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어떻게든 일단 써보자 : 신의 문장술

글 입력 2022.11.2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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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11월 끝자락. 한 해의 마지막이 코앞이다. 이맘때엔 유독 일상이 바쁜 기분이다. 새로 시작한 일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것도 한몫하겠지만, 자투리 시간은 언제고 있다. 비어있는 시간을 차지한 건 독서나 영화, 혹은 글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셋 중 어느 하나도 자리 잡지 못한다. 그렇다고 침대에 뒹굴며 유튜브에 푹 빠져있는 것도 아닌데 시간이 다 어디로 갔을까. 쓰고 읽는 재미를 다시금 맛보고 싶어 이 책을 덜컥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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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 제목부터 일본스럽다. '~법' 대신에 '~술', 다소 구체적인 인칭 대명사가 아니라 God. 순간 망설이긴 했다. 일본어 번역체는 유달리 이질감이 들어 다른 외국어 번역체보다야 의미가 쉽게 읽히긴 해도 거부감은 배로 들었다. 표현방식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가장 최근에 본 일본 소설책의 여파가 아직도 남아있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첫 장을 열었다.

 

드문드문 언어 자체의 특성이 보이긴 하지만, 대체로 무난하다. 글을 쓰기도 전에 겁부터 먹은 사람들을 어르고 달래며 조금이라도 해보자고 토닥인다. 결과, 평가, 반응 따위의 외부 환경에 맞춰진 관점을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 옮기려는 시도가 따뜻하다고도 느꼈다.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내내 들려주다가 마지막 챕터에선 좀 더 이해하기 쉽게 가상의 상황을 설정한다.

 

'후미오'라는 이제 막 글쓰기를 해보려는 남자와 그의 스승의 대화인데, 기본 설정에서도 느껴지겠지만 전개가 소년 만화 같다. 극강의 술법을 전수받으러 온 남자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여럿 떠올랐달까. 둘의 대화를 보여주고, 그 대화 속 내용을 Q&A 형식으로 정리해 준다. 만화 특유의 오버스러운 표현이나 개그코드가 잘 맞는 사람이라면 더욱 재밌게 읽을 법하다. 나는 그보다 이전의 이야기들이 좋았다. 그중 몇 가지를 중점적으로 소개해 보고자 한다.

  

저자는 글쓰기 관련 깊이 공부를 해본 것도, 스킬 강의를 들어본 것도, 관련 학과 졸업생도 아닌 식품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다. 그리고 일하며 느낀 여러 가지 고충이 많은 듯하다. 답답한 상황이라도 곧잘 살아가는 원동력이 글쓰기다. 그 안에서는 세상 누구보다 자유를 만끽한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어떻게 하면 부담 없이 자유로운 글쓰기를 오래 해갈 수 있을까'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라고 볼 수 있다.

 

챕터가 세분화된 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큰 줄기는 하나다. 쓰고 버리기. 여기에서 가지가 여럿으로 뻗어나간다.

 

우리는 왜 쓰는가.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쓴다. 리포트, 이력서, 편지, 자기소개서, 서평, 기획서 등 목표는 달라도 목적은 엇비슷하다. 타인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주어 특정 결과를 얻거나 증명하기 위함이다. 결국 글을 남긴다고 가정하는 건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안고 시작하는 것과 같다. 잘하려고 애쓸 때 어찌나 삐걱거리게 되는지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저자는 쓰고 버릴 것을 전제로 둔 글쓰기를 권한다. 이런저런 고정관념에 갇혀있길 거부하며, 자유롭게 마음껏 쓰도록.

 

 


결과 1) 시작이 반


 

쓰는 과정에서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지점이나 꽉 막히는 느낌이 들 때 손놀림이 멈춘다. 그리고 생각에 빠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글에서 부족한 점을 찾다가 종래에는 능력 부족으로, 이 같은 굴레가 반복되면 아예 쓰지 않기를 택한다. 어차피 제대로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행동을 저지하는 셈이다. 이때 다 쓰고 버린다는 새로운 관념이 들어서면 행동하기가 쉬워진다. 제대로 된 걸 남겨야 할 필요성이 없으니 고민도, 걱정도, 자기반성도 사그라든다.

 

나는 오랫동안 습관처럼 무언가를 끄적인 사람이라 중간 과정에서의 도움을 말했지만, 저자는 쓰기를 이제 막 시작할 사람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권한다. 무엇을 써도 흔적이 남을 일 없기 때문에, 좀 마음에 안 들더라도 지우고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첫 문장을 완성하기가 쉬워진다. 유념하면 좋을 하나. 이건 '버릴 생각으로 쓰기'가 아니다. 조삼모사 같은 말장난으로 보일 테지만, 엄연히 다른 말이다. 버리기 위해 쓰는 것과 쓰기 위해 버리는 것. 엄연히 다르지 않은가. 우리는 쓰기 위해 버릴 뿐이다.

 

물론 기록의 말소를 권하는 건 아니다. 그랬다면 이 책을 집필할 수도 없었겠지. 저자는 사람들이 시작도 전에 으레 하는 잡념과 고민을 최대한 덜 방법을 제안한 거다.


 

쓰고 버리기는 자유다. 형태에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 말이 아니라 도형이나 기호로 표현해도 좋다는 뜻이다. 자신의 세계관을 가지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계속함으로써 자신만의 견해, 자신만의 세계관을 점점 더 충실하게 만들면 ‘이야기할 준비’가 완료된다.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내가 한 준비는 쓰고 버리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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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떤 기록도 남기지 못하는 건가? 아니다. 중요한 기록은 메모로 남긴다. 용도를 구분해서 노트를 따로 두어도 좋고, 핸드폰 메모장도 좋다. 자신에게 가장 편리하고 쉬운 도구에 보관한다.

