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커피와 담배, 커피와 대화 [영화]

사소한 삶의 소중함
글 입력 2023.01.0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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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판 같은 테이블 위에 커피와 담배가 올려져 있다.

 

짐 자무쉬 감독의 <커피와 담배>의 주인공들은 체스판 위에 커피를 올렸다 내려놓기를 반복하며, 체스를 두듯 대화를 이어나간다. 각기 다른 에피소드 속 인물들은 카페에서 만나기 시작하여, 대화를 하다가 자리를 뜨며 끝이 난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대화가, ‘커피’와 담배’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화를 위해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혹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에 앉아 대화를 한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된 ‘지구를 음향공명의 전도체로 여기다’ 라는 니콜라 테슬라의 명언처럼, 커피와 담배는 우리의 대화 소리의 공명을 위한 전도체로 존재한다. 즉, 대화를 위한 중요한 매게체로써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영화 <커피와 담배>는 ‘커피’와 ‘담배’를 러닝타임 내내 등장시킨다. 서로 다른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각기 다른 대화 주제와, 서로 다른 성격을 갖고 등장한다. 짐 자무쉬 감독은 ‘커피’와 ‘담배’를 단순히 대화의 매개체로써 사용하는 것이 아닌, 대화를 나누는 그 순간의 분위기와 인물들의 성격을 ‘커피’와 ‘담배’를 통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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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에피소드가 담긴 <커피와 담배>의 시퀀스에선 동일한 연출들이 반복된다. 모든 이야기의 테이블엔, 언제나 두 사람이 존재하고, 언제나 누군가가 테이블에 끼어든다.

 

예를 들어, 첫번째 시퀀스인 [만나서 어색합니다]에서 ‘로베르트 베니니’가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고, 곧 그를 만나기 위해 ‘스티븐 라이트’가 찾아와 테이블 안으로 들어온다.

 

혹은 가수 ‘즈자와 르자’가 앉은 테이블에, 카페 점원으로 등장한 ‘빌 머레이’가 끼어들어 함께 대화를 나누기시작한다. 이렇듯 모든 이야기는 누군가 테이블 안으로 끼어들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날 때도 누군가 테이블 밖으로 퇴장해야만 하나의 이야기가 끝난다.

 

이들의 대화를 영화에 담아내는 방식도, 모든 이야기에서 동일하게 적용된다. 카메라는 픽스 된 상태로, 인물들을 정적이게 담아낸다. 영화는 또한 두 사람이 한 화면에 딱 들어맞게 풀샷으로 이들을 찍고, 이러한 풀샷을 롱테이크로 보여준다. 컷이 변화하긴 하지만, 빠른 컷 편집은 하지 않으며, 컷의 수도 매우 적다.

 

이러한 방식은 모든 에피소드 시퀀스에 적용되며, 이는 일반적인 상업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의 보편적인 틀에서 벗어난다. 애초에 짐 자무쉬 감독이 미국에서 독립영화를 제작하면서, 그는 언제나 상업 영화의 공식에서 벗어난 영화를 찍어왔기에, 커피와 담배에서 이러한 촬영 방식을 보인 것도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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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영화는 언제나 테이블을 보여준다. 모든 에피소드에서, 인물들이 ‘커피’와 ‘담배’를 올려둔 테이블을 하이앵글로 담아낸다. 모든 에피소드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테이블은 체스판 모양을 띄고 있다.

 

이렇게 동일한 연출 방식이 각 이야기에서 반복되자, 관객들은 저절로 그 안에서 다른 점을 찾게 된다. 마치 틀린 그림 찾기를 하듯 말이다. 같은 방식으로 찍어도, 인물들의 성격과 이들의 관계 그리고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그 순간의 분위기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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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테이블’을 비교해보겠다. [쌍둥이] 시퀀스에선 테이블 위에 있는 커피와 담뱃재 등 모든 것이 쌍둥이들처럼 똑같다. 심지어 잔에 든 커피의 양까지 대칭을 이루고 있다.

 

쌍둥이들은 성격도, 옷차림도 대칭처럼 비슷한데, 이러한 그들의 관계가 테이블에서도 나타난다. 그에 비해 [사촌들] 시퀀스의 테이블은 매우 대조적이다. 여기서 배우 ‘케이트 윈슬렛’이 두 명의 사촌을 1인 2역으로 연기해낸다.

 

두 사촌의 얼굴은 매우 닮았지만, 성격, 옷차림, 직업, 명예, 가족 등 모든 면에서 매우 다르다. 그것으로 인해,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데, 이러한 둘의 관계성은 커피에서도 나타난다.

 

한 사람은 우유가 많이 들어간 연한 에스프레소가, 다른 한 사람의 커피는 매우 진한 에스프레소가 놓여 있다. 이외에도 둘의 관계성에 따라, 테이블 안으로 들어오거나 퇴장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관계가 좋은 이들은 함께 퇴장하고, [캘리포니아 어딘가] 의 ‘이기 팝’과 ‘톰 웨이츠’처럼 갈등이 일어났을 땐, 한 사람만 그 자리를 급히 떠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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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담배>의 [샴페인] 이야기에선, 나이 많은 노동자 둘이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짧은 휴식을 보내고 있다. 그들은 힘겨운 삶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래 전 파리와 뉴욕을 떠올리며 건배를 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며, 선잠에 빠진다.

 

이들은 싸구려 커피를 마시면서도, 마치 샴페인을 마시듯 즐겁고 평온해 보인다. 우리의 삶에서 ‘커피’와 ‘담배’는 매우 사소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커피’와 ‘담배’처럼 사소한 것이 사라진다면? ‘대화’처럼 사소한 것이 사라진다면? 짐 자무쉬 감독은 언제나 사소한 것의 아름다움을 영화에 담아낸다.

 

우리는 그의 영화를 보면서 ‘커피’를 통해 카페에서 만나 대화를 하는, 우리 일상의 소중함을 떠올리게 된다.

 

 

[김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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