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기왕이면 바다가 되면 좋겠지만

섬이 아니라면 그것도 좋다
글 입력 2022.11.2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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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쯤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들은 보통 결이 같다. 사랑을 자주 말했는데, 연말을 지내고 나니 손에 남아있는 것은 다 껍데기뿐이어서 서글플 때가 있다고. 지는 해를 자주 마주하고 나니 그런 허전함도 느끼기 어렵다. 방법을 찾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허기는 따뜻한 음식으로 달랠 수 있고 정 힘들면 전기장판을 뜨뜻하게 올려놓고 베개를 힘껏 껴안아도 된다. 나는 이렇게 무언가를 견디는 방법을 알아내며 살아가고 있다.


늘 예민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무언가를 너무 쉽게 지나쳐버린 내 모습에 놀라 멈춰버릴 때가 있다. 내가 이걸 몰랐다고? 되물어도 돌아오는 답은 없지만 그래도 또 묻고 묻는다.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내가 놓친 것들을 찾느라 발자국을 어지러이 찍고. 차라리 무뎌지는 게 나은가 궁금할 때도 있다. 예민하지 않으면 내 날에 베일 일도 없으니까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가끔 무딘 날을 휘두른다. 그리고는 거기에도 처절하게 베이며 공간을 내주는 공기를 위해 대신 운다.


언제나 맞는 정답은 없지만 나는 무언가를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정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과응보나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모양이 다른 한자를 나열한 같은 말이라는 점이 그렇지. 10년째 내 신년 목표로 달력을 차지하고 있는 연연하지 말자는 말도 마찬가지다. 연연하면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자꾸 뒤를 돌아보면, 앞은 하나도 없고 전부 아쉬운 뒤와 과거밖에 없다. 과거에 사는 섬이 되고 싶지는 않아서 나는 꺾이는 다리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무언가가 되기로 한다. 기왕이면 바다가 되면 좋겠지만.


올해는 공기가 따뜻하다. 평년보다 포근한 늦가을이 계속된단다. 사람들이 아껴두었던 체력으로 주말에 서울 구석구석을 뒤적거리고 다닌다. 나도 조금 보태어서 안국도 걷고, 상수도 걷고, 뚝섬도 걸었다. 걷다가 땀이 나서 몸에 걸친 껍데기를 모조리 손에 쥐고 걸었다. 걸으면서 지구의 안위도 조금 걱정했다. 따뜻한 날씨를 마냥 기뻐할 수가 없어서, 지구가 이래도 괜찮은 걸까. 주변을 살피고 묻고, 조금만 들떠 하면서 걷는다. 눈을 자주 보고 싶어서 서울로 올라왔는데, 남은 눈은 내가 남긴 필름카메라가 마지막이다. 올해의 첫눈은 언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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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면 꼭 펼치는 영화가 있다. 눈이 오고, 따뜻한 술이 오가고 크리스마스 위로 무마되는 실수와 사랑이야기들을 보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에 용기가 들어찬다. 누군가의 그늘 안에 들어가서 숨소리 두 개만 크게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공기에 닿은 모든 것들이 빨갛게 터져버리는데도 붉어진 두 뺨이 더 붉은. 남의 기억을 엿볼 수 있다는 건 늘 설레고 두렵다. 나는 그래서 영화가 좋다.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하는 것은 오랜 습관이다. 퇴색되지 않았으면 해서,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해서. 습관이라는 것도 자꾸 찾아주지 않으면 색이 바래서 특별함을 잃고 그저 평범한 일상이 된다. 그런 건 싫은데.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색을 찾아주기 위해 자꾸 그들의 이름을 불러준다. 나는 올해도 바다가 좋다. 여름이 좋고, 소금 향이 나는 향수가 좋다. 손이 많이 가는 정성에는 무리해서라도 답장을 하고 싶고, 고양이는 털이 내 기도를 막아 숨을 쉬지 못해도 좋아서 죽겠다. 나는 늘 이토록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 사랑이 허투루 쓰이는 일에는 더없이 화가 난다. 그럼에도 내 사랑이 닿는 당신이 좋은 사람이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여린 행동에는 설명을 붙일 수가 없다.


최근에는 나를 묻는 사람들이 많아서 기뻤다. 마음에 묻어야 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슬펐다. 나는 지나치게 솔직하게 대답하고 웃고 울었다. 내 장점이 뭔지 알아 바로 솔직한 거야. 그거는 정말 내 얘기라서 웃겼다. 솔직한 건 장점이잖아 그렇지. 우리는 술에 취해서 그 예쁜 아이가 부르던 노래를 부르고 멋진 사람이 쓰던 시를 읊으면서 차가운 바닥에 볼을 대었다. 너무 차가워서 더 정신이 아득해진다. 겨울이 아름답다는 걸 조금 더 늦게 알았더라면 불행했을지도 모른다. 역시 무언가를 싫어하는 것에는 재능이 없구나. 그래서 내가 나를 좋아했었지. 뭐 그런 말들을 중얼거리면서 잠에 들었다.


몇 가지 일기를 모아보니 나는 정말 지독하게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구나 싶다. 세상을 살면서 느끼는 것이 아직도 많아서 다행이다. 기록할만큼 눈에 보이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 다행이다. 나는 딱히 믿고 따르는 종교가 없어 일이 망가지거나 놀랄 때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단단한 것을 부른다.


엄마야!


그러고 나면 좀 나은 마음이 된다. 난 욕심이 많아서 언제나 멋있었으면 좋겠는데 가끔 그런 것들이 허물어질 때면 일기에 그런 것들을 죄다 토한다. 그러고는 그중에서 제일 덜 못난 조각을 갖고서 주변에 보인다. 이런데도 나를 사랑할래? 와 같은 물음이다. 가끔 답장이 도착하면 나는 그대로 녹아버린다. 나는 12월이 무섭지만 트라우마는 안아야 넘어간다고 누가 그랬다. 그러니까 나는 그런 것들을 안고 뒤뚱뒤뚱 해를 넘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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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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