이 나가는 복잡한 메뉴여서 여러 번 서빙해야하는 곳이었던 것 정도가 기억난다. 그곳 사장님 부부는 장년에 가까웠는데, 정말 무뚝뚝하셔서 처음엔 항상 화가 나신 줄 알았다.

 

그 집을 그만두게 된 건 정말 어이없는 이유였다. 사장님 내외의 조카가 일을 해야하니 이번 주까지만 일해달라는 말을 들었을 땐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렇게 나는 일을 그만두었다. 이제는 음식점 냄새가 너무 싫었다. 집에서 긴박하게 출발해 오 분 거리를 헐레벌떡 뛰어 출근하는 것도 지겨웠다.

 

그렇게 카페 알바를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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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와 팬데믹


 

내가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2018년은 코로나와 무관한 시기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2018년도에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다음 해 2월까지 일하다가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1년 뒤에 다시 돌아와 코로나와 함께 카페 아르바이트를 다시 하게 되었다. 혹시나 의문을 가질 사람들을 위해 설명했다.

 

나는 카페의 성수기인 8월에 신입으로 일을 시작했고, 게다가 마감 담당이었다. (마감은 오픈이나 미들보다 할 일이 더 많다) 우연히 중학교 동창과 같은 카페에서 일하게 되기도 했고, 내가 들어가자마자 직원들 사이의 갈등으로 많은 인원이 교체되기도 했고, 매일 같이 다 청소한 아이스크림 기기를 다시 작동해 주면 안 되냐는 손님, 왜 플라스틱 컵을 더 줄 수 없느냐는 손님과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그래도 나는 그 카페가 좋았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과 잘 맞았던 탓도 있겠지만, 나는 그곳의 사장님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마 내가 만났던 아르바이트 사장님 중에 가장 개성 있는 분이었을 것이다. 거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체구가 크셨는데, 그에 비해 차는 아주 작았다. 나는 차에 관심이 없어 종류는 잘 모르지만 분명 다른 승용차보다 훨씬 비쌀 게 분명한 그런 차.

 

사장님은 프랜차이즈 카페 점포를 여러 군데 운영하면서, 본업은 강사인 분이셨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셔서 그런지 성실하고 자기 할 일도 잘하는 알바를 좋아하셨다. 어느 정도였냐면 학기 학점이 4.0 이상이거나 토익 점수를 어느 정도 이상 맞으면 상여금을 월급에 포함하기까지 하셨다. 알바생 중에 대학생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다.

 

2020년도에 같은 카페로 돌아오고 나서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코로나의 탓이 컸다. 가장 고되면서도 주된 일이 된 것은 배달 업무였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커피를 팔았던 우리 가게에는 한 번에 스무 잔, 서른 잔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 이렇게 비대면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나도 처음이어서 실수도 잦았다. 빨대가 없어요, 음료가 다 샜어요, 음료가 잘못 왔어요...

 

매일매일을 전화로 사과하고 재촉하는 손님을 진정시켜야 했다. '내 눈앞에서 보이지 않는 일'이 얼마나 하찮고 쉬운 일로 전락하는지 알게 되면서 비대면 서비스와 플랫폼에 대한 회의도 느끼게 되었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팬데믹 기간 내내 남은 기억이라곤 썩 유쾌한 것들이 아니다.

 

팬데믹이 '알바 시장'에 일으킨 변화는 비단 배달뿐만이 아니다. 시장 구조 자체도 바꾸어 버렸다.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건, 알바'생'이 더 이상 학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상하게 내가 다녔던 곳들(나는 잠시 다른 카페 두 곳에서도 일했었다)은 전부 아르바이트생이 나 보다 나이가 많았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는 이십대 중반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웬만하면 갓 스무 살이거나 이십대 초반인 경우가 많았고, 대학교 졸업반이 될 즈음인 스물세 살부터는 알바의 세계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한국에 돌아와 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가장 걱정했던 점은 내가 더 이상 어리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제 이십대 중반에 접어드는 나는 어떻게 일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나 보다 어린 이십대 알바생을 찾는 게 나보다 서너 살은 많은 언니 오빠들을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어딜 가든 막내가 되는 기이한 경험이었다.

