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에서 – 절연(정세랑, 무라타 사야카 외)

'절연'을 통해 마주한 익숙하지만 낯선, 낯설지만 익숙한 모든 것들에 건네는 인사
글 입력 2023.01.05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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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하나 둘 추억이 떠오르면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야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 윤하, ‘사건의 지평선’ 가사 中

 

 

최근 ‘역주행’으로 화제가 된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은 슬픔과 아픔, 미련과 후회로 헤어짐을 그렸던 대부분의 이별 노래와는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관계의 끝을 그린다. 스스로의 마음을 제대로 마주한 곡의 화자는 자신에게 관계를 지속하려는 노력은 더이상 ‘정답’이 아니며, ‘그래도 이제는’ 헤어짐을 향해 가야 한다는 말로 작별을 고한다.

 

더 이상 어떠한 영향도 주고 받지 못하는 시공간의 경계면인 ‘사건의 지평선’ 너머를 이야기하는 이 작별 인사는 무엇보다 단호한 ‘끝’임에도, 스스로의 진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만의 한 걸음을 내딛는 이야기이기에 새로운 시작을 예견한다. 그리고 이 곡이 그리는 헤어짐을 보며, 어느때보다 끝을 알 수 없이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계속 헤어짐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끝없이 변화하는 낯선 세계를 마주하며 계속해서 헤어지고 있는 우리는, 또 다사다난했던 2022년의 끝에서 새로운 해를 마주한 우리는, 이 곡의 가사처럼 ‘끝’이 아닌 ‘새로운 길 모퉁이’ 앞에 설 수 있을까? 익숙하고 안전한 ‘유리병’ 속에 있던 것들을 다시 끄집어내 마주하는, 어쩌면 참 불편하고 혼란스러울 수 있는 이 헤어짐의 과정들을 우리는 잘 통과해낼 수 있을까?

 

아시아 곳곳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아홉 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앤솔러지 소설집 『절연(정세랑, 무라타 사야카 외 7인, 문학동네)』은 이러한 고민들을 관통하는 ‘절연’이라는 키워드 아래 쓰인 아홉 편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들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배경과 인물, 장르로 구성되었지만, 각각의 이야기 속에서는 ‘절연’으로 향하는 커다란 사회의 흐름 안에 놓인 개인들이 당연하게 여겨왔던 관계나 가치와 다양한 방식으로 절연하고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 아홉 명의 작가들이 각자의 시선과 상상으로 풀어낸 ‘절연’은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낯설면서도 익숙한 특별한 감각으로 다가온다. 우리에게도 어쩌면 또 다른 끝이자 새로운 모퉁이가 될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반복되는 접속과 단절의 경계에 선 우리가 이 경계를 조금은 더 면밀하고 세심하게 살펴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격변하는 세계에서 시시각각 가치판단을 내려야 하는 개개인들은,

끝없이 서로 헤어지고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건강한 갈등이고 어디부터가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의 시작인지

사람마다 안쪽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어떤 절연은 커다란 소리로 발화되고, 또 어떤 절연은 한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납니다. 짧게 발음되는 단어가 한 사람 한 사람을 통과해

어떻게 풍성해졌을지 궁금합니다.

아무쪼록 절연에 대한 이야기들이 부식된 것은 끊어내고

더 강력한 연결점을 찾기 위한 자극이 되길 바랍니다.

 

- 『절연』 p.8 정세랑 작가의 '기획의 말' 中

 

 

 

절연(絶緣)의 갈림길에서 : 당연하게 여겼던 관계와 가치들을 돌아보는 일


 

표지.jpg

 

 

『절연』 속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무엇보다 ‘절연’이라는 키워드가 ‘지금’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맞닿아 있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근 몇 년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익숙했던 많은 것들과 헤어지고, 새로운 많은 것들과 이어지는 시기였던 것 같다. 팬데믹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리부트와 백래쉬, 미투운동, 안전을 지키는 체계와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던 안타까운 재난 등을 겪으며, 우리는 무엇과 또 누구와 어떻게 이어지고 끊어져 있는지를 매번 절실히 확인하는 시간을 거쳤다.