 

 

 

결과 2) 생각의 텀


 

기껏 쓴 걸 지워야 한다니. 약간 허무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뇌과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오히려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어떤 일이든 정신없이 하다 보면 주변 환경이 더러워진다. 그 후 잠시 숨 돌릴 타이밍이 될 때 쉬엄쉬엄 어질러진 것들을 치우기 시작한다.


뇌도 마찬가지다. 하루 중에 온갖 정보를 입력하고 처리하다 보니 이곳저곳 쌓였을 노폐물들. 우리가 잠들거나 멍하니 쉬고 있을 때 청소할 여건이 마련된다. 즉 무조건 정보를 집어넣는다고 해서 그만큼의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게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한 템포 쉬고 나중에 봄으로써 더 깊이 있는 접근이 가능하다.

 

 

 

결과 3) 상태 파악, 상황 분석, 감정 정리


 

글로 써서 어떤 감정이나 고민의 정체를 파악하게 되면 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 수 있다. 싸울 수 있게 된다. 글쓰기의 대상이 기쁨이라면 글을 씀으로써 그 기쁨을 최대화할 수 있다.


 

무엇이든 정체만 알면 두려워할 게 없다. 지금 당장은 맞설 무기가 없더라도 필요한 무기를 만들거나 찾으러 가는 길을 알게 된다. 하지만 상대를 알지 못하면 어떤 무기를 들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모른다는 것. 그것이 바로 불안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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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은 빠르고 무질서하다. 논리적이고 순차적인 사고가 아니라 소용돌이 한복판이다. 글은 쓴다는 건 논리 구조를 갖춘다는 말과 같다. 산발적인 생각을 한데 모으고 모호한 느낌에 이름을 붙여 정체를 분명히 드러낸다. 감정을 다스리는 데 일기만 한 게 없다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상황과 사건, 감정에 대한 명료한 파악이 끝난다는 건 그만큼 나 자신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것을 '세계관 구축'이라고 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만의 세계관을 지녔으므로 찰떡같은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세계를 보는 관점이 생기면 이야기를 꾸려갈 준비가 다 되었다.

 

 

 

결과 4) 나의 이야기


 

앞서 말한 대로 사람은 제각각이다. 똑같은 경험으로 보여도 어느 하나 똑같은 도착지에 서지 않는다. 성향이나 성격을 비롯하여 많은 것들이 다르니까. 고로 내가 쓰는 이야기는 어느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나만의 것이 된다. 인간이라는 공통점, 사회라는 커다란 틀, 이 두 가지에서 비롯된 동질감이 많은 만큼 차이점도 많다.


 

이야기는 ‘창작’에 한정되지 않는다. 고상한 것도 아니다. 친근하고, 붙임성 있고, 장르를 뛰어넘는 자유로운 것이다. 이야기는 장르를 불문하고 읽은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움직이는 서사가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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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자유로운 글쓰기를 주장하는 저자이니, 첫 이야기의 시작도 가볍다. 목표는 400자다. 40자로 10문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구성, 짜임새 등은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이야기의 결론만 염두에 둔다. 글을 쓰다 막히면 그 지점에서 ‘왜 쓸 수 없는가’를 주제로 쓰고 버리기를 한다. 예상하건대 쓰고 버리기의 진가는 이러한 걸림돌에서 발휘될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끝까지 다 쓰기. 마감 시간을 미리 정하고, 제시간에 끝내지 못하면 일단 그만 쓴다.

 

이렇게 쌓다 보면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테다. 그럴 땐 다음의 문장을 보자.


 

최선을 다했다면 질보다 양을 평가하자. 자신이 글을 몇 편 썼는지, 몇 글자나 썼는지를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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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시작이 반이고, 끝맺음이 반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끝맺은 글은 시작한 글에 비해 턱없이 적다. 이유를 이제야 알겠는 거다. 천천히가 필요했다. 200자 원고지 80장, 100장을 목표로 달리는 대신 10문장, 30문장 같은 예열 단계가. 퀄리티가 어떻든 일단 끝을 내보겠다는 생각으로 분량을 천천히 늘리다 보면 끝에 당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겠다.

 

 

 

결과 5) 확장


 

글 쓰는 과정에서 막힐 때마다 쓰고 버리다 보면 새로운 쓸 거리를 발견하기도 할 테다. 그런 식으로 쓸 수 있는 이야기를 넓혀가다 보면 어느 순간 한계점을 맞이한다.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고 잘 아는 분야는 어느 정도 다 소화한 기분이 드는 거다.

 

이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때다. 흥미와 관심 있는 것뿐만 아니라 싫어하는 것에 눈길을 돌려본다. 저자가 제시한 세 가지의 질문 : 왜 싫은가? 모든 면이 싫은가? 싫어도 내게 도움이 될 요소는? 여기에 답해보며 쓰고 버린다.

 

이처럼 글쓰기 내에서 나의 역량을 확장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을 주어로 바꿔도 될 만큼 인상적인 말들이 있다.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에 몇 문장을 인용하며 글을 마쳐본다.


 

판단이나 평가를 자유롭게, 가볍게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우리가 고집해야 할 것은 과거의 판단이나 평가가 아니라 집착하지 않는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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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마음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에 신경을 쓰는 건 그만두는 게 좋다. 서로 이해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면 된다. 이것은 쓰기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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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마음속 소리를 주워 올려 나만의 말로 표현해’ 왔을 뿐이다. 지금도 변함없이 내 말로 구현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 방식을 계속하고 있다. 기술 이전에 먼저 자기 자신과 진지하게 마주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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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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