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망한 성장도 구원이 될 수 있다면 - 약한 영웅 [드라마]

글 입력 2023.01.0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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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Over The Top)의 오리지널 시리즈가 대세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고, 티빙·애플TV·디즈니플러스 등 OTT의 후발 주자들도 오리지널 시리즈를 내세우고 있다. 오리지널 시리즈는 그 OTT 내에서만 볼 수 있기에 희소성이 있고, 드라마가 입소문을 타면 유료 가입자 수 증가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사업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이번에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가 대박을 쳤다. OTT 화제성 3주 연속 1위를 기록하는 것은 물론, 대만과 중국의 해외 채널에서도 큰 반응을 보였다. 작품은 바로 <약한 영웅>. 흔한 학원 액션물로 보이는 이 드라마가 어떻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학원물임에도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은 이 드라마의 차별점은 무엇인지 분석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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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기획



드라마 <약한 영웅>은 동일한 제목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이 있기에 기본적인 완성도가 보장되고, 웹툰 내용의 프리퀄 형식이라는 점에서 내용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아 기대감을 조성했다. 웹툰 독자들도 기본 시청 층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의 연출을 맡은 한준희 PD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학원물과 액션물은 그 장르적 특성으로도 수요가 있다. 특히 학원물의 경우, 탑 배우를 캐스팅하기 보다는 새로운 얼굴의 배우가 활약하면 더 신선함과 재미를 주는데, <약한 영웅>에서는 특히나 그 장점이 극대화되었다. 학원물의 주 타깃 연령층인 1020에게 친숙한 얼굴인 프로듀스 101 출신의 배우 박지훈과, 최근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고등학생 연기로 호평을 받았던 배우 최현욱을 중심으로 해 팬층의 확보를 바탕으로 신인 배우들의 열연이 빛났다.


또한 웹툰 <외모지상주의>, <최강전설 강해효> 등 학원물에서 일진 소재를 담은 경우는 흔하지만, <약한 영웅>에서는 각색을 통해 현실적인 문제점을 담은 기획으로 차별화를 두었다. 사회의 보호막 없이 어른의 불법적인 일에 허울로 가담할 수밖에 없는 가출 청소년, 최근 비트 코인·주식 등이 열풍을 일으키며 청소년에게도 접근성이 높아진 무분별한 투자의 위험성과 나아가 불법 도박으로의 연결까지. 찌질한 캐릭터가 일진을 처단하는 단순한 내용이 아니었다. 보통 공부를 잘하면 두뇌 싸움이 주가 되는 캐릭터인데, 주인공 시은은 두뇌 싸움뿐 아니라 진짜 싸움도 잘하는 캐릭터라는 점도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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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게 구현된 서사와 캐릭터



학원물의 가장 주된 서사는 ‘성장 서사’이다. <약한 영웅> 역시 시은, 수호, 범석이 공공의 적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대하는 과정을 통해 관계의 성장을 보여준다. 특히 마음 터놓을 사람이 없었던 시은이 친구를 사귀며 소중한 것을 지키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성장 서사를 보여준다. 매일 학교에서는 이어폰을 끼고, 공부 외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에는 관심 없던 시은이, 비록 상상이지만 먼저 친구들에게 밥 먹으러 가자고 하는 마지막 화의 첫 장면은 마음을 찡하게 한다.


그러나 성장 서사뿐만 아니라 <약한 영웅>의 가장 주가 되는 서사는 구원 서사이다. 시은과 수호의 우정과 쌍방 구원 서사가 돋보인다. 일진들에게 ‘아무리 괴롭혀도 영혼이 다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던 시은이 울부짖게 하고, 학교에서는 자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수호가 남의 일에 참견하게 하는 둘의 서사. 서로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 성장했고, 서로였기에 성장할 수 있었던. 서로가 약한 영웅이자 동시에 수호천사였던, 제목 <약한 영웅> 그 자체의 관계성은 시청자의 가슴과 마음을 울렸다.


그러나 서로를 지키기 위한 어리숙 하고 순수했던 감정은 오히려 화(禍)로 돌아왔다. 결국 서로를 지키기 위해 만들었던 비밀이 아이들을 해쳤기 때문.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화의 주된 시발점은 함께 나누었던 우정이었다. 초반에 시은·수호와 함께 우정을 나눈 범석이 일의 근원이었기 때문이다. 외부의 적이 있을 때는 아무리 열세에 몰린 상황이라도 의기투합을 통해 이겨내 견고하게 쌓아올렸던 이 셋의 세상은, 내부의 마찰 때문에 맥없이 무너졌다. 한때 함께 했던 범석이었기에 수호는 이성을 잃을 만큼 큰 배신감을 느꼈던 것이고, 범석이었기에 이렇게 집요하게 관계를 놓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이 악(惡)한 마음일지라도.


그러나 드라마를 애정 있게 본 그 누구도 쉽게 범석을 비난할 수 없다. 그래서 범석으로 인해 수호가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을 때에도, 드라마 속 시은조차 그를 때리지 못한다. 수호의 병원을 다녀온 시은이 학교에서 폭주하고, 마지막에 범석에게 주먹을 겨눌 때, 범석은 말한다.


 
“너는 나 이해해야지, 시은아.”
 


시은은 싸늘한 눈으로 대답한다.


 
“어. 이해해. 그러니까 너도 나 이해해.”
 


그리고 주먹을 치켜들지만, 끝내 시은은 범석을 때리지 못한다. 정말로 범석을 이해하기에.


