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 같이 저 테이블에 앉읍시다 [사람]

글 입력 2023.01.0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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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이 저 테이블에 앉읍시다

손을 가슴에 얹고 나는 더 나은 세상을 원했던 적이 있는지.


  

 

 

손발은 평생 게으르게 놀았지만, 나도 우리 모두도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 생각은 땅 밑에 묻혀져 있다는 화석처럼 견고하고 당연해서 스스로도 그 존재를 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더 나은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전까지는. 누군가 나를 세상에 내보낼 때 베갯잇에 화석으로 된 부적을 넣어 놓았었나봅니다. 벌건 글씨의 아등(我等) 그리고 강개지사(慷慨之士).

 

아무도 “사람들은 모두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단다” 말해준적은 없건만, 나는 얄팍하나마 도덕을 믿었고 사람들의 친절을 믿었습니다. 세상이라하면 너무 거창해서 친절의 장본인들은 의아할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들의 친절은 결국 세상이 될 상대를 고려한 몸짓이였으니까요. 처절함, 절망감 속에서도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마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간성에 대한 우롱, 사람이 하나-둘-셋 셀 수 있는 것들보다 가벼워지는 기괴한 저울 앞에서 절망하는 무릎. 아, 그래도 우리 같이 울고 있어 다행입니다.

 

군대에 있던 연인은 곧잘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저에게 전달해주곤 했습니다. 연인이 새삼 세상에 대해 느낀 생경함, 일생의 대부분을 그나마 “괜찮은” 혹은 “평범한” 커뮤니티들에 있다가 마침내 날것의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 이질감을 저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조금은 경망스럽게 물었습니다. “아니, 근데 그 사람들도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한날은 뉴스의 댓글들을 쭉 읽어보았습니다. 증오는 번개처럼 상대를 향해 내리쬐고, 천둥처럼 울었습니다. 천둥번개가 가시지 않는 태풍의 계절인양.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말을 했습니다. 그 말하는 다리들의 오차없는 착착거림, 그 행진에 놀람과 함께 정치 내지는 공적 영역에서 너그러움을 기대하는 것은 어린애의 생각인지 자문했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가며 깨달은 것은 역지사지에 대한 나의 섣부른 오해. ‘아, 애초에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볼 의향이 없을 수 있겠구나.’ 또는 ‘애초에 입장을 바꿔볼 줄 모르는구나’. 우리 쓰잘데기 없이 공허한 사자성어만 배워댄 것인지 조금의 허탈함도 있었습니다.

 

롤스는 정의로운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우리 모두 베일을 하나 써볼 것을 제안합니다. 한 교수님의 말로 설명해보자면… 우리는 불빛이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어두운 방 모두 삶이라는 것을 놓고 원형 테이블에 앉아 카드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각자는 외모, 집안, 출신, 재산, 지능 등과 같은 카드의 패를 받았으나 모두 눈을 가리는 베일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자신이 어떤 패를 쥐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 상태에서 사회를 어떻게 꾸려나갈지 이런 저런 규칙을 세워야 한다면 각자는 스스로가 최악의 패를 가지고 있는 경우를 상정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최악의 패를 갖고 있는 경우를 대처하기 위해 이들에게 혜택을 주는 식의 합의를 할 것이라는 것이 롤스의 이야기입니다.

 

수업에서 배울때는 너무나도 훌륭한 이론이라 생각했으나 현실에서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사태의 국면이 보입니다. 애초에 베일을 쓸 수 없고, 애초에 카드게임을 하는 그 테이블에 앉으려 들지 않는, 전제(premise)의 실패. 롤스의 정의도 그 원형 테이블에 앉아보려는 정도의 너그러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찌저찌 정의의 원칙은 도출했으나 그 자리에 앉아볼 수 없는 사람이 얼마나 진정으로 그 원칙에 동의할 수 있겠습니까. 정녕 마음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쓴 한약을 먹듯 퉤, 결국에는 뱉어버리는게 아닐까요.

 

 

에드워드 호퍼 푸른 저녁.jpg

["Soir Bleu" by Edward Hopper, 1913,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에드워드 호퍼의 '푸른 저녁']

 

 

학교의 선생님처럼 사람들을 모을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자, 이 테이블에 얼른 앉아보세요, 앉지 않으면 벌을 줄겁니다.’ 누군가에게 삶은 이미 좋은 패를 쥔 상태에서 시작한 것, 그리고 잠시 내려놓고 객관적으로 비교하고 관찰해보기에는 자신의 삶은 너무나도 소중한 것, 베일을 쓰는 그 상태를 구태여 상상해보고 싶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는. 누군가는 베일이니, 역지사지니 하는 것은 결국 못가진자의 발악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지푸라기처럼 바스락거리고 가벼운것들의 의미없는 수근거림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뜬 눈으로 잔인하고 더럽게, 상대방의 패를 보고 웃고 희롱할수도 있습니다. 정의니 불의니 하는것에 기대를 걸기보다 그래, 그 모양새의 추함은 알겠지, 아름다움을 운운하는 시대니까, 희망의 혹은 협박의 매듭하나를 나무에 묶어놓고 싶지만…못난 생각같아 내려놓고.

 

이 글에서 우리와 나 그리고 그들의 구분은 때때로 무용하고, 우리 다같이 저 둥근 테이블에 앉아볼 수 있는 방법은 미지수입니다. 도리어 내 깨끗한 손과 발, 비겁한 마음을 보며 기분은 말할 수 없이 언짢아집니다. 이 순간에도 수많은 ‘나’들에 못났다 말한 ‘그들’이 이해되고 죄를 씻듯 ‘당신’ ‘당신’ ‘당신’ 여러 번 읊조려 보다가.


그래도 베갯잇에서 부적을 꺼내지는 않겠습니다. 우리 같이 저 테이블에 앉읍시다. 나에게도 저기 같이 앉자고 말해줘요, 서로의 손을 이끌어줘요. 부적을 베고, 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한 상태로 같이 책상에 앉자고 말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잊지 않도록 계속. 앉으려 들지 않는 자들에게 삶이 태풍처럼 몸소 풍파와 내리막, 폭우를 가르쳐주기를, 못내 축복의 기도를 한번 하고.

 

 

 

아트인사이트 태그_남영신.jpg

 

 

[남영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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