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인생이 연극이라면 폐막하고 싶을 때 [공연]

글 입력 2022.12.25 14:5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38439701_QgP1FOyq_EB8C80ED919CEC9DB4EBAFB8ECA780.jpg


 

연말이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신년 행사 등으로 사회는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들뜬 분위기를 띤다. 그러나 한 해를 보내는 것이 그리 기쁜 일만은 아닌 사람도 존재한다. 신년을 맞이하기에 지금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올 한 해를 그리 만족스럽지 않게 보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이 둘에 모두 해당하는 사람이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회의감이 들 때 생각나는 작품들이 있다. 나에게는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과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이 그러하다.

 

공연은 드라마나 도서와 다르게 보고 싶을 때마다 다시 꺼내볼 수가 없다. 물론 그래서 공연을 봤던 그날에만 느낄 수 있었던 그 순간의 감정이 더욱 강하게 자리 잡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두 뮤지컬을 보고 강렬한 위로와 감동을 받았던 경험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나라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괜찮다는, 관념적인 메시지가 마음에 진심으로 닿았던 순간이기 때문이다. 나만 빼고 다들 신이 난 것 같은 계절 속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 글이 작은 위로라도 되길 바라며.


 

[크기변환]Ek5E3HsUUAAkbdF.jpeg

 

 

 

나에게만 존재하는 내 인생의 조각들



두 뮤지컬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지닌다. <인사이드 윌리엄>은 처음부터 끝까지 밝고 능청스러우며, 중간에 개그 요소를 넣어 재치 있게 분위기를 이끈다. 반면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은 비밀스럽고 스산하다.

 

첫 넘버에서부터 주인공을 ‘이 동네 미친X’로 수식하고, 그도 그렇게 보일만한 괴팍한 노파의 등장은 긴장감을 유발한다. 둘 다 현실 소재를 바탕으로 했는데, <인사이드 윌리엄>은 동화 같다면 <호프 :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은 추리소설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뮤지컬을 보고 나면 같은 울림이 남는다.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들의 삶은 모두 하나하나 기록되어 우리에게 비친다. 평소와 같이 밥을 먹는 것도, 친구와 대화를 하는 것도 우리에겐 다 하나의 장면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기록되지 않는다. 우리도 그들과 다름없이 밥을 먹고, 친구와 대화를 하고, 어떨 때에는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순간을 맞이하고 예능보다 더 예능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그래도 그것들은 기록되지 않는다. 그건 나에게만 기록되고 나에게만 기억된다. 특히 내가 혼자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은 오롯이 나만 기억할 수 있다. 나에게만 존재한다. 하물며 드라마 주인공들도 중간 장면은 생략이 되는데, 내 일상은 내가 기억하지 않으면 평생 기록될 일이 없는 것이다.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과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은 그런 부분들을 조명한다. 주인공들조차 장면에서는 스킵 되는 부분들. 다른 사람에게 기억되지 않는 오로지 나만의 기억과 서사. 나 혼자만 간직할 수 있는 내 인생의 부분들. 다른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편집’까지 된 부분들인데, 이 뮤지컬은 오히려 그 부분에 집중하고 면밀히 살펴본다.



[크기변환]ExThPjaUUAEjFca.jpeg

 

 

 

“내 인생이 연극이라면 새로운 장르이고 싶어.” -<인사이드 윌리엄> 中



내가 처음 무언가를 깨달았을 때가 기억이 나는가? 내가 처음 한글을 배웠을 때. 처음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했을 때. 처음 농구 골대에 공을 넣었을 때. 처음 내가 좋아하는 것이 생겼을 때. 처음 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내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끼고,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기대가 피어오르고, 마치 내 눈앞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아른거리는 것 같고, 미래에 대한 설렘에 가슴이 저릿한, 그런 경험. 분명 내게도 있었는데 왜인지 희미하다. 그 기분이 정확히 떠오르지 않고 그 경험을 다시 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고.