시은, 수호, 범석은 각자의 이유로 학교에서 아웃사이더였고, 그랬기에 쉽게 친해질 수 있었지만, 수호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할머니에게서 사랑받은 구김 없는 아이였다. SNS 팔로워도 많은, 오히려 또래에게 선망의 요소가 있는 캐릭터였다. 그러나 시은과 범석은 고독한 아이들이었다. 제대로 된 가족이 없어 외로움이라는 결핍이 생겼고, 그 결핍은 학교에서도 이어졌다. 그 외로움, 고독함, 그 감정에서 비롯되는 아픔과 상처. 그것을 시은도 공감하기에, 드라마 내에서조차 범석에게는 폭력으로 응징하지 못한다.


동등하게 보였던 세 명의 동급생 사이에서 조금씩 어긋나는 10대의 감정과 그로 인한 불안정성을 세심하게 표현했고, 이를 메인 서사로 이끌어나간 점이 인상적이었다. 친구를 만들 이유를 느끼지 못한 시은은 친구 대신 맞으러 가는 아이가 되고, 선을 지킬 줄 알던 수호가 마지막에 이성을 잃고 10대의 미숙함을 드러내고, 친구였던 범석이 작중 최고 빌런으로 거듭나는데도 세 캐릭터나 관계성에서 모두 일관성이 깨어지지 않았다. 섬세하게 만들어진 캐릭터를 바탕으로 학원 액션물이라는 장르에서 관계성의 깊이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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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감 생생한 연출



<약한 영웅>은 고등학생 및 학교를 배경으로 하며 현실감 있는 연출로 몰입을 높였다. 교실 내에서 액션 장면에서는 소화기, 사물함, 커튼 등 학교의 소품을 적절히 이용해 실감 나는 연출을 보였다. 또한, 주인공 시은이 과학 시간에 배우는 ‘○○의 법칙’을 통해 싸우는 연출은 전교 1등이라는 시은의 캐릭터 성을 부각함과 동시에 학원물 장르를 살렸다.

 

시은의 얼굴을 1인칭 시점으로 화면에 담아 시은이 펜을 딸깍거리는 연출로 분위기를 조이거나, 영빈 패거리 혹은 1화 마지막 장면에서 수호에게 달려들 때의 구도 역시 밀도를 높였다. 1인칭 화면의 연출은 5화 마지막 범석이 클럽에서 혼자 생각하는 연출에서도 나오는데, 이 연출이 둘에게서만 발견되는 것도 결국 혼자만의 외로움에 갇혀 있던 둘의 공통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흥미로운 액션뿐만 아니라 학교 외부 액션 장면에서는 그 배경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든다. 물론 학교 내부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벗어난 학교 외부의 액션 연출은 더욱 화려하다. 장소에 놓인 물건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여 세밀하게 계산된 액션 장면이라고 느끼게끔 한다.

 

그런데 소품보다 더 계산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장소이다. 시은, 수호, 범석이 가출팸과 싸우는 곳은 ‘유원지’이다. 어린아이들의 동심, 순수함 등을 대표하는 장소에서 보호받아야 할 미성년자들은 죽음의 위협을 느끼며 어른에게 폭력을 당한다. 명확한 대비이다. 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학생들에게 가장 최소한의 울타리가 되어야 할 학교에서 사정없는 폭력이 이루어진다. 사회의 보호망에 속하지 못한 미성년자들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소를 통해,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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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성장, 그 끝에서



드라마의 시은, 수호, 범석, 그리고 더 나아가 영이나 석대까지. 모두 성장했지만, 그 끝이 좋지는 않았다. 서로 구원했지만, 마지막이 구원의 결말이 맞느냐고 묻는다면 애매하다. 감독한 ‘실패한 성장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성장의 끝이 무조건 환한 빛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성숙하고 불안정한 10대의 성장은 실패에 다다를 수도 있고, 이 실패가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이렇게나 파멸을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끝으로 갈수록 시은, 수호, 범석을 보며 눈물짓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나치게 잔인하고 폭력적인 <약한 영웅>의 학교 내에서, 이 아이들이 극한으로 몰린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시은은 처음으로 지키고자 했던 자신 행동의 결과로 친구의 혼수상태를 마주하고. 수호는 생사가 위험하다. 범석은 소중한 친구였던 시은의 손을 부러뜨리고 수호를 혼수상태에 이르게 하며,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는 것도 모자라 한국에서 내쳐진다. 설정 값들이 우리가 지켜본 아이들에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장의 실패를 좀 했기로서니, 이렇게까지 망한 성장과 배드 엔딩을 맞아야 하나 싶은 것이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이 드라마에 몰입한 시청자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이 드라마의 최대 강점인 섬세한 관계성을 통해 과몰입한 많은 시청자에게는 아직 수호가 혼수상태이고, 시은은 이제 친구 없이 완전 흑화해 새로운 고등학교에서 또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범석은 정말로 필리핀으로 가게 되었을지, 아니면 어디 벽장 속에서 홀로 절망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드라마 <약한 영웅>의 정식 이름은 <약한 영웅 Class 1>이다. 그렇다면 Class 2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관계성의 대가인 <약한 영웅>답게, 약하지만 영웅이 될 수 있는 아이들의 또 다른 성장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넌 잘못한 거 없어”

 

 

석대가 영이에게, 시은이 범석에게, 시은의 아버지가 시은에게 대물림되었던 대사이다. 반복되었던 이 대사처럼, 아무도 잘못한 아이들이 없다면, 이들에게 망한 성장을 넘어 새로운 구원을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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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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