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슈퍼 리그가 실패한 이유 - 축구에서 브랜딩을 찾다 #8

글 입력 2022.12.1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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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어려운 시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혁신’을 요구받는다. 혁신. 묵은 관습이나 조직, 방법 등을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새롭게 바꾸는 것. 여기서 핵심은 ‘새로운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이 방법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남충식 작가가 쓴 <기획은 2형식이다>를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책에서는 복잡한 기획의 과정을 두 단계로 간단히 요약한다. 1. 문제를 찾고, 2. 그에 걸맞은 답을 도출하는 것. 이때 우리는 보통 문제와 해결 중 더 중요한 것으로 '해결'을 꼽는다. 창의적이고 번뜩이는 실마리야말로 기획의 정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오히려 해결보다는 문제를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해결책을 도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이길 수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혁신의 첫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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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축구계에는 흥미로운 소식이 돌았다.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 빅클럽들을 주축으로 ‘슈퍼 리그’가 출범한 것이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보기 어려운 빅클럽들 간의 맞대결을 매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축구팬들의 관심이 순식간에 모였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프로젝트는 첫발을 떼기도 전에 실패했다. 출범을 선언한지 불과 4일 만의 일이었다. 각 리그의 사무국과 UEFA가 가장 강력하게 반대 목소리를 냈다. 선수들과 감독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팬들도 반대했다. 모두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힌 슈퍼리그는 처음 참가를 선언한 12팀 중 9팀이 탈퇴 의사를 밝히며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럼 슈퍼 리그는 왜 실패했을까? <기획은 2형식이다>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슈퍼 리그 이사회에 따르면 현대 축구는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선수들의 임금 등이 높아지면서 재정 부담이 심해졌다는 점(코로나19도 한몫했다). 둘째, 축구의 인기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점. 슈퍼 리그는 이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었다. 대회 수익을 통해 재정을 확보하고, 빅클럽 간의 대결을 통해 화제성을 높이고 사람들의 관심 끌어모으려 한 것이다. 하지만 슈퍼 리그가 정말로 좋은 해결책이었을까. 그들의 문제 정의는 올바른 것이었을까.


먼저 재정 문제부터 살펴보자. 오늘날 많은 구단들이 재정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건 사실이다. 특히 코로나19의 타격이 컸다. 하지만 슈퍼 리그에 대한 논의는 최소 2018년부터 진행 중이었다. 코로나19가 상황을 급발진 시키는 트리거였을진 몰라도, 총알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진짜 책임은 구단들 본인에게 있다. 그들의 방만한 경영이 현대 축구를 적자의 늪으로 몰아갔다.


이적시장에서 역대 최고 이적료는 지난 2017년 파리 생제르맹이 바르셀로나에게 지불한 네이마르의 이적료다. 이때 이들은 2억 2,200만 유로(한화로 약 3,000억 원)를 지불했다. 반면 03/04시즌, 최초로 프리미어 리그 무패 우승을 달성한 아스날이 앙리, 비에이라, 베르캄프 등을 영입하여 사용한 이적료는 7,000만 유로 정도다. 시간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더라도 상승 폭이 지나치다. 


그렇다면 선수들의 임금(이적료 포함)이 높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구단들의 영입 경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각 구단(특히 빅클럽)은 선수를 육성하기보단 이미 완성된 선수들을 영입하여 당장 좋은 성적을 내는 것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단적으로 바르셀로나만 하더라도 과거엔 ‘라 마시아’라 불리는 유스 시스템을 통해 육성한 선수들로 유럽 무대를 휩쓸었지만 현재의 바르셀로나 스쿼드엔 라 마시아 출신이 거의 없다. 이러한 이유로 구단 간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선수들의 몸값은 자연스레 올랐다. 문제는 이렇게 데려온 선수들의 이적이 항상 성공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실패한 선수들도 더러 있다. 그리고 그 실패는 구단에겐 고스란히 손해로 발생했다.


물론 슈퍼 리그 이사회의 말마따나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는 구단들에겐 대회 수익이 절실할 순 있다. 하지만 그건 임시방편이다. 슈퍼 리그가 출범하면 선수들이 뛰어야 하는 경기는 늘어난다. 이는 선수들의 체력이나 컨디션뿐만 아니라 계약 조건에도 영향을 준다. 선수들은 공짜로 뛰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빅클럽의 경우 보통 3개 대회(리그, 컵 대회, 유럽 대항전 등)에 참가하는데 슈퍼 리그까지 나가야 한다면 로테이션을 위해 후보 선수들을 추가로 영입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도로 아미타불인 것이다.


