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삭제된 기억 속 연정(戀情) [영화]

영화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글 입력 2022.12.03 12: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31.jpg

 

 

없는 기억 속에서 사랑을 찾아 헤맬 수 있을지 궁금했던 것이 신호탄이었다.

 

추억은 상기할수록 마음이 슬픔에 절게 만들고, 순간 되돌려지는 행복감에 웃음을 짓게 만든다. 추억이 상기되는 것은 의자에 앉아 영화를 보는 것처럼 단순한 행동이 아니다. 추억에 따라 남는 스치는 촉감, 길거리를 다니며 나는 계절 내음, 낮게 속삭이던 목소리처럼 복합적으로 모여 만든 기억은 감정마저 그 시절로 돌아가게 만든다.


기억만이 사랑이 마음에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삭제된 기억에서 사랑을 찾는 영화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절제된 감정이 관객의 마음을 더욱 사무치도록 만든다.


잠에 들고 나면 기억이 사라지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주인공 마오리(후쿠모토 리코 분)와 누구에게도 눈에 띄지 않는 남주인공 토오루(미치에다 슌스케 분)의 사랑 이야기는 시작부터 어긋났다. 동급생의 괴롭힘에 거짓 고백을 해버린 토오루는 마오리가 당연히 자신의 고백을 거절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예상과 달리 마오리가 고백을 받아주면서 두 사람의 연애가 시작된다.


토오루가 거짓 고백을 한 사실을 밝히지만 소문이 퍼진 상태에서 연애를 무를 수 없다며 마오리는 가짜 연애를 제안한다. 연애를 하기 위해 마오리가 제시하는 조건은 우습다. 첫 번째, 방과후까지 학교에서 말 걸지 말기. 두 번째, 연락은 간단하게 하기. 세 번째,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지 말기. 마오리의 이기심이 들어나 보이는 세 가지 조건은 어렵지 않아 보여 토오루는 조건을 승낙한다.

 


[크기변환]common (9).jpg

©TOHO

 

 

시작은 해피 엔딩으로 끝날 것 같은 여느 하이틴 로맨스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이지만, 영화 속 사정은 달콤하지 않다.


충분히 사랑하지 못 하고, 충분히 슬퍼할 수 없는 마오리의 감정은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헤아리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오리는 타인을 배려하며 사는 인물이다. 자고 일어나면 기억이 없어지는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저항하지 않고 매일 자신이 쓴 일기를 읽으며 머릿속에 저장을 하고 지난 기억이 살아있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자신의 병을 타인에게 들키지 않게 노력하는 내면의 힘은 강인하면서도 안쓰럽다. 자신이 모르는 내용이 다른 사람의 입으로 전해져 들었을 때 스스로가 느끼는 상실감이 대단할 텐데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몰라서 미안하다는 말을 건넨다.


스스로는 괴로워하면서도 다른 이에게는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무던히 노력한다. 이기적으로 보이던 세 가지 조건조차 토오루를 위한 조건이었다. 혹여나 자신의 병을 알았을 때 당황할 토오루를 지키기 위한 마오리만의 방법이었다.

 

 

[크기변환]rr.jpg

©TOHO

 

 

토오루는 흑백 인물이다. 입고 다니는 옷마저 대부분 탁한 색이다.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을 가정 속 아픔을 지닌 채 친구를 많이 사귀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살아간다. 다른 영화에서 만났다면 엑스트라였을 인물이다. 그러나, 회색빛 토오루는 마오리 앞에만 서면 색이 생긴다. 마오리를 지키기 위해서 행하는 행동들은 색이 없던 토오루에게 색을 칠하고 있던 것이다.


웃음이 많아 보이지 않던 토오루가 마오리를 향해 진정으로 웃음을 지을 때는 사랑의 감정이 온전히 보는 이에게 전달된다. 자고 일어나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랑을 이어간다는 것이 불길을 뛰어드는 것과 다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토오루는 마오리를 사랑하며 마오리의 삶에 자신이 해피 엔딩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러나, 토오루의 온전한 힘으로는 해피 엔딩을 새길 수 없었다. 두 주인공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토오루의 누나와 마오리의 절친 이즈미는 두 주인공 서로에게 남겨진 끝이 영원한 행복이기를 바라며 기억을 만들어나간다.

 

주변 인물의 노력은 영화를 즐기는 묘미가 된다. 영화 속 이야기는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풀어나가고 있지만, 특별한 사정을 가진 주인공 덕분에 오히려 주변 인물들에게 감정 이입이 되었다.

 

 

[크기변환]reer.jpg

©TOHO

 

 

마오리의 사정을 알고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친구인 이즈미는 가장 소중한 친구를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는 인물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마오리의 전화 한 통이면 한걸음에 달려온다. 마오리는 가지지 못한 기억을 이즈미는 전부 가지고 있을 때, 이즈미는 무참히 다가오는 어두운 파도들을 혼자서 감당해야만 했다.


혼자서 슬픔을 감당하면서도 누군가를 탓하지 않는다. 원래 해야 했던 일인 것처럼 마오리를 위해, 토오루를 위해 행동하는 이즈미의 간절함은 주인공들의 사연만큼 마음을 울린다. 이즈미는 이 영화의 마지막 같은 캐릭터다. 이즈미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두 사람의 사랑은 어설픈 결말을 맺었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자신이 아닌 마오리와 토오루를 생각하는 이즈미는 이 영화의 마지막이다.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기억이라는 것은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시간이 많이 지나 빛바래지면 결국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허나, 머릿속 기억은 희미해지더라도 가슴에 깊게 박힌 감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삭제된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싸우고, 모든 기억을 가진 채로 아픔을 감내하는 영화 속 인물들의 사랑은 그 어떤 감정보다 더 귀중하다.


마음에 자리를 잡은 사랑이 아득해지는 중이라면 이 영화를 통해 사랑을 충전하는 것을 추전한다. 두 주인공의 사랑만이 아니라 주변 인물이 전달하는 사랑은 우리 삶을 돌아보게 만들 것이다.

 

 


견유빈.jpg

 

 

[견유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