 

그리고 이는 개개인 스스로의 삶이나 가치관 뿐만 아니라 개인이 또 다른 개인이나 사회와 맺는 관계, 다양한 영역에 적용되는 사회 규범 등 당연하게 여겼던 관계와 가치들을 돌아보는 것이기도 했다. 현실과 비현실, 아시아와 그 밖의 공간을 넘나드는 『절연』 속의 이야기들 역시, 공고한 가족 규범이나 젠더 규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시스템 속에서 다른 개인과 또 사회와 절연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절대 끊을 수 없는 인연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부모 자식 간의 애정과 희생에 대해 조명한 이야기들이 인상적이었다. 무라타 사야카의 <무(無)>에서는 딸에 대한 애정과 관심 없이 ‘세대’ 안에 속하기 위해 행동할 뿐인 ‘미요’와, 말 그대로 세상의 모든 것과 절연하는 ‘무(無)’가 되고 싶어하면서도 ‘미요’를 이용하기만 하는 딸 ‘나나코’가 등장한다. 또한 응우옌 응옥 뚜의 <도피>는 가족규범이 ‘어머니’에게 요구하는 것으로부터 끝내 도피하지 못한 ‘그녀’의 이야기를 담는다.

 

모성애와 가족에 대한 헌신을 당연한 듯 요구하는 가족규범과 절연하고자 했던 인물들이 묘사하는 ‘가족’은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거북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만큼 솔직한 것이기도 하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모성 신화’라는 금기와 성역화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던 부모 자식 간의 관계, 특히 가족규범이 ‘어머니’에게 부여한 의무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는 단순히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던 여성들을 억압할 뿐만 아니라, (작가의 말 속 응우옌 응옥 뚜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족이라는 ‘인연의 빚’으로 이어진 모든 개인들이 가족과 독립된 존재로서 서로 이어지고 헤어지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가족 안팎을 포함하여 크고 작은 사회 안에 공고히 자리잡은 규범일수록, 규범과 불화하는 개인이 그저 스스로가 가진 협상력과 개인 간의 타협으로만 이 불화를 돌파해 나가도록 한다.

 

싱가포르 속 말레이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알피안 사아트의 <아내> 속 ‘사우다’를 통해 이를 더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는 교리와 규범에 따라 남편에게 헌신했지만 아이를 낳지 못하면서 자신이 속한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아내’가 될 수 없었다. 이렇게 의도치 않게 규범과 불화하며 고독 속에 살았던 ‘사우다’는, 남편의 전 연인이자 그가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던 ‘아이샤’에게 ‘마두(무슬림에서 두번째 아내를 가리키는 말)’가 되어달라고 이야기함으로써 오랫동안 짊어져 온 고독을 해소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렇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음에도 사우다는 결국 그 고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소설이 배경으로 하고 있는 사회의 특수성을 생각하더라도, 결국 규범에서 벗어나는 것도 규범과의 불화를 해소하는 것도 실패한 사우디의 모습은 규범의 불합리함으로부터 상처받은 개인이 이를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일임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이는 사회 규범과의 불화가 너무 쉽게 자신과의 불화로, 또 사회와의 단절로 이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절연』 속 이야기들은 공통적으로 체제나 규범의 요구 등으로 사회 안에서 개인이 지워질 때 ‘절연’이 발생함을 짚어낸다. 세대와 성별, 국적 등의 기준만으로 한 개인의 모든 정체성을 단정할 때, 또 사회규범과 다수의 이익이라는 명목 아래 사회 안에서 개인의 역할과 기능을 고정시키고 이를 수행할 수 없는 이들을 배제할 때. 각 개인은 사회 안에서 쉽게 지워지며 다양한 방식으로 절연을 마주한다.  

 