다음은 축구의 미래 문제다. 슈퍼 리그는 줄어드는 축구의 인기를 빅클럽 간의 대결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스타플레이어가 즐비한 빅클럽 간의 대결이야말로 화제성을 모으기에 좋은 소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빅클럽 간의 대결이 인기 있는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다. 희소성 때문이다. 유럽 대항전이나 프리 시즌이 아니면 각 리그의 최강자들이 맞붙는 모습을 볼 기회는 거의 없다. 그렇기에 축구 팬들은 이 흔치 않은 기회에 열광한다. 하지만 매주 펼쳐질 슈퍼 리그는 그 희소성을 제거해 버린다. 돈 많은 구단들의 평범한 대결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과연 그때가 되어서도 사람들은 빅클럽 간의 경기에 지금처럼 열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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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슈퍼리그)

 

 

결과적으로 슈퍼리그를 통해서는 현대 축구의 어떤 문제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부차적인 문제가 더 크다. 그중 하나는 축구의 선순환 구조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유럽 대항전에 나가기 위해서는 각 구단들은 자신이 속한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 한다. 이는 리그 내 경쟁을 촉진시켜 팬들에게 보다 많은 볼거리를 선사한다. 한편 UEFA는 유럽 내 각 리그의 수준에 따라 진출권 티켓을 차등적으로 배분한다. 따라서 각 리그의 사무국도 보다 많은 진출권을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인 투자와 노력으로 리그의 경쟁력을 높일 수밖에 없다. 또한 유럽 대항전은 예선이라 할지라도 참가만 하면 적지 않은 수익을 제공한다. 이는 중소 클럽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슈퍼 리그는 다르다. 슈퍼 리그를 출범 시킨 레알마드리드의 페레즈 회장은 이대로 간다면 모든 구단이 2024년엔 파산할 거라고 했다. 축구를 적자로부터 구하기 위해선 슈퍼 리그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슈퍼 리그에 참가하는 20팀 중 15팀은 레알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 이미 부유한 빅클럽들이다. 이들은 지난 시즌의 성적과 무관하게 항상 대회에 출전이 가능하다. 이는 공정하지도 않을뿐더러, 유럽 대항전과 달리 축구의 선순환 구조에도 기여하지 않는다. 물론 나머지 다섯 팀은 성적에 따라 중소 클럽들을 초청할 예정이라 하지만 유럽 대항전과 비교하면 그 기회가 터무니없이 적다.


결국 슈퍼 리그가 말하는 축구의 위기란 대회를 주도하는 빅클럽들만의 위기였던 것이다. 문제에 대한 잘못된 정의와 잘못된 해결책은 여론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선수와 감독들에겐 부담으로 작용했다. 팬들은 돈 때문에 축구를 배신했다고 참가팀들을 비난했다(특히 참가팀이 속한 리그의 국내 팬들의 반감이 컸다. 자국 리그의 흥행을 방해하고, 중소 클럽을 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 팬들은 찬성하는 쪽이 많았지만 구단에겐 1년에 한 번 경기장을 찾아올까 말까 한 해외 팬보다는 국내 팬들의 여론이 더 중요하다). 제일 먼저 잉글랜드 팀들이 탈퇴했다. 이탈리아의 2팀과 스페인의 1팀도 잇달아 탈퇴했다. 출범 4일 만에 슈퍼 리그는 무기한 연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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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슈퍼리그)

 

 

이러한 사례를 통해서 브랜드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브랜드는 일종의 상징이다. 브랜드만으로는 고객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줄 수 없다. 그런데 어째서 수많은 사람들이 애플에 열광하고, 벤츠를 욕망하는 걸까. 그건 오직 브랜드만 줄 수 있는 특별한 만족감 때문이다.


기능적인 만족은 성능이 더 좋은 상품이 있다면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하다. 하지만 정서적인 만족은 다르다. 브랜드와 고객 사이에 애착 관계를 만들기 때문이다. 애착이 생긴 고객은 그 사실만으로 브랜드의 열렬한 팬이 된다. 브랜드의 상품을 계속 구매하고, 브랜드가 지닌 가치를 자발적으로 퍼뜨린다. 경쟁사에서 아무리 우수한 상품을 내놓아도 이 애착 관계는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수많은 브랜드가 브랜딩을 위해 노력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고객에게 애착을 심어주기 위해, 만족을 느끼게 하기 위해 브랜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고객이 지닌 문제를 해결해 주면 된다. 하지만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고객의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들의 문제는 현실적인 차원과 상상적인 차원으로 나눌 수 있다. 이중 브랜드가 해결할 수 있는 건 상상적인 차원의 문제다. 그렇기에 브랜드는 신중해야 한다. 고객의 문제를 제대로 정의해야 한다. 상품이 해결할 문제를 브랜드가 해결할 문제로 인지하는 오류를 범해선 안 된다. 특정 상품이 아닌, 특정 브랜드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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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발뮤다)

