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여성, 소수자 소설의 새 지평 - 첫사랑 [격주의 문학]

글 입력 2022.12.29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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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원 작가의 단편소설 「첫사랑」(《문학수첩》 2022년 하반기호)은 고등학교 시절 주인공의 첫사랑이었던 문학 선생님에 대한 과거의 기억을 추적하고 현재 다시 재평가하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학창 시절의 주인공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학교 소설이고, 그로부터 10년 넘게 지난 현재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에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한편 과거에는 밝혀지지 않았던 교사의 폭력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미투 소설이기도 하고, 크고 작은 장애를 안고 사는 인물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장애인 문학, 혹은 소수자 문학이기도 하다.

 

한 편에 소설 안에 다양한 해석의 관점이 존재할 수 있으며, 어느 인물에 대해서도 작가가 단정적인 평가를 하지 않는다. 이렇듯 서장원의 「첫사랑」은 2020년 전후의 문학 전형적인 사회 이슈를 담고 있으면서도 사회나 윤리의 관점이 아니라 가장 개인적이고 문학적인 관점으로써 폭력의 양상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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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나’는 뇌병변장애를 앓고 있어 신체 거동에 불편함이 있으나,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아 비장애인들과 함께 학창 생활을 하며 고등학교를 보냈다. 그녀는 폭언이나 체벌을 일삼는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학생들에게 이상을 심어주는 젊은 남자 문학 선생님인 ‘고준성’을 좋아하게 된다. 그는 필기 속도가 느린 ‘나’를 위해 따로 수업 자료를 챙겨주기도 하고, 학교 바깥에 시설 봉사를 다녀온 날에는 걸음이 느린 ‘나’와 함께 걸으며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대학에 진학하고, 연애를 하기도 하며, 어엿한 일자리를 얻어 직장생활도 하게 된다. 그러나 서른 무렵이 된 지금까지도 타인과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종종 고준성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고준성에게 성폭력을 당한 학생들이 페이스북에 장문에 고발문을 게재하고, 해당 미투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옛 동창 ‘규영’이 ‘나’에게 따로 연락을 해온다. 학창 시절 ‘나’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했던 ‘규영’을 다시 만나며 ‘나’는 과거의 기억들을 새롭게 떠올리게 된다.


*


소설 「첫사랑」의 서사를 추동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성덕여고 스쿨 미투’라고 하는 피해자들의 사회적 연대와 용감한 고발 운동인데, 소설의 서술은 그 사건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있는 지점의 ‘나’로부터 진행되고 있다. 서사를 구성하는 내용과 서사를 발화하는 시점의 엇물림이 이 작품의 문제성을 더욱 극대화시킨다.

 

학생들은 젊은 문학 선생으로부터 그루밍 성폭력을 당하고 10년이 지난 오늘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연대할 수 있게 된다. 그중에는 적극적으로 고발의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도 있고, 성범죄를 당했지만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발 떨어진 곳에는 ‘나’가 있다. 비장애인들 사이에서 불편함을 안고 지낼 수밖에 없었던 ‘나’가 있고,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았던 ‘규영’이 피해자들의 연대에 앞장서고 있다.


「첫사랑」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마 사회적 폭력의 거시적인 구조와 그리고 선인과 악인을 설정하지 않는 미시적인 시선이 이 짧은 소설 안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작품 속에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폭력의 양상들이 등장하고 있고, 각각의 인물은 한 폭력의 피해자인 동시에 다른 폭력의 가해자이기도 하다. 규영을 다시 만난 ‘나’는 고준성의 이면을 알게 되는 동시에, 다시금 나를 배려하지 않고 불편하게 만드는 규영을 보면서 과거의 상처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고준성은 어린 학생들에게 상처를 준 명백한 범죄자이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유일한 사랑으로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 여자고등학교의 상당수 교사들은 용모나 품위를 이유로 폭력적인 언행이나 체벌을 일삼고 있었다. 소수자 차별이나 언어 폭력, 성폭력 등 각각의 국면에 대해서는 가해와 피해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 폭력들은 거대한 사회 구조의 일부일 뿐이고 누구나 동시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독자에게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것 같다.


서장원의 이번 작품은 어떻게 보면 독자들에게 상당히 불편하게 다가올 소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고 폭력은 마땅히 징계해야 하지만, 단순히 한 사건의 가해자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운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당연한 진실이지만 우리가 많은 경우 무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사실인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이 예민한 지점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어 서장원 작가의 이번 소설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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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원의 이번 작품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팟캐스트 《요즘 소설 이야기》 덕이다. 《요즘 소설 이야기》에서는 매주 최근 문예지에 발표되고 있는 단편소설을 한편씩 다룬다. 107회에서 서장원 작가의 「첫사랑」을 다룬 덕에 내가 이 작품을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기존의 여성 소설이나 소수자 소설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인식도 이를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나에게 있어서 좋은 소설은 나에게 있어서 여운을 남기는 작품, 오랜 시간 뒤에 다시 펴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좋은 소설의 기준은 온전히 내 안에서 해결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함께 읽기 좋은 소설, 읽고서 함께 논의하고 싶은 종류의 소설들도 있는 것 같다. 「첫사랑」은 그런 부류에 속하는 것 같다.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눌 가치가 있는 소설,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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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원 작가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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