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가족의 울타리에 들어온 '요정'

영화 '요정'
글 입력 2022.11.28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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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벌어먹고살기 바쁜 사람들. 지친 몸과 마음을 누이고 일으키길 반복하다 보면 뜻밖의 행운을 바라게 된다.

 

돈 걱정에서 자유로워지고, 그제야 행복과 안정을 얻을 수 있으리라 예상하며. 영화 '요정' 속 인물들도 하등 다를 바 없다. 같은 마음으로 같은 것을 독차지하려다가 생기는 잡음과 배신, 쿰쿰한 속내를 서로 확인해가는 평범한 일과였으니.

 

 

SYNOPSIS

  

카페의 수익률이 집안의 서열을 좌우한다!

 

한 동네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영란’과 ‘호철’은 은근한 신경전 이후 로맨스로 직행하며 부부가 된다. 남은 계약 기간 때문에 따로 가게를 운영하게 된 ‘영란’과 ‘호철’. 가게의 수익이 높아지면 집안의 서열이 높아지고, 수익이 낮아지면 서열이 낮아지는 웃지 못할 미묘한 경쟁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사고로 의문의 청년 ‘석’을 만나 함께 지내게 된다. ‘석’이 ‘호철’의 카페에서 일을 돕자 카페의 수익률이 급상승하고, 단번에 뒤집힌 수익률에 이상함을 느낀 ‘영란’은 ‘석’의 존재만으로 장사가 잘 된다는 것을 알아채고 유치한 눈치싸움을 벌이게 되는데…

 

올겨울 찾아온 뜻밖의 행운. 당신도 만날 수 있어요, 요정.

 

 

*

아래 내용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건 전개 방식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서로 라이벌인 카페 사장끼리 눈이 맞은 건 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오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청년 '석'과 가까이 살게 된 게 부부의 음주운전 때문이라니. 소주 2잔만 마셔도 법률상 운전이 용인되지 않는 혈중 알코올 농도까지 이른다는 걸 알아서일까. 아차 싶었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지독히 현실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술 한 잔 걸치고 운전하는 경우가 드문 일인가.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지 않을 뿐이지 이 정도 일은 꽤 흔할 것 같다.


골목 코너를 돌다가 석은 차에 받혀 잠든 듯 죽은 듯 몸져누웠고, 부부는 석을 집에 데려와 방 하나를 내어준다. 이건 석이가 내건 조건이었다. 아무것도 따지지 않을 테니 며칠 신세 좀 지게 해달라고. 하릴없는 석은 영란에게 탐탁지 않았다. 이 동네 사람 같지 않은 낯선 존재였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정보를 샅샅이 캐내고 싶은 마음도 없는 것 같다. 적당한 때에 알아서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둘은 데면데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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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상대적으로 무른 성격의 호철은 영란보다는 살갑게 그를 대한다. 어쩌면 자신의 언니 부부에게 일방적으로 도움만 퍼붓는 영란에 대한 답답함에서 벗어나고자 눈길을 돌린 걸지도 모르겠다. 언니의 남편, 그러니까 형부의 입원으로 영란은 며칠 동안 언니의 가게에서 대신 일하느라 자신의 가게 문은 닫는다.

 

다소 어처구니없는 선택지이지만, 영란에게 언니는 하나뿐인 가족이자 엄마였다. 어릴 때 돌보아준 온정을 잊지 못해서인지 얼마나 무모한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볼멘소리를 하던 호철, 되레 아쉬운 소리로 영란이 맞받아치자 할 말을 참고 삼킨다.


