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미래는 불행했던 과거에 저당 잡혀 있다 - 레이디스[도서]

글 입력 2022.12.17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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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레이디스]는 저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녀의 초기 심리소설 16편을 묶은 단편집으로, 작가의 어두운 상상력의 세계와 타인에 대한 한없이 불안한 감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16편의 단편 소설을 쭉 읽다 보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깊은 심연의 불편한 감정들인 ‘단절’, ‘집착’, ‘강요’, ‘강박’, ‘압박’, ‘불안’ 등을 엿볼 수 있다. 평온하고 안온한 삶과는 사뭇 대비되는 감정과 분위기가 기저에 깔려 있는데, 이는 무조건적으로 범죄가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으슥하고 불길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미묘하게 공기가 불편하게 틀어지는 혹은 감정이 동요되어 불안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마 이런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은 저자의 어두운 상상력의 세계와 타인에 대한 한없이 불안한 감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는 어떤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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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불안의 시인’, ‘서스펜스의 대가’ 등으로 불리며 범죄소설과 심리소설 작가로 손꼽혀온 미국의 소설가라고 한다. 1950년 장면 소설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을 시작으로, 50여 년간 [캐롤], [아내를 죽였습니까], [심연], [재능 있는 리플리] 등 수많은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그녀만의 상상력을 세상에 드러냈다.

 

생전에 에드거 엘런 포 상, 오 헨리 상, 프랑스 탐정소설 국제 부만 그랑프리, 미국 추리 작가협회 특별상, 영국 추리작가협회 은상 등을 수상하는 등 그녀의 실력을 인정받아왔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것은 사후인 2008년에 <더 타임스> 선정 역대 최고 범죄소설 작가로 꼽혔다는 것이다. 이번에 [레이디스]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작가지만, 왜 이런 평가를 받는지는 바로 납득이 갔다.

 

 

 

# 세인트 포더링게이 수녀원의 전설


 

가장 앞서 소개된 <세인트 포더링게이 수녀원의 전설>은 외부와 단절하고 통제하는 수녀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은 오직 여자만이 존재하는 수녀원에 남자아이가 들어오며 사건이 발생한다. 어느 날 한 수녀가 길가에 버려진 남자 갓난 아이가 눈에 밟혀 ‘메리’라는 이름을 부여하여 수녀원에서 키우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세인트 포더링게이 수녀원’은 남자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것이다. 제자들에게 남자에 대해서 일체 가르치지 않으며, 도서관에도 남자가 등장하는 책도 아예 들여놓질 않는다. 하지만 메리는 점차 이 상황에 의문을 가지며 남자에 대해서 알아내려고 하지만, 수녀들은 계속 의도적으로 숨기길 위해 노력하며 갈등을 빚다가 결국 메리의 반항심을 어쩌지 못하고 수녀원 밖으로 보내주게 된다.

 

 

"저건…” 크레이겐퍼톡 수녀는 숨찬 소리로 경멸을 담아 말했다. “남자다!”

“왜 얼굴에 털이 났어요??

크레이겐퍼톡 수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남자란 어린 남자아이가 자라서 되는 거야.” 그녀는 애매하게 돌려 대답했다. “하지만 넌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남자들은 다 없어졌으니까.”

크레이겐퍼톡 수녀는 대답했다. “남자아이란 여자아이가 아닌 아이야.” 아이가 여자가 아니면 몹시 끔찍한 일이라는 말투였다.

 

- 세인트 포더링게이 수녀원의 진실 中

 

 

이 소설에서 가장 찝찝하게 느껴졌던 것은 통제된 공간에서 제약된 정보만을 가르치고 의구심을 지우는 교육이지만, 괜찮은 교육을 하고 있다 믿고 있는 수녀들의 생각이었다. 자유를 빼앗고 원하는 내용만 주입식 교육을 시키는 것이 과연 인간적으로 대우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선 ‘통제’와 ‘편향적 정보’라는 것만으로도 이 질문엔 ‘NO’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정과 별개의 이야기지만, 이 <세인트 포더링게이 수녀원의 진실>은 누군가 장편 소설이나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로 각색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몇 페이지 되지 않은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내용을 깊이 들어가고자 하면 충분히 그럴 여지가 너무나 많은 내용이라고 느껴졌다. 특히, ‘세인트 포더링게이 수녀원’은 누구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다는 결말 부분을 보며 사라지게 된 이유를 더 파헤치는 얘기가 뒤에 전개돼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미지의 보물


 

또 다른 소설인 <미지의 보물>은 앞의 <세인트 포더링게이 수녀원의 진실>과는 다르게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지의 보물>은 지하철 한 켠에 방치되어 있는 가방 하나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버려져 있는 가방을 노리기 위해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장애인 남자와 키 작은 남자가 있다. 둘이 은근한 눈치를 보던 중 잠시 키 작은 남자가 한 눈을 판 사이 장애인 남자가 가방을 들고 지하철 밖으로 나섰다. 이를 본 키 작은 남자는 그를 따라잡아 본인 거라고 뭐라 하며 가방을 빼앗아 갈 길을 간다. 장애인 남자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뺏긴 상황에 분노하며 그의 뒤를 쫓아가며 이어지는 이야기로, 쫓고 쫓기는 이들의 불안하고 불편한 감정을 보여준다.

 

버려진 가방을 향해 쫓고 쫓기는 이야기는 뭔가 실제 내 주변에 일어날 것만 같은 사건이라 몰입감이 있었고, 특히 쫓기는 남자의 의문에서 시작하여 점차 고조되는 공포의 감정은 언젠가 느껴본 감정이라 더욱 이입이 됐던 것 같다.

 

예전에 한번 어두운 밤에 아무도 없는 길을 홀로 걸어가던 중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들리며 점차 발걸음이 가까워질 때, 혹시 하는 마음이 들며 긴장감과 불안감에 휩싸였던 적이 있다. 실제로 쫓겼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둡고, 아무도 없고, 누군가가 있다는 조건 만으로 불안한 감정이 생겼고 이 어두운 감정의 씨앗은 나도 모르는 새 급속도로 자라나 좋지 않은 상황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며 공포의 감정으로 점차 커져갔었다. <미지의 보물>을 읽고 있자니, 이 경험을 했을 때의 기분이 함께 떠올라서인지 읽고 난 뒤에도 조금 찝찝한 기분이 이어지기도 했다.

 

*


책을 읽고 나서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다가 책 소개로 이런 내용을 봤다.

 

공포는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불길한 예감에서 오지만 그 미래는 불행했던 과거에 저당 잡혀 있다. 감정이 바뀌는 순간마다 과거에 겪었던 일을 돌이켜보는 주인공들, 이들은 누구보다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기 위해 미래를 꿈꾸지만 경험의 조각들은 이들을 나쁜 과거로부터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미래가 과거의 반복일 수 있다는 예감은 공간을 이동하고 만나는 사람을 바꾸어도 계속된다.

 

‘미래는 불행했던 과거에 저당 잡혀 있다’는 내용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트라우마’가 바로 이 내용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러한 트라우마를 자극하며 인간의 불안한 감정을 끄집어 내는 것이 이 작가가 가진 대단한 능력이라는 것을 이 [레이디스]라는 단편 소설집을 보며 느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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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미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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