그런데 공연 안에는 늘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 미래에 대한 기대로 눈을 반짝이는 사람들, 우수에 젖어 진심을 열변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함께 벅차오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슴이 식기도 한다. 현실은 저렇게 늘 빛나는 것들로만 채워져 있지는 않으니까. 나는 저런 설렘을 경험한 지 너무 오래되었으니까. 물론 묘한 희열감도 든다. 나는 저런 주인공이 되지 못하니까. 주로 관객인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런데, 이 극에서는 이런 생각을 하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자신의 캐릭터가 자신의 캐릭터가 아닌 것 같은 느낌. 내 옷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캐릭터들이 가진다. 자신을 되돌아보며, 인생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극 중 인물은 불안해한다.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이것을 끝까지 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 또 다른 인물은 새롭게 바뀌는 것에 불안해한다. 사실 나는 부족한데,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노골적이다. 새로운 변화 앞에서 나는 찬란함을 맞을 만큼 용감하지만 동시에 처음 겪는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내 안에서도 끊임없이 양가적 감정이 공존하고, 이 모순된 두 감정 모두 우습게도 아주 진심이다. 그런 내 감정까지 헤아려주는 것 같다. 또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첫걸음을 내딛는 그 순간에 주목한다. 남에게는 미약해 보이지만, 나에게는 달의 착륙 순간과도 맞먹는 그 첫걸음에 주목한다.

 

그리고 다정하게 위로해준다. 따듯하고 부드럽게, 괜찮다고 토닥여준다.


 

“근데 우리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들면 어떡하지?”

“다시 쓰면 되지.”

“그래도 마음에 안 들면?”

“그럴 땐, 잠시 환상에 사로잡혀 꿈을 꾼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우리 이야기는 앞으로 더욱더 좋아질 거라고.

그럼 마음이 편안해질 테니까.”

 

- <인사이드 윌리엄> 中

 


[포맷변환][크기변환]Dwmu9BiUYAEsdwe.jpg

 

 

 

“당신이란 책을 제대로 읽어봐. 그 속엔 네가 잊었던 문장이 많아.” -<호프> 中



‘나’라는 책은 어떤 책일까. 장르는 무엇이고, 명대사는 무엇이고, 기승전결이 있다면 난 지금 어디에 있나. 우리는 얼마나 ‘나’에 대해 제대로 읽고 있을까? 내가 이 책을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잊은 문장이 너무 많을지도 모를 일이다. 앞서 말한 것 같은 남들에게는 편집해져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나만 알 수 있는 나를 사실은 나도 잊는 것은 아닌지.


이 극은, 내 삶의 일부일 뿐인데 그것에 인생 전체를 투영해서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학창 시절 때는 성적이, 학교 이름이,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회사 이름이, 나의 직함이. 반장이 되면 내 인생이 빛나는 것 같았고 시험에 합격하면 인생이 성공인 줄 알았던. 그것이 내 인생이 전체가 분명 아닌데도, 그때는 내 인생이라고 여겨 매달리고 방황했던 크고 작은 것들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넌 수고했다

넌 충분하다

넌 살아냈다

늦지 않았다



호프는 평생을 혐오와 경멸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다. 자신의 원고도 아닌 다른 사람의의 원고에 사활을 걸며 인생을 바쳤다.

 

그러나 이제 누가 이 원고를 호프의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인생을 증명해내야만 했던 삶, 그러다 결국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삶. 그러나 그 잃어버린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것도 자신뿐. 고난과 역경 뒤 더 이상 ‘미친X’가 아닌 그냥 호프가 되어 자신의 삶을 되찾을 때는, 내 인생의 잃어버렸던 한 조각도 함께 되찾은 기분이 든다.

 

 

[포맷변환][크기변환]ExThPjWVgAUScLk.jpg

 

 

 

내가 지켜야 할 것, 나 자신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한때 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은 결국 지나간다. 시간이 흐름에도 지나가지 않고 늘 존재하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그래서 그 안의 내면을 살펴보아야 한다.

 

내 인생은 외면의 것들로 환산되지 않는다. 나를 이루는 것은 결국 나이다. 외부의 시련이 나를 쓰러뜨릴 수 있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지금 상황이 어떠하더라도, 절대 놓을 수 없는 나의 기개, 정신, 믿음. 이런 것들을 절대 분실하지 않아야 한다.


내 인생이 연극이라면 폐막하고 싶고, 내 인생이 책이라면 절필하고 싶을 때.

 

그러나 결국 나의 인생은 나만이 기억하고 있는 그 자체로 살아가는 예술이 될 것이라고 믿으며.

 

 

 

태그_주영지.jpg

 

 

[주영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