그리고 하오징팡의 <긍정벽돌>과 홍라이추의 <비밀경찰>은 SF장르의 상상력을 가미한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절연이 심화되었을 때의 위험을 경고한다. 두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사회는 인간을 고유한 존재로 존중하기보다는,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사회에 필요한 부품으로 작동하도록 강력히 통제한다. 특히 <긍정벽돌>은 인간의 감정을 감지하고 그에 따라 색을 바꾸는 물질로 이루어진 ‘긍정시티’에서 긍정적인 감정만을 표현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곳에서 부정적인 감정으로 주변을 검게 물들이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이유로 격리되어 ‘정서 개선’을 위한 노역을 해야 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중국 현대미술의 대표작가 중 한 명인 ‘위에민쥔’의 그림들이 떠올랐다. 그의 그림 속에서 비판적인 성찰이나 주체적인 사고 없이 체제의 요구대로 얼굴 한가득 웃음을 띠운 사람들의 모습은 ‘긍정시티’ 사람들의 모습처럼 행복하기보다는 오히려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홍라이추의 <비밀경찰>에서도 사람들은 소리도 없이 온도시를 장악한 ‘비밀경찰’에게 모든 일상을 감시당하는 두려움으로 서로 신뢰를 잃고, 어떠한 비밀도 갖지 못하도록 통제 당한다. 두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도시들은 모두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한다며 ‘무해함’과 ‘투명함’을 표방하지만, 긍정적인 표현만으로 가득 차 오색찬란히 빛나는 긍정시티의 모습도, 어떠한 비밀 없이 투명한 <비밀경찰> 속 도시의 모습도, 전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직시하지 못하거나 회복시키지 못할 때, 억압되고 배척된 갖가지 그림자는

다른 장소로 이동해 간다. (...) 만일 일상 속에서 긍정적이고 즐거운 감정밖에

드러낼 수 없다면 숱한 분노나 슬픔은 어디로 갈까.

두말할 필요 없이 그림자처럼 도사린 채 폭발할 때를 기다리리라.

이 소설에는 딱히 기발한 설정은 없다.

오직 한 가지-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어떻게 자기 안에 있는

모든 빛과 그림자를 통합해 완전함을 지닌 인간이 될 것인지 물을 뿐이다.

 

- pp.133-135 하오징팡 <긍정벽돌> 작가의 말 中

 

 

과도한 통제와 감시 아래 만들어진 이 도시들의 모습은 개인이 온전한 스스로로 존재할 수 없는 허상일 뿐이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과 사회 안에 당연히 존재하는 그늘진 모습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는 이러한 사회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란 참 요원하다. 이는 결국 소설집의 마지막에 수록된 이야기인 정세랑의 <절연>에 닿는다. 최근 있었던 여러 논란과 사건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 이야기는 모호해지는 피해와 가해의 경계 속에서 지워지고 외면되는 사실들, 그리고 이에 대한 논쟁과 갈등 끝에 한 개인이 절연에 이르는 과정을 담는다.

 

과거 폭력을 일삼던 연인 앞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편이 되었던 이들이 가해지목인의 사회 복귀를 도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가은’이 마주한 ‘절연’의 갈림길은 이미 우리 앞에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절연>이 그리는 ‘절연’은 확신과 정의로 가득 찬 ‘사이다’ 같은 것이 아니었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우리가 안주해 있던 ‘무해함’의 실체와, 애써 외면해왔던 가치판단의 ‘경계’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절연’은 어쩌면 우리를 불편하고 찝찝하게 하는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모호하더라도 계속해서 당연하게 여겨왔던 가치와 관계들을 되돌아 보는 일일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앞에 놓이는 수많은 가치판단의 갈림길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함께 이야기하고, 새로운 가치와 정의의 기준을 합의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그동안 다양한 이유로 사회 안에서 지워졌던 개인의 자리를 찾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절연』 속에 담긴 아홉 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쳐온 원칙과 규범들을 다시 돌아보며 밀려오는 가치판단 속 모호한 경계들을 한 꺼풀씩 면밀히 살펴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들이 모여 한 개인이 사회 안에서 오롯이 스스로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자리를 넓혀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제서야 비로소 ‘절연’은 단호한 헤어짐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이어짐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시대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을 멈추어

의심하게 만드는 듯 해요.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그동안 성장에만

초점을 두고 계속 달려왔는데 그 방향이 맞았는지,

다른 곳을 향할 수는 없는지 모색해보는 것은 분명한 전환일 것입니다.

 

- pp.392-393 무라타 사야카와의 대담 中 정세랑 작가의 말

 

 

 

‘절연’으로 이어진 우리에게 : 이어짐의 범위를 넓히려는 시도가 반가운 이유


 