 

또 희한했던 일은, 오히려 학생 알바생은 이십대보다 자주 보였다는 것이다. 사실 여성가족부에서 2021년도에 조사한 청소년 아르바이트 경험 추이를 보면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청소년의 비율은 코로나의 영향으로 기존 10%대를 유지하던 것이 5%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나의 체감상 알바 시장에는 극단적으로 청소년 혹은 이십대 중후반 인력이 자주 보이는 것 같다. 같은 조사에서 일반고 학생의 아르바이트 경험 비율(4.9%)보다 특성화고 학생 아르바이트 경험 비중이 훨씬 더 높은 것(21.9%)을 보면 계층의 양극화가 팬데믹 시대를 맞아 더 가시화된 것은 아닌가 추측해본다. (2021년 기준 특성화고의 저소득층 비율이 일반고보다 두 배가 넘는다)

 

 

 

한국 아르바이트 시장의 분위기


 

최근 SNS를 떠도는 인상적인 게시글을 발견했다. '요즘 알바 구하기 힘든 이유'라는 제목이었다. 처음에 나는 알바의 입장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이유로 생각하고 게시글을 클릭했지만, 내용은 달랐다. 고용주가 아르바이트 근무자를 구하기 어려운 이유를 알바생의 입장에서 적은 내용이었다. 요점은 '일은 힘들고 시간은 적고(쪼개기 근무) 급여와 대우가 좋지 않다'는 말이었다. 이 글을 보고 많은 생각에 빠졌다.

 

한국의 알바 시장은 그 속에서 일하는 일개 개인이 보기에도 확실히 빠르게 변하고 있다. 자영업자의 입장에서 알바 시장이 축소되는 이유를 분석한 글을 봤는데, '의지만 있다면 최저임금을 웃도는 단시간 근로가 많이 늘어남'이라는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르바이트 시장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이 배달을 비롯한 비대면 서비스 플랫폼이라는 의견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재택, 유연근무 등의 키워드가 지배한 팬데믹 이후의 세상은 노동 시장에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테크 대기업은 주4일제를 시도하고 있고, 팬데믹에 상관 없이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해 은근히 화제가 됐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이십대 초중반을 중심으로 하는 구직자의 업무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스케줄을 유동적으로 짤 수 있는 직종에서 근무하는 경우 꼭 주말 이틀에 쉬는 것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원한다면 평일 이틀을 골라 쉴 수 있고, 어떤 때는 한가하고 각종 관공서 업무를 부담 없이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을 때도 있다.

 

정규직뿐만이 아니다. 아르바이트 역시 평일/주말로 나뉘던 관행이 사라지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물가가 오르고 자영업을 하기 위한 조건들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 탓이다. 급여 지출을 줄이기 위해 주 15시간 이상 근무하는 직원의 수를 줄이기 위한 꼼수가 작용한 것이지만, 알바생의 입장에서도 반드시 한 곳에서 오래 근무할 필요 없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나누어서 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위에서 말한 대로 평일에 쉴 수도 있고, 한 곳에서 일을 그만두게 된다고 해도 다른 곳에서 일하며 여유롭게 구직활동을 진행할 수도 있다. 올해는 나도 이런 유행(?)을 따라 취업준비를 하며 두 곳에서 주 5일간 근무하며 평일에 쉬는 삶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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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알바를 하든 말든 알 바?


 

엄밀히 말하면 나는 취업 상태가 아니다. 계약 기간이 지난 후에는 다시 구직활동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고용 불안정 상태. 나는 언제 다시 실업자가 될지 모른다. 원하는 분야에서 잠시 일을 하게된 일은 기쁘지만, 아직 불확실한 미래가 남아있기에 마음 놓고 기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야 다시 실업자가 되어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길어지는 구직생활에 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올해 조사에 따르면 구직활동을 진행하지 않고 있는 니트족의 비중이 6년 사이에 54%나 증가했다고 한다. 니트족은 일할 의지조차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한다. 이들이 집에서 컴퓨터만 하고 있을지, 생계를 위해 수많은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통계도 있다. 이미 직장이 있는 청년 중에서도 생활고로 부업을 뛰는 사람의 비율이 증가했다. 2016년에 비해 40퍼센트 정도 증가했다. 가장 많은 부업은 소셜 크리에이터와 배달업이었다. 실로 지금의 현상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통계다.

 

앞으로의 구직 활동과 소득에 관해 생각하면 너무 머리가 아프다. 이러나 저러나 나는 오늘은 알바생이었고 내일은 계약직이다. 내가 하는 일과 나의 모든 활동이 사회 현상과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더 이상 복잡한 생각은 말고 '(비)경제활동인구'의 한 사람으로써 내 앞에 주어진 일만 우적우적 해내야겠다.

 

 

[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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