그렇게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던 둘. 평소와 비슷했을 흐름에 석이 끼어들면서 변화가 생긴다. 원래 영란의 카페가 호철보다 훨씬 장사가 잘 되었다. 임대 계약이 끝나면 장사 잘 되는 쪽으로 합치자고, 영란이 속내를 넌지시, 그러나 당당히 내비쳤을 정도로. 그런데 석이가 호철의 카페에서 일한 부로 상황이 달라졌다. 하루 매출 10만 원도 안 되던 곳이 거의 3배 뛰었다. 어색해하면서도 축하의 말을 건네던 영란. 다만 경제적 우위가 뒤바뀌면서 처음 겪는 핀잔과 홀대에 당혹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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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찌 된 일인가. 마냥 화기애애한 두 사람을 보니 왠지 모를 소외감까지 든다. 이때, 영란은 기막힌 직감을 발휘한다. 아마 같은 동네에서 호철보다 장사를 잘해온 이유이지 않았을까. 빠른 상황 판단으로 변화의 원인을 눈치챈다. 남은 건 딱 하나. 자신의 가설을 확인하는 것이다. 절묘한 이유를 대가며 남편 호철의 눈을 피해 석이를 자신의 카페에서 일하도록 쏙 빼낸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석이가 매출 변화의 중심이다. 그러니까, 손님을 불러오는 신기한 요정 같은 존재다. 영란의 카페가 잘 되면 잘될수록 호철의 카페는 다시 고꾸라진다. 잠시 간의 달콤한 대우는 어디에도 없고, 다시 벌칙처럼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해야 한다. 밖에 쪼그리고 앉아 이혼한 아내와 딸의 안부를 듣고 청승 좀 떨어준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서야 텅 빈 카페에서 매출 장부를 확인하던 호철이 무언가를 알아차린다.


때마침 영란은 언니 가족을 만나러 갔으므로, 호철은 영란 몰래 석이를 자신의 카페로 보낸다. 석이 대신 자신이 영란의 카페에서 일한 거다. 그리고 호철도 확신한다. 아, 석이가 비밀이었구나. 이제 석이 쟁탈전이 벌어진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의 진지한 버전이라고 할까. 그 누구의 아이도 아닌 석이는 침묵을 지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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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석이의 의사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저 부부가 좋을 대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오갔던 것이지. 가만 보면 가족이라고 묶인 이름이 전부 그렇다. 영란은 사기라도 봐도 무방할 일을 몇 번이나 겪고서도 '그래도 우리 언니, 우리 가족'이라고 두둔한다. 아예 끝장을 보고서야 화를 낸다. 영란이 최근에 빌려준 돈은 계약금이 아니라 가족 여행 자금이었다. 와중에 그들을 나무라는 게 젠틀해 보이기도 했다. 아주 다른 것 같던 호철과 영란이 조금은 닮아 보인 지점.


호철 쪽은 어떠한가. 전 와이프의 남편은 그가 갑자기 아빠 노릇을 하려 든다며 불쾌해한다. 호철 또한 아무것도 몰랐다. 괜찮다던 말은 어느 정도 인사치레였다. 생각해보면 딸의 목소리는 영화에서 나오지도 않는다. 호철은 그들에게 가족의 일부이긴 하나, 일반적으로 말하는 '가족'의 역할을 하기엔 달가운 시선을 받지 못한다.


이후, 석이와 외식을 하던 부부. '우리 가족 같다'는 그들의 말에 석이는 침묵하더니 끝내 홀연히 사라졌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었다. 가족이라고 묶인 울타리들이 언제나 따뜻하고 든든하고 믿음을 기반에 두진 않았다고. 그리고 뜻밖에 굴러온 행운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것 같지만, 오히려 사이를 더 틀어지게 만들기도 한다고. 겉보기가 다는 아니다.


중요한 건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를 덧대고,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다. 특정한 이름표를 붙인다고 해서 다 특별한 관계가 되는 게 아니다. 내가 그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이어나갈지는 오로지 두 사람의 일이다. '돈'이라는 인생의 고민이 사라진다고 해서 모든 게 원활히 흘러간다는 건 아니므로.


복잡해 보여도 단순하다. 사람 대 사람으로 충실하기. 그뿐이다.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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