『절연』은 ‘우정의 범위를 살짝 더 넓혀보고 싶었다’는 정세랑 작가의 제안으로 한국과 일본의 작가들이 반반씩 쓰기로 했던 당초의 계획을 수정하여 일본, 싱가포르, 중국, 태국, 홍콩, 티베트, 베트남, 대만 등 아시아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엔솔러지 소설집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독자로서는 그동안 쉽게 접하지 못했던 작가들의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즐겁고 반가웠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는 지리적인 가까움이 문화적인 가까움이나 정서적인 가까움과는 다르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국가임에도 그 국가의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처음인 경우도 있었고, 느슨하게 나마 이어져 있다고 여겼던 사회와 문화에 대해 정말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무지와 다름을 인지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이어짐의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같음’에 대해 함부로 넘겨짚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이는 느슨한 연대가 발휘하는 힘과는 달리, 개인이 가진 복합적인 정체성을 인정하기보다는 그 중 일부만으로 개인을 단정짓고 구분하기 쉽게 만든다. 알피안 사아트의 <아내>에서 싱가르포 속 말레이인이면서도 전혀 다른 환경과 위치에서 성장한 ‘아이샤’와 ‘이드리스’의 가족이 갈등을 일으키는 모습에서, 말레이인 사회 내부에서도 일정한 스테레오타입을 요구 받는 ‘아이샤’의 모습에서 이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기에 헤어짐과 이어짐은 ‘같음’이 존재하는 지점이 아니라, 오히려 ‘다름’을 제대로 인지한 지점에서 더 건강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다름’을 인지하는 데 있어 문학을 포함한 문화예술의 자리를 넓히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시도일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절연』을 통해 ‘절연’이라는 공통의 키워드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보며 비슷하면서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한 각 사회의 일면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것이 귀한 기회로 느껴졌다.

 

또한 『절연』 속에서 국경을 넘어 이어지고 헤어지는 인물들을 보면, 먼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얽히고 설킨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이 맺는 관계가 개인의 절연과 접속에도 단연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롄밍웨이의 <셰리스 아주머니의 애프터눈 티>에서 ‘슈리’는 아버지를 따라 세인트루시아에 이주해 주니어 탁구 선수로 활약하지만, 세인트루시아와 대만의 단교로 친구들과 학교를 떠나야 할까 봐 늘 불안해 한다.

 

반면 위왓 럿위왓웡사의 <불사르다>는 2000년대부터 2020년까지 태국의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태국과 홍콩의 청년 세대들이 절연과 접속을 반복하면서도 서로 연대하는 모습을 그린다. 개개인의 삶을 흔드는 정치 상황에 따라 이들의 관계 역시 계속 변해가지만, 이들은 승산을 계산하지 않은 투쟁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절망에서,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는 간절함과 희망에서 서로 이어진다.

 

이렇게 시대나 사회의 흐름에 휩쓸릴 수 밖에 없는 개인들임에도, 그 안에서 나누는 진심 어린 공감과 희망은 우리를 이어준다. 라샴자의 <구덩이 속에는 설련화가 피어 있다>는 이렇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진심과 애정이 담긴 위로와 희망으로 이어졌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래서인지 <구덩이 속에는 설련화가 피어 있다>는 슬프고 안타까우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따스해지는 묘한 아름다움을 지닌 이야기였다. 


 

"지금은 그때의 나처럼 시커먼 구덩이에 떨어진 기분이겠지만,

구덩이 속에는 설련화가 피어 있다고 믿는 거야.

그럼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희망을 품을 수 있거든"

 

- p.259 라샴자 <구덩이 속에는 설련화가 피어 있다> 中

 

 

물론 ‘구덩이 속에는 설련화가 피어 있다’는 말만으로는 이야기 속에서 ‘나’와 ‘소남 완모’가 처한불합리한 상황을 해결할 수 없고, 어쩌면 그저 현실에 순응할 힘을 주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말은 그들에게 캄캄한 구덩이 속에서 다른 존재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를 주었고, 힘든 상황을 버틸 수 있는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 이를 보며 쉽게 바뀌지 않은 현실에 속해 있는 대부분의 우리가 그럼에도 이어질 수 있는 힘은, 어쩌면 진부하더라도 서로에게 줄 수 있는 마음 한 조각과 작은 희망에서 시작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이야기 안에서 의미를 변화하며 반복되는 이 말이, 나를 포함하여 『절연』으로 이어진 모두에게도 캄캄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절연’의 상황에서도 설련화를 보듯 ‘이어짐’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 되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이 모여 이어짐의 범위를 더 넓혀갈 수 있기를, 이를 통해 우리 앞의 절연을 제대로 마주하고 오롯이 우리 자신으로서 새롭게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김효중 PRESS 태그.jpg

 

 

[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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