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평범한 일상을 스릴러로 바꿔줄 서스펜스 - 레이디스

글 입력 2022.12.12 12:3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일상에 숨은 유희를 곧잘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겉보기에는 분명 남들과 다를 것 없이, 무료하기까지 한 매일인데, 그들은 잔잔한 하루에서도 흥밋거리를 포착하고 발굴한다. 그들의 일상은 납작한 평지가 아니라 크고 작은 고랑과 이랑의 연속처럼 보인다.


이처럼 느릿느릿 평지 위를 굴러가는 레일바이크를 위아래로 굽이치는 롤러코스터로 바꾸는 능력은 어찌 보면 소설가에게 필수적인 소양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소설집 <레이디스>의 저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또한 이 분야에 일가견이 있다.

 

 

 

일상을 스릴러로 바꾸는 <레이디스>


 

s-tsuchiya-yV9gbx4K3-s-unsplash.jpg

 

 

횡단보도의 흰 칸을 피해서 건너기, 혹은 보도블록의 금을 밟지 않고 지나가기. 어린 시절 너 나 할것없이 해봤을 놀이다. 그 놀이를 다시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이 하이스미스의 소설이다.

 

이런 놀이를 할 나이는 지났는데, 주변에서는 다들 멀쩡하게 걸어가고 있는데, 설령 밟더라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데.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정말 사실인가?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하이스미스의 소설에는 이런 식으로 강박적이고 망상적인 생각을 하는 주인공이 자주 등장한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이 지나다니던 인도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그 대신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우고 신경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긴 채 한 발 한 발 내디뎌야 하는 외줄이 자리한다. 하이스미스가 그리는 세계는 그렇다. 지루한 일상을 조각조각 쪼개서 들춰보고는 수상한 구석을, 의심할 구석을 찾는다.

 

다른 이들은 일상을 사는데 저 혼자 스릴러 영화를 찍는 주인공을 보면 독자는 황당해하기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공과 함께 긴장하고 불안해한다. 사실 주인공이 하는 그 말도 안 되는 상상은, 누구나 스치듯 해본 적 있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낯선 도시에 온 뒤로는 익숙하던 것에서 미시감을 느낀다거나, 내게 아는 척하는 저 남자가 왠지 모르게 불길하다거나, 내 대처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 내 직장에 우연한 위기가 닥치길 바란다거나. 이런 생각들이 비논리적이고 떳떳하지 못하다고 받아들여지는 탓에 우리는 무의식중에 그 망상의 싹을 일찍이 잘라버린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이미 한 번 싹 튼 감정을 나는 정말 모르는 일이라고 부정할 수는 없을 테다.


위의 상상은 <레이디스>에 수록된 16편의 단편 소설 중 <공 튕기기 세계 챔피언>, <모빌 항구에 배들이 들어오면>, <영웅>에서 차례대로 만나게 될 이상한 생각들이다. 하이스미스의 세계에서는 이와 같은 망상의 싹이 완연히 자라나 꽃을 피운다. 망상에 그치기만 할 때도 있지만, 더 이상 망상이 아닌 예견이 될 때도 있고, 심지어는 그 망상이 현실에 마수를 뻗기도 한다.

 

<레이디스>에는 망상의 끝에서 만난 현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레이디스 표지-최종4.jpg

 

 

 

망상을 현실처럼 보여주는 묘사


 

독자를 주인공의 시점으로 끌어당기는 힘에는 뛰어난 묘사력이 크게 작용한다. <레이디스>는 눈으로 보는 듯 구체적인 배경 묘사는 물론이고, 감정을 표현할 때도 섬세하다.

 

그 예시로, 단편 <돌고 도는 세상의 고요한 지점>의 일부를 소개한다. <돌고 도는 세상의 고요한 지점>은 전체를 필사하고 싶어질 정도로 거의 모든 부분이 좋았다.

 

[그녀 눈에는 거리에 사람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흰 개를 데리고 가는 여자나 두서너 군데 창턱에 걸쳐진 팔들이 자신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는 아예 생각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거리의 고요함, 시끄럽게 알아봐달라고 소란을 피우는 저 이상한 고요함을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믿지 않았다.] (p.150)


특히 위 문장은 거리의 선명한 시각 묘사만큼이나 주인공의 정서 전달도 또렷하게 되어서 인상적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 나름의 소란스러움이 있음 적막하게만 다가오는 거리의 공기가 먹먹하게 느껴진다. 또한 본인은 거리를 채우는 다른 사물이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라고 인식하는 듯한 주인공의 관점이 돋보인다.


다른 단편 <공 튕기기 세계 챔피언>에서 주인공 ‘엘스퍼스’가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알 수 없는 불안에 휩싸이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이 장면은 단편 <공 튕기기 세계 챔피언>뿐만 아니라, <레이디스> 전체, 더 넓게 보면 심리 서스펜스 장르 전반에 깔린 기묘하고 불분명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고 본다.

 

아래의 문장이 맘에 든다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서스펜스 작품을 맛보길 추천한다.

 

[이 집과 이 아침의 시간은 어딘가 통째로 잘못되어 있었다. 느끼고 듣고 맛보고 냄새도 맡을 수 있는 불편한 무언가 있었다. 눈으로 볼 수 없을 뿐이었다. 그 무언가가 엘스퍼스로 하여금 웅크리고 앉아 숨을 죽이게 하고, 엄마에게 감정을 전달할 정확한 단어를 찾을 수 없게 만들었다.] (p.126)

 

 

 

아트인사이트 태그.jpg

 

 

[김지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