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승자 없는 운동장 - 연극 '축제'

글 입력 2022.12.15 13:3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221215163650_oryporlf.jpg

 

 

*

연극 <축제_Parade>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운동장의 괴담


 

IMG_3665.JPG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지는 게 타당하다고 보는 능력주의 사회에서 성취를 이루지 못한 개인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의 불행은 능력을 갖지 못한 그의 책임으로 간주된다. 능력주의 사회의 시대정신은 ‘각자도생’이다. 여기서 함정은 능력주의의 ‘능력’이라는 게 무엇이고,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인지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질문하는 대신, 비난받는 당사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능력을 기르는 데만 집중한다.


‘차세대 열전 2022!’ 연극 분야 선정작 <축제_Parade>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능력주의 신화를 아이들의 운동장으로 가져온다. 여기서 운동장이란 비유적 표현만이 아니다. 연극의 배경은 실제 운동장이기 때문이다.

 

5학년 3반 아이들은 운동회를 앞두고 운동장에서 준비가 한창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 운동장에서는 마음껏 달리기가 어렵다는 것. 운동장이 학교 옥상에 있기 때문이다. 끝까지 달려나가면 밑으로 떨어지는 이 운동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른들 사이에서는 옥상에 지어 돈도 공간도 아낄 수 있었다는 호평이 오가는 곳이다.


처음부터 어른들의 편의에 맞게 만들어진 이 공간에서 아이들의 비극이 시작된다. 운동회 연습을 하던 중 아이들은 웬 남자에게 괴담을 듣는다. 옛날에 5학년 3반에 ‘쓸모가 없는’ 아이 한 명이 있었는데, 그 애가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후부터 매년 운동회날이면 쓸모가 없는 아이 한 명의 다리가 뎅강 부러진다는 이야기다.

 

아이들은 모두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며 웃어넘기지만, 왠지 찝찝하다. 오늘따라 옥상 운동장이 기울어 보인다. “다 함께 무적파워”를 외치며 운동회를 기대하던 아이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없던 물음이 떠오른다.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일까?’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IMG_3804.JPG

 


한쪽 다리를 저는 정호, 부모님이 운동회에 못 오는 영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우 등 아이들은 저마다의 결핍을 가지고 있다. 괴담을 듣기 전에는 각자 차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섞여 놀던 이들이 이제는 결핍을 숨기기에 바쁘다. 쓸모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면 안 되기 때문이다.

 

운동회날 당일, 다리가 불편한 정호는 자연스럽게 기피 인물이 된다. 정호와 한팀이 되면 꼴찌가 될 수도 있다. 급기야 계주 경기에서는 아이들에 의해 강제로 선수 자격을 빼앗기기까지 한다. 정호는 자신은 운동회에 참여할 수 없는 거냐며 묻는다.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관객석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정호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어른은 관객을 제외하고는 운동회를 진행하는 남자뿐이다. 아이들을 보호하고 도와야 할 그는 오히려 아이들의 경쟁을 부추긴다. 계속 긴장한 모습의 아이들과 달리 시종일관 유쾌한 모습이다.

 

그는 운동회의 규칙을 만든 사람이지만 그것을 책임지는 사람은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정호에게 앞에서는 대화를 하자며 미소 짓고, 뒤에서는 윽박지르기도 한다. 옥상 위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든 사람, 운동회의 주최자, 급이 맞지 않는 친구와는 어울리지 말라던 민준의 엄마… 그에게서 수많은 어른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 어른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상한 사람은 다리가 불편한데도 운동회에 참여하려는 정호, 그런 정호를 옹호하는 건우 같은 아이다.


쓸모없는 사람의 다리가 뎅강 부러진다는 괴담 속에서 쓸모가 없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또 쓸모가 없음을 판단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그 질문까지 다다르지 못한 채 ‘쓸모없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 서로 싸우는 아이들의 모습은 현실의 축소판이다. 문제 제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규칙을 지키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로 정호의 입을 막는 것조차 현실을 똑 닮았다.

 

 

 

잃어버린 축제


 

IMG_3756.JPG

 


축제의 즐거움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놀며 ‘함께’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 있다. 축제이기에 나도 남에게 관대해지고 나 또한 관대하게 받아들여진 기억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 연극에서 축제가 될 수 있었던 운동회는 쓸모없는 아이를 가려내는 테스트로 전락한다. 어쩌면 남자의 괴담은 결정적인 방아쇠가 되어줬을 뿐, 마음껏 뛰어놀아야 할 운동장이 옥상에 있었을 때부터, 그 운동장이 약간 기울었다는 걸 누군가 알아챈 순간부터 비극이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아이들 중에도 규칙이 타당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었다. 바로 반장인 건우다.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둔 건우는 아버지 말에 따라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용기 있는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야말로 ‘이야기’이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신념이 현실에서 무용하다는 것을 깨닫자 그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행동한다.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신념을 유지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신념은 꺾이고야 만다. 이야기의 끝에서 가장 정의로웠던 건우가 희생자가 된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수많은 '건우들'의 소식을 여기저기서 보고 듣는다. 변화는 지지부진하다. 희생되는 순간은 극적이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아무도 희생된 사람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게 내가 아니라는 사실에 조용히 안도하며 몸을 웅크리고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지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온다. 5학년은 6학년이 되고, 6학년은 중학생이 될 것이다. 올해는 넘겼을지라도 내년은 장담할 수 없다. 매번 쓸모 있는 사람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평온하고 즐거운 사람은 이 규칙을 만든 진행자뿐이다.

 

축제를 잃어버린 자리에 패자만 있는 싸움이 남았다.

 

 

[김소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