 


이와 관련하여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의 가전 브랜드인 ‘발뮤다’다. 지난 2003년, 테라오 켄이 설립한 이 브랜드는 출시 초기부터 ‘내가 갖고 싶은 상품을 만든다’라는 모토 아래 독특한 디자인으로 매니아적인 인기를 끌었다. 흠이라면 가격이 좀 비싸다는 것이었다. 처음 출시한 노트북 거치대는 그가 직접 알루미늄을 깎아 만들었다. 직원은 고작 1명, 테라오 켄 본인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량 생산은 불가능했다.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들었다. 가격이 비싸지는 건 불가피한 일이었다.


물론 제품이 비싸더라도 그 가치를 알아봐 주는 고객이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테라오 켄도 이러한 논리를 발뮤다의 생존 전략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물질적인 여유가 뒷받침될 때 가능한 일이었다. 2008년에 불어닥친 미국 발 세계 금융위기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여유를 앗아갔다. 발뮤다는 직격탄을 맞았다. 근근이 들어오던 주문도 끊겼다. 어려운 시대에 사람들은 가성비 좋은 제품들을 찾았다. 경쟁자들은 잇달아 저렴한 가격으로 본인의 제품을 고객들에게 어필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뮤다의 문제로 높은 가격을 지목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격을 낮추는 건 발뮤다 입장에선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격을 낮추려면 제조 방식을 아예 바꿔야 했다. 공장식 설비를 들이고 대량 생산 라인을 마련해야 했다. 직원들도 더 필요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투자나 대출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렇다면 발뮤다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테라오 켄은 이 문제를 다르게 정의했다. 그가 보기에 발뮤다의 진짜 문제는 가격이 아니었다. 아무리 먹고살기가 어려워도 사람들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 다만 그 가치의 기준이 더 명확해질 뿐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발뮤다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건 비싸서가 아니라, 비싼 가격을 지불하면서까지 발뮤다의 제품을 구매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가격을 낮추는 대신 고객에게 발뮤다 제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더하기로 결정했다. 기존 발뮤다의 독특한 매력에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혁신을 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출시한 게 바로 그린팬이었다. 기존의 선풍기는 시원하긴 하지만 오래 쐴수록 묘한 불쾌감이 올라왔다. 테라오 켄은 그 원인을 회전풍으로 봤다. 회전풍 특유의 인공적인 느낌이 문제였다. 해결 방법은 선풍기에서 자연에서 불어오는 듯한 부드러운 바람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선풍기의 중앙에 작은 날개를 추가했다. 두 개의 날개가 만든 두 개의 바람이 서로 부딪히면서 소용돌이를 깨뜨렸고 훨씬 자연스러운 바람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특수 모터도 달아 소음도 줄였다. 그러자 고객들이 반응했다. 40만 원이 훌쩍 넘는 비싼 가격에도, 그린팬은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갔다.


발뮤다 토스터기도 이러한 혁신의 결과물이다. 바베큐 파티에서 우연히 구워 먹은 식빵의 맛이 도저히 잊히지 않았다. 겉은 바삭바삭하면서, 속은 촉촉했다. 덕분에 빵의 고소함과 풍미가 배가 되었다. 테라오 켄은 이 맛을 자사의 토스터기에서도 재현하기를 바랬다. 그렇게 연구와 현장 조사를 거듭하다 스팀 기능이 있는 전기 가마에서 해답을 찾았다. 발뮤다는 이 스팀 기능을 토스터기에 추가했다. 여기에 수많은 실험을 통해 쌓은 데이터로 빵을 굽는 최적의 온도 메커니즘까지 개발했다. 고객들은 이번에도 열광했다. 대성공이었다. 이제 발뮤다는 단순히 예쁜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었다. 고객의 필요를 디자인하는 회사였다. 올바른 문제 인식이 가져온 올바른 해결, 올바른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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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발뮤다)



세상에 그냥 발생하는 일은 없다. 환자가 어디가 아픈지 알아야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릴 수 있듯, 기획도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야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 <기획은 2형식이다>의 저자는 다음의 세 문장을 명심하길 당부했다. 문제는 주어진 게 아니라 규정되는 것이다. 문제 규정은 가장 창의력이 필요한 과정이다. 문제 규정은 기획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진짜 문제를 찾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하는 브랜드의 여섯 